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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Jun 27. 2020

설마, 내가 겪겠어?

세월호 사태, 코로나바이러스-19, 그리고 또 뭐가 있었지? 몇 년 전에는 북한의 대포 공격, 산불로 낙산사도 날아갔다. 


우리가 인적 혹은 자연 재해가 겪을지 여부는 정말 신만 아실 것 같다. 그런데 5만 년이라 상정하고, 그 긴 인간의 역사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재해를 만났다.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누군가는 멀쩡했고 누군가는 부상을 크게 혹은 작게 입었다.


우리는 안전한 지금만 보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다못해, 옆 사람이 사탕 먹다가 목에 걸렸는데 복부를 압박해 그것을 빼낼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일상에서 질식사를 막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우리는 사건을 예방하는데 소홀하다. 담당자가 열심히, 성실히 직무를 다 하면 인재는 없다. 문제가 생기면 담당자 문제이니 처벌하면 재발은 방지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학교의 커리큘럼을 봐도 재난 대비 교육은 없다. 가끔 소방관이나 소방관 출신 분들을 모셔 강연을 듣는 학교는 있는 것 같다. 이로써 된 것일까?


“학교는 어떤 교육을 하고 있나?”를 알아보기 위해 우리가 참고하는 것은 커리큘럼이다. 전국 초 중 고등학교 커리큘럼은 직장인 양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것을 대대적으로 고치자는 것이 아니다. 먼저 밝힌다.


100년 전을 돌아보자. 당시의 사람들이 재난에 대응할 기술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21세기인 100년 후를 살펴보자. 지금 사람들이 재난에 대응할 기술을 알고 있을까? 아마도 재난영화 마니아가 머리로만 알고 있거나 일부 소방관, 경찰관, 군인 출신 분들이 실행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재난이 터지면 사랑하는 자녀에게 심장 마사지도, 인공호흡도 못하는 사람들이 지금 사람들이다. 부러진 팔을 고정할 줄도 모른다. 감염을 우려해 상처를 씻는 방법도 모른다. 우리는 모르고 참 잘도 살고 있다. 평화의 시대이기 때문일까? 진짜 평화의 시대인가? 나에게만 평화의 시대인가?


교육이 갖는 기본 속성은 대비, 예방이다. 실무에 들어가기 전 필요한 지식을 익히는 과정이다. 모든 사람들이 재난에 휩쓸려 살 수 있는 가능성마저 잃길 바라지 않는다. 


예전 ‘교련’이라는 과목이 있을 때, 구급 법을 교육 받았다. 이론만 달달 외우고 말아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하다. 구급 법, 대중에게 공지된 시설 구조도 읽는 법, 산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태양의 위치 등으로 현 위치를 알 수 있는 법 등 긴급 시 살기 위해 필요한 기본 지식은 과목을 나누어야 할 정도로 많다. 마트에 가는 것 말고 식량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 눈앞의 풀이 식용인지 아닌지 모르는 사람들. 절대 재난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 뉴스 기사일 뿐이라는 안일함. 더구나 재난 시 아이들, 노인 등 연약한 사람부터 구한다는 상식도 잊고 자신만 살려는 이기심. 


안전 교육이 필요하다.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교육할 필요가 있다. 안전 교육이 수준과 내용을 구분해 초 중 고등학교 12년 간 주요 과목으로 대접 받는다면, 아마도 우리는 재난 대응 외 생명의 소중함,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을 함께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나라의 역사가 국영수에 밀리는 나라, 가난과 약함의 나라에서 출발해 기능 위주, 기술자 위주의 교육에 매달리는 나라, 출신이 아니라 인재를 중시하는 것은 좋으나 획일적 인재 편성으로 사라지는 재능들. 이런 현재 교육이 나라의 미래 인재의 재능을 스스로 밟아 짓이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비무환 有備無患, 예방, 대비, 준비에 중점을 둔 교육, 사고방식, 가치관이 보다 여유 있는 현실을 만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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