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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Jul 23. 2018

내가 어디 있는지 확인시켜 주는 것

이런 입맛은 복(福)일지도

인간이 생존하는데 반드시 있어야 할 3 가지는 무엇일까? 의, 식, 그리고 주이다. 생명을 기준으로 한다면, 식, 의, 그러고 나서 주일 것이다. 현대에는 여기에 문화를 삽입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반대다. 문화 혹은 문명은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즐겁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말을 나는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식은 정말 생명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의와 주가 부실해도 식이 없다면 인간은 생존할 수 없다. 의식동원(醫食同源)이란 중국의 사상까지 검토한다면, 식은 더욱 중요해진다. 약과 식의 원천이 같으니 잘 갖춰 먹으면 건강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니까. 이러니 생존을 위해서라면 양식, 한식을 구별하겠는가? 


 

21세기가 17년 반 이상이 지났다. 우리는 무엇을 먹고 있나? 여전히 생존에 필요한 열량과 영양소인가? 먹을 것이 부족할 때는 그럴 것이다. 즐거움을 위한 맛과 분위기인가? 먹을 것이 풍족할 때는 눈도 귀도 즐거운, 그래서 모두 즐거울 음식을 먹을 것이다.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생애 처음으로 방문한 해외 도시 뉴욕에서 나는 무엇을 먹었나? 장기 해외 체류이니 모두가 즐거울 음식을 먹었을까? 아니다. 난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느끼게 해 줄 음식을 찾아 먹었다. 



 

식재료에 구분은 없었다. 국내에서는 비쌌지만 여기서는 내수 제품이라 싼 그들의 식재료도, 국내에서도 저렴하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수입품이라 더 비싼 익숙한 식재료도 모두 대상이었다. 고민할 필요가 사실 없는 것이, 뉴욕에서는, 크게 나누어 한식, 양식, 일식, 중식이 모두 존재하고 그 식재료 구하기도 국내보다 쉬웠다. 현지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을 먹는다가 우리 체류의 한 가지 지침이기도 했다. 


 

30년 이상을 먹어온 한식이 사실은 내게 인이 박힌 음식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내 혀가 전혀 그리워하지 않았다. 문명 속에서 태어나 그것을 향유하며 성장하다 보면 때로 동물적 본능이 그리워진다. 손으로 잡고 뜯고, 후루룩거리며 마시고, 입 안 가득 넣고 우적 거리기. 이런 본능적 식습관 속에서 과연 정신적으로 각인되는 음식이 있을까? 왜 내 혀는 고추, 간장, 된장, 쌀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알량하게도 그 30여 년 동안 종종 먹어온 양식이 각인을 방해한 것인가? 사실을 말하면 아니라고도 할 수 없을 것 같다. 버터 등 유제품, 기름에 튀긴 음식, 오븐이나 석쇠에 구운 고기가 지극히 자연스럽다. 어린 시절, 버터, 우유, 치즈를 지나치게 좋아했다. 밥을 버터와 간장에 비벼 먹는다. 어른 숟가락으로 버터를 푹 퍼서. 1,000 ml 우유는 목마른 사슴처럼 앉은자리에서 마셨다. 슬라이스 치즈 10 장을 군것질 과자처럼 들고 다니며 먹었다. 


 

2 개월 반의 체류 기간 동안 김치를 찾지 않았다. 김치, 찌개, 오이 고추, 상추쌈, 쌈장 등 맵고 짠 음식이 나의 기피 대상이어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추장에 비벼 먹고 싶어’, ‘김치를 길게 쭈욱 찢어 턱을 들고 입에 넣고 우적우적’이라며 상상을 하거나 그로 인해 입 안에 침이 고인 적이 없다.  


 

떡볶이는 예외다. 일상 중 불현듯 떠오르는 음식이 소울 푸드(soul food)라 한다. 나에겐 케첩이 든 소스가 뿌려진 탕수육인 줄 알았지만, 떡볶이도 여집합이 아니었다. 탕수육은 어렸을 때 혼자 대짜를 다 먹어도 부족하게 느낀 음식이었다. 인간은 결핍된 감각은 꼭 채우고 싶어 한다. 당시가 아니면 결코 그 결핍이 해소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나에게 탕수육은 소울 푸드였나 보다. 


 

우리는 비행기에서 내릴 때 고추장 튜브를 챙기지 않았으며, 뉴욕 짐 가방 속에 신라면을 곱게 모셔 오지도 않았다. 예전 9일 동안의 해외 신혼여행에서 우리는 서로를 확인했다. 우리는 일종의 외계인이다. 김치 없이도 몇 개월 정도는 마치 원래 먹어 본 적도 없다는 듯 지낼 수 있으니 말이다.  


 

길 가다가 일본인 거리에서 타코야키를 입 안 가득 먹는다. 카페인이 그리우면 거의 1L에 가까운 커피 맛 진한 아이스 라테를 마신다. 양손 가득 들 만큼의 유명 감자 튀김을 들고 볼을 불룩하게 한다. 숙소에 돌아올 때는 내수용 고기(미국산 소고기)를 사서 소금 후추를 뿌리고 구워 먹는다. 아침은 빵과 달걀 프라이와 버터와 드립 커피. 느끼, 느끼, 그리고 느끼한 식사들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순수 한국인인 데도. 우리는 양식 결핍이 아니라 양식 선호 증후군을 겪는지 모르겠지만. 


 

구성을 살펴보자. 고기를 통해 단백질을, 샐러드를 통해 무기질과 비타민을, 빵으로 탄수화물을 섭취한다. 가끔 튀김으로 포화 지방을 먹긴 하지만 입은 즐겁다. 우유는 홀 밀크든 저지방이든 가리지 않고 마신다. ‘아, 삶은 고구마에 김치 한 장 얹어 먹고 싶어’라는 생각은 전혀 없다. 집에서 중식을 배달시켰다. 용기 바닥에 붉은색 기름이 가득한 볶음밥이다. 그래도 느끼하다 생각지 않는다. 김치를 곁들이 지도 않았다. 


 

이렇게 먹는 것이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할 행위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억지로 참고 그렇게 먹은 것은 아니지만, 뉴욕에 있으니 뉴욕식으로 먹고 싶었다. 뉴욕에서 두부 된장찌개를 끓여 먹는다고 해서 뉴욕 식이 아니지 않다. 고추장에 콩나물과 시금치와 상추를 넣고 밥을 비벼 먹는다 해서 뉴욕 식이 아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뉴요커들은 건강식이라 한식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을 당시였다. 해외에 왔으니 그곳의 식문화를 즐기자, 이곳의 식문화를 일상으로 하자라고 생각했다. 음식마저도 오롯이 뉴욕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하자 생각했다. 마치 뉴욕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인 듯 먹어보자 생각했다. 전혀 불편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고추장과 김치를 찾아 이방인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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