우리는 늘 한 발은 뒤로 남겨둔다
에어팟을 처음 구입한 날, 나는 마치 새로운 시대의 문턱을 넘어선 기분이었다. 주위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늘 들리던 “편리해, 가벼워, 정말 좋아! “라는 찬사가 이제 내 것이 되었다. 작은 이어폰을 귀에 끼우자마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주변 소음은 사라지고, 음악의 울림은 맑고 선명하게 내 귀를 채웠다. 무선의 자유로움이 주는 해방감은 이토록 강렬한 것이었나?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책상 한쪽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이어팟을 발견했다. 익숙한 하얀 선, MP3P 시절 함께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호기심에 귀에 꽂아보니 음질은 에어팟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 소리는 낯설지 않았다. 이어팟을 통해 들리는 음악은 오래된 친구의 목소리 같았다. 특별하지 않지만, 편안하고 익숙했다. 이 오래된 기기가 내 일상에 다시 스며든 건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내 내면이 그것을 필요로 했던 걸까?
에어팟과 이어팟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의 두 얼굴이었다. 에어팟은 새롭고 효율적이며, 끊임없이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이었다. 적응형 기능은 내 주변 환경에 맞춰 변화를 감지했고, 손가락을 대는 간단한 동작만으로 음악을 멈추거나 재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어팟은 나에게 전혀 다른 것을 상기시켰다. 그것은 불완전하고 단순하며, 어쩌면 오래된 유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유물 안에는 내가 잊고 있었던 안정감과 친숙함이 있었다.
변화는 우리 삶의 본질이다. 우리는 에어팟처럼 더 나은 것을 원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려 한다. 하지만 변화의 한가운데서도 우리는 이어팟처럼 과거의 일부를 붙잡는다. 그것은 단지 습관이나 추억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익숙한 것에서 위로를 찾기 때문이다. 낡고 낯익은 것이 우리에게 “너는 충분히 괜찮아.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돼”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에어팟과 이어팟을 번갈아 사용한다. 에어팟은 나를 앞으로 밀어주고, 이어팟은 뒤를 지켜준다. 빠르게 달려가다가 지치면 이어팟의 선을 손으로 만지며 속도를 늦춘다. 귀에 착용하고 잠시 졸더라도 잃어버릴 염려가 없는 이어팟은 내가 급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그러다 다시 에어팟을 손에 쥐면, 나는 또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우리 삶은 항상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한 발은 뒤로 남겨두는 과정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익숙함을 품고,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균형을 찾아간다. 에어팟과 이어팟은 단지 도구가 아니다. 그것들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서 왔는지를 상기시켜 주는 삶의 은유다.
그리고 나는 그 둘 모두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