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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Jun 12. 2018

이국적인 exotic (3)

다채로운 소풍이 가능한 도시

소풍은 즐거운 시간이다. 나는 언제부터, 왜 소풍이 즐거워졌나?

 

소풍이란 단어를 처음 들은 것은 초등학교 교실이다. 담임 선생님이 ‘다음 주 소풍을 간다’라고 하셨을 때는 ‘소풍?’이 내 반응이었다. 그다음 말씀은 준비물과 날짜, 모이는 시간, 가는 장소에 대한 안내였다. ‘소풍’이 무엇인지 설명을 들은 기억은 없다. 아마도 ‘소풍’은 고유 명사라 생각하셨나 보다. 당시엔 형제 자매 남매가 2명 이상인 집이 많은 시기였기 때문에 담임 선생님은 우리가 어리지만 ‘소풍’을 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셨나 보다. 두 살 위인 누나가 있었지만 누나가 소풍을 가는 것이 나와 상관없다 여긴 모양이다. 결국 집에 돌아와 어머니께 물어보았다. “소풍이 뭐야?” “점심 도시락과 간식을 싸가지고 동물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거야.”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도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간식? 간식이 뭐야?” “과자나 음료수 같은 거. 넌 뭐를 가져가고 싶어?”

 

‘과자? 음료수?’ 아마도 이때부터 나에게 소풍은 즐거운 사건이 된 듯하다. 당시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과자와 음료수는 매일 먹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음식이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단 것 많이 먹으면 이빨 썩어’라든가 ‘밥 먹어야 키 크지’라든가 하는 이유가 간식 먹는 일을 특별한 일로 만들었다. 나에겐 환타가 제일이었다. 허용만 된다면 2병이고 3병이고 마셨을 정도로. 소풍이란 환타를 마음껏 먹는 날이라고 이해했다. 원하는 것을 얻는 날이니 즐겁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한 병을 컵으로 나누어 가족과 함께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한 병을 통채로 나 혼자 먹는 날이니 흥분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특별한 음식이 아니고 당연히 가져가야 할 음식이 되는 날이니 더 기뻤다. 내가 기억하는 첫 소풍이 어땠는지는 아련하다. 아마도 잔디밭에 둘러앉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게임을 했을 것이다. 어린이 대공원이었을 테니 동물원을 줄지어 걸어가며 구경했을 것이다. 간혹 흥분하여 동물 우리 난간에 매달리다 주의를 듣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첫 소풍은 단체 관람이었다.

 

대학을 가고 미국 문화에 익숙해지면서 ‘소풍’은 어느새 ‘피크닉’이란 외래어로 불리게 됐다. 할리우드가 그린 피크닉이란, 양쪽에서 위로 열리는 바구니 안에 음식과 그릇과 와인을 넣고 넓은 공원에 가서 자리를 펴고 앉아 도란거리며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모습이었다. 상대에게 집중하고 애정을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한 장면이니 음식은 배경일뿐이었다. 그 후 피크닉은 소풍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로맨틱한 데이트의 한 가지 유형이 되었다. 이런 정의가 머리 속에 들어가다 보니 피크닉은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 특별히 준비해야 할 사건이 됐다. 사랑하는 이가 생겼을 때 단둘이 호젓한 곳으로 가는 행사가 피크닉이었다. 사랑하는 이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점심을 싸가지고 가는 것은 ‘나들이’였지 ‘소풍’이라거나 ‘피크닉'은 아니었다. 혹은 벚꽃놀이이거나. 당시엔 창경원이 동물원의 대명사였으니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간다면 창경원이었다. 어린이 대공원은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갔던 것 같다. 점심은 어머니의 수고를 던다는 개념보다 가서 사 먹는 외식을 즐겼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계기는 ‘갈까?’였다. 생일이라거나 특별한 날이어서 갔다기보다 ‘갈까?’하고 모두 동의하면 갔던 것 같다. 학교의 소풍, 연인과의 피크닉, 가족의 나들이의 계기는, 정기적이었던 소풍을 제외하고 (즉, ‘간다’로 시작되는 것) 피크닉과 나들이는 ‘갈까?’였다. 3 가지 행사의 구성은 식사와 이야기, 놀이기구 타기 정도였다. 소풍이라면 단체 게임이거나 사생대회 거나 글짓기였다. 대학에서 학내 잔디밭에 돗자리도 없이 털썩 앉아 이야기를 하고 해가 지면 술을 사다 먹으며 이야기를 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할 말이 많던 때였나 싶기도 하다. 대화나 이야기는 카페에서도, 술집에서도 많이 하는데. 그렇게 논의할 고민이 많았나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신변잡기적인 소재도 많았다. 소풍, 피크닉, 나들이용 대화 주제가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지나고 나서 정리해 보면 기억에 남는다거나 특별할 것이 없고 변치 않는 패턴이라 특별하게 기억되지 않는 것 같다.

 

뉴욕 체류는 2005년 6월부터 8월이다. 이 기간을 굳이 상기하는 이유는 다음부터 할 이야기 때문이다. 뉴욕은 피크닉을 다채롭게 할 소재가 많은 도시라 생각이 든다. 오히려 대화 없이 2시간 이상을 즐긴 경우도 많다. ‘다르다’가 ‘다채롭다’와 동일한 의미는 아니지만, 전과 다른 일들이 많아지면 소풍, 피크닉, 나들이는 다채로워진다.  

 

뉴욕의 여름은 이국적이었다. 뉴욕 시립 도서관 뒤편에 자리한 브라이언 파크가 이번 ‘이국적인’의 주인공이다. 브라이언 파크는 서머 필름 페스티벌이란 이름으로 매년 6월부터 8월까지 무료 영화 상연회를 연다. Bravo, Qatar Airways, HBO, Vulture 등의 영화를 Bank of America의 후원으로 상영한다. 우리가 있을 때 후원자는 HBO였다. 소풍을 가서, 아니 피크닉을 가서 무료 상영 영화를 보는 기회가 당시 우리나라에는 없었다. 지금은 지자체가 인기 가수들을 초청해 무료로 컨서트도 열기 때문에 특별한 이슈는 아니게 됐지만, 2005년 여름에 나에게는 신선한 이벤트였다. 보러 오는 사람도 많았다. 장기 체류 여행에서 꼭 경험해 볼 일은 현지인들과 함께 대중적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른바 현지화 Localization의 경험은 잠시 다니러 온 관광객에서 일시적이지만 뉴요커가 되어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나 뉴욕에서나 트래픽이 많은 행사를 잘 보이는 장소에서 즐기려면 일찍 서둘러야 한다. 당연히 우리도 돗자리를 들고 브라이언 파크로 향했다. 점심은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았다. 지나다니며 봐 둔 브라이언 파크의 스낵 코너 음식을 경험해보자는 생각에서다. 우리처럼 스낵 코너를 이용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한 20명쯤 온 단체는 어디선가 배달을 시킨 모양이었다. 직접 도시락을 준비한 팀도 많았다.  


일상생활 용품 중 돗자리가 포함되는 곳이 뉴욕이다. 백인들이 많아서인지 햇살 좋은 날엔 속옷만 입고 돗자리를 펴고 잔디밭에 눕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여러 공원을 일상처럼 다니며 책도 읽고 음악도 듣다 보니 그들처럼 돗자리가 일상용품에 포함됐다. 그들의 돗자리는 은박이거나 비닐이 아니다. 얇고 넓은 천이다. 둘둘 말면 부피도 줄어든다. 마치 서부 금광 시대, 말안장 뒤에 둘둘 말아 가지고 다니던 천 같은 거라 상상하면 어느 정도 맞을 것이다. IKEA나 대형 마트 등에서도 이런 야외용 돗자리를 고정 매대에서 판매한다. 디자인도 다양해서 기호에 맞게 고를 수 있다. 우리도 체류 1개월을 넘기고 나니 숙소 한 켠에 둘둘 만 돗자리가 생겼다. 센트럴 터미널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다녀온 IKEA에서 구입한 것이다. 현지화 경험을 하다 보면 이렇게 일상 용품에서 변화가 생긴다. 사실, 서울에 살다가 지방으로 이사를 가면 이와 같이 현지에서의 일상용품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만큼 현지 생활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목적에 부합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우리처럼 좋은 자리를 맡으려는 사람들로 상영 6시간 전 따가운 햇살이 가득한 오후 2시 브라이언 파크 잔디밭은 반 이상 사람들로 매워졌다. 먼저 와서 자리를 맡고 돗자리를 펴고 배달되는 음식을 받아 놓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 켠에는 여름 햇살 아래 예의 일광욕으로 시간을 때우는 사람들도 있다. 혹은 브라이언 파크 좌우에 놓인 책상-의자 결합체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도 많다. 스크린이 커서 굳이 앞에 앉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왜 굳이 ‘앞자리’에 앉으려 오후 2시에 그곳에 도착한 걸까? 습관인가? 아니면 아직은 ‘한국인'인 건가? 아내는 자리를 맡아 앉아 있고 나는 스낵 코너로 가서 음식을 샀다. 행사가 있는 날(매주 월요일 오후 8시부터)이라 스낵 코너 줄이 길다. 어찌어찌 음식을 받아 자리에 와서 PDA에서 일정을 살펴보고, 가져간 책을 읽고,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서로 음악을 선곡해서 음악을 듣는다. 간혹 주변도 살펴본다. 얼마나 사람들이 오는지, 주위 경관은 어떤지. 그러면서 6시간을 일광욕 반 독서 반으로 시간을 보낸다. 결혼한 지 2년이 넘은 시기라 할 이야기도 많다. 뉴욕 와서 매일 같이 대화를 한다. 오기 전엔 평일에는 밤에만 만나 아침에 헤어지고, 주말이면 늦잠 자기가 일수여서 대화보다는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그러다가 뉴욕에 와서 고정 일상이 사라지고 24시간을 붙어 있다 보니 제대로 흐르지 못한 물길이 터진 듯 많은 대화를 하게 됐다. 생활, 앞으로의 일, 과거의 일 등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어떻게 마음속에만 두고 살았는지 모를 정도로 대화가 풍성해졌다. 그런데 오늘의 피크닉은 독서와 음악, 음식과, 잠시 후 상영할 영화 만으로 구성됐다. 대화는 잠시 뒤로 물러서 있는 모양새다.



시간은 천천히, 혹은 빠르게 지나며 주위가 어둑해졌다. 가로등이 켜지는 모습도 봤다. 읽던 책은 책갈피를 꽂고 가방에 넣고 먹은 음식의 잔해는 잘 뭉쳐 비닐봉지에 담아 버린다. 자리를 바르게 펴서 다리를 쭉 뻗고 앉거나 두 팔에 의지해 뒤로 기대어 앉는다. 2시간 가까이 상영되니 이래저래 앉은 자세는 변할 것이다.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지 들었지만 잊어버렸다. 혹시 극장에서 하는 영화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잊고 있었다. 주위 불빛이 잦아들고 스크린의 하얀빛이 밝아지고 영화가 시작된다. 흑백 영화다. 배우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미국 옷차림이다. 남자와 여자가 등장하고 애정이 피어오르며 갈등과 행복이 교차한다. 그, 런, 데, 자막이 없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하고 어찌 생각하면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알다시피 뉴욕은 세계 인종과 민족의 비빔밥 같은 곳이라 영어로라도 자막을 넣을 법도 한데 자막은 없었다. 아차 싶었다. 소리는 잘 들렸지만 머리 속에서는 끊기고 있었다. ‘이건 뭐..'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내를 보니 별로 불편하지 않은 모습이다. ‘아, 나의 영어여, 절름발이여.. 이 귀머거리여!!!’  

 

하지만 영화의 신기한 점은 대화를 하나하나 알아듣지 못해도 영화 전반의 흐름은 파악이 된다는 것이다. 표정과 억양, 말소리의 높낮이와 감정, 배우들의 표정과 배경의 변화 등으로 ‘아..’ 싶을 정도로 이해가 된다. 이것도 하나의 새로운 묘미였다. 이런 일이 또 있긴 했다. 뉴욕에서 처음 영화관에 가서 ‘우주 전쟁’을 보았는데, ‘어, 자막이 없어’라는 눈으로 아내를 보다가, 영화가 끝난 후 ‘그런 이야기였구나’ 싶었던 기억. 대중을 상대로 무료로 상영을 하니 자막이 있을 거라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이미 무자막 영화 관람의 경험이 있는데도 브라이언 파크에서 한 번 더 당황을 했으니.

 

인터넷이 활성화가 되고, 광고로 수익 모델을 삼는 서비스가 많아지면서 어느새 컨텐츠는 무료라는 인식이 커진 것 같다. ‘저기서는 무료로 하는데’하며 그리로 몰려간 기억이 있다. 사실 어떤 형태의 컨텐츠도, 창작물은 무료일 수 없다. 관객의 입장에서야 지갑에서 돈이 나가지 않으니 무료이겠지만, 브라이언 파크의 무료 영화 상영 이벤트도 스폰서가 자금을 지원하기 때문에 가능한 행사이다. 더구나, 영화는 한 편이 창작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어울린다. 대본을 쓰는 사람, 연출을 하는 사람, 연기를 하는 사람, 음향과 음악을 만드는 사람, 조명을 제어하는 사람, 카메라로 찍는 사람, 편집하는 사람 등 수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만들어야 한 편이 탄생하는 영화가 무료로 제공되는 일은 절대로 없다. 가뜩이나 매주 월요일 저녁 8시에 한 편씩 무료 상영을 하려면 스폰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스폰서의 존재로, 공연하는 사람도 관람하는 사람도 모두 마음이 편하고 그 순간에 집중을 할 수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 이런 기회가 없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런 체계가 확산되지 않아서인 이유도 그중에 존재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정부기관이나 민간 기업의 스폰서로 무료로 문화를 즐길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 피크닉의 소재와 계기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굳이 사업적 마케팅의 일환이라든가 하는 재미없는 말로 흥을 깨고 싶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건, 문화적 산물로 인해 우리의 피크닉, 소풍, 혹은 나들이는 다채로워지니까. 다양한 경험을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할 수 있으니까, 일상에 빼앗긴 ‘우리만의 시간'을 찾을 수 있으니까, 술에 절어 비틀거리는 모임이 아니라 함께 공동의 소재를 즐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까. 그렇게 소풍이 다채로워지니까 이국적이고 즐거운 기억인 것이다.

 

뉴욕의 거주자들은 공원에서 많은 일을 한다. 모터가 달린 모트를 가져와 원격으로 호수 위에서 조정하는 아버지와 아들(우리는 인공 호수 위에서 드론을 날리면 경비원이 와서 제지를 한다;;;),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 독서를 하는 사람들, 음악을 듣는 사람들, 혼자 중국 무예를 연습하는 사람들, 모르는 이와 체스를 두는 사람들 등 내가 지금까지 나들이에서 해 본 적 없는 많은 일들을 그들은 일상으로 행하고 있다. 덕분에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 운동도 하고, 독서도 하고, 체스 구경도 하고, 살짝살짝 곁눈질로 중국 무예 연습을 하는 벽안의 백인도 보곤 했다.  

 

소풍이란 무엇인가, 피크닉이란 무엇인가, 나들이란 무엇인가? 집 밖으로 나가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가능한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준비를 하는 행사이다. 이왕 집을 나섰는데 기분 전환뿐만 아니라 즐거운 추억까지 만들면 좋지 않겠나? 13년이 흐른 지금도 브라이언 파크의 써머 필름 페스티벌을 잊지 않고 있고 브라이언 파크 홈페이지에 가서 요즘은 어떤 영화를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처럼. 13년이 지난 나는 나들이로 무엇을 하나? 지자체가 마련한 컨서트에서 여자친구도 보고 볼빨간 사춘기도 보고 김범수도 본다. 분당 대형 서점에 가서 바닥에 앉아 책을 읽는다. 분당 구청 앞 잔디밭에서 모임을 갖는 반려동물 동호회 사람들도 본다. 느티나무 도서관이나 수지 도서관에 가서 독서를 하고 잡지를 본다. 커다란 호수를 낀 공원에서 자전거를 탄다. 동네 벼룩시장에 참여해 장사도 한다. 의타적인 성격이 아닌데 사람들이 많이 하는 일에 섞어 들어간다. 섞여 들어가서 조금씩 내 방식을 만든다. 그렇게 13년 후의 나들이가 다채로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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