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베카 밀러 / 매기스 플랜
매기의 첫 번째 계획: 아이를 가질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전통적인 방식으로 아이를 갖는 것, 즉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 과정은 나에게 맞는 옷이 아니다. 남자를 골라보자. 수학을 전공한 가이. 그에게 정자를 받아 내가 스스로 수정을 하겠다. ‘왜 수학의 길을 가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가이는 ‘난 겉에서 그 세계를 아름답다 생각한 사람’이라 답한다. 약간의 실망이 매기에게 다가왔다. 매기의 가이 포기는 현명했다. 재능은 있는데 포기한 의지력의 남자는 그녀의 타겟이 아니다.
매기의 두 번째 계획: 남편을 돌려보내자. 이 계획도 결과적으로는 잘 된 계획이다. 남편 전처는 그녀에게 동의하고 협력했다. 그리고 남편은 자신을 제대로 아는 이가 전처라는 것을 확인했다. 남편은 전처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행복한 스케이팅을 즐긴다.
매기는 상황을 자신이 난장판을 만들었다 후회했지만, 아이는 말한다. 스펀지로 닦아야 하냐고. 그럴 정도로 난장판이냐고. 매기는 거기서 후회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존(남편)이 차를 팔아 그 돈으로 바이크를 사서 돌아다닐 때, 매기는 꿈꾸던 행복한 일상을 자신의 아이와 함께 보낸다. 이는 첫 번째 계획에서 매기가 꿈꾸던 일상이었다. 시작은 충동이었다. 매기는 스스로의 계획을 추진하다가, 존의 고백에 그만, 그리고 그 상황에서의 들뜸과 오래간만의 열기에 자신의 계획을 저버리고 전통적 방식의 결혼이란 것을 한다. 스스로 자신이 없어 포기한 세계의 문을 연다. 결과는 난장판. 스펀지도 모자를 판이다.
우리는, 힘든 일을 겪을 때, 그 원인을 돌아보게 된다. 인간 삶의 고난은, 자신에게 맞는 길을 걷지 않고 그것에서 일탈했을 때 다가온다. 매기의 일탈은 나이에 맞춰 당위성 없이 한 결혼 생활에서 겪는 희로애락을 초래한다. 결혼을 하려면, 말없이 마음이 통하는 이와 하는 것이 맞는 옷인데, 실제는 말로 해도 통하지 않는 상대다. 연애할 때 바로잡을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그의 장점에 낙점을 두어 간과한다.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가 나에게 맞는 길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성적에 맞춰 대기업 혹은 언론사를 택했다. 사실 난 적은 수의 인원이 함께 마음 맞춰 일하는 직장에 어울리고 일도 잘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공부에 들인 투자에 걸맞지 않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즐겁고, 그 길이 내 옷이었는데, In-Seoul 대학에 들어가 취직이 잘 되는 과를 나와 입사를 하고 얼쩡거리다가, 즐거운 일 거의 없는 일상을 회사에서 보내고 있다. 지금이라도 그림의 길로 가려니, 너무 멀리 벗어나 있어서 엄두도 나지 않는다.
내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 외 사람들의 말은, 들을 내용이지 따를 내용이 아니다. 그럴 듯해 보여도 나도 잘 모르는 자신을 타인이 알 수 있을까? 만족스러운 삶을 가려면 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힘을 다 한다. 부모의 말이니까, 내 절친의 말이니까, 인생 선배의 말이니까, 다시 말해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의 말이니까 맞겠지. 성공한 사람의 말이니까 맞겠지. 그 말들 속에서 나의 길을 찾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말은 내가 들을 말이다. 내가 따를 말은 내 안에서 나온다. “난 나를 몰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친구가 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자신을 알고 있지 않은가? 난 나를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집중할 수 있고 결과에 즐거워하는 나로 이어지는 일이 내 옷이다. 그 일이 혹시 ‘쓰레기장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이거나, 남의 밑에 들어가 미친 듯이 막노동을 하는 일이면 어떻게‘라고 상상하는 이는 없겠지? 왜 없냐면,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다 안고 있지도 못할 정보를 접한다. 주의 깊게 봤냐? 머리에 담았냐? 의 차이는 있더라도. 이성이 보진 못했어도, 잠재의식은 본다. 그러니 안심하길 바란다.
그리고 자신의 플랜을 믿기 위해, 기억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정신이 없어, 혹은 상황에 밀려 결정을 하려는 자신을 잡아 줄 나침반을 항상 뒷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니길 바란다. 내가 생각한 길은, 현재 내가 가진 실력과 목표 사이의 거리만큼의 시간이 걸린다. 공부에 왕도는 없다지만, 사실 빠른 길은 있다. 그것은 집중력이다. 자신에게 맞는 길을 걸어갈 때 목표에 집중해서 모든 힘을 모어야 한다는 것이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앱을 다운받아 항상 그림을 그린다. 실력을 늘려 줄 자료를 항상 찾는다. 더 큰 한 걸음을 걷기 위해 충분히 쉬기도 해야 한다. 그런 것이 나의 플랜이다.
한편, 이 영화에 악인이 없다. 상황에 따라 대척점에 서는 관계는 있지만, 악인은 없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나와 대척점에 있는, 혹은 경쟁하는 자를 악으로 보지 말라. 상대가 비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상대를 이기면 그의 전진도 중단되거나 그의 길은 나와 멀어지게 되어 있다. 상대를 악으로 보는 순간, 모든 승부에서 진다. 존은, 자신이 만족할 소설을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집안일을 등한시하는 것이 악이라면, 존의 전처가 악이다. 그러나 그녀도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에 매진하는 사람이고, 그녀는 성공했다. 남편을 속여 작전을 짠 매기가 악인인가? 아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 노력한 것이다. 존과 전처가 악으로 보이는 것은, 집안일을 등한시하는 자신 때문이겠다. 그러나 존과 전처가 함께 살 때, 존이 살림을 했다. 존과 매기가 살 때 매기가 집안을 먹여 살리며 살림을 했다. 매기는 남편이 협력을 하지 않아 힘들게 하니 반품하려 한 것이다. 존은 독선적이고 집안을 돌보지 않는 전처를 피해 매기에게 온 것이다. 존과 매기는 이기적인가? 부부라는 관점 말고, 가족이라는 관점에서, 이렇게 흔들리고 혼란스러운 부모의 아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 부모들은 악인가? 이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플랜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오히려 흘러가는 상황에 맞춰 걸어 다녔다. 참, 안타까운 상황이다.
나침반을 항상 휴대하지 않고, 나침반으로 정북을 항상 확인하지 않고 헤매는 내가 나를 불행하게 한다. 아이들을 불행하게 한다. 평생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살기로 약속한 반려자를 불행하게 한다. 인정했던 것은 인정하자. 그러나 언제나 정북을 가리키는 나침반을 기준으로 흔들리지 말자. 계획을 세우고 정북을 정하고 항상 정북을 가리키는 나침반을 확인하며 한 걸음씩 계획을 실천하자. 어떤 상황이 닥쳐도 결코 길을 헤매어 목표에서 멀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매기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대로 남편을 전처에게 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