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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에게

히로에 레이,우로부치 겐/블랙라군

by 가브리엘의오보에

어쩌면 넌 머리 좋은 사람일지도 몰라. 속한 조직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보다 더. 견딘다는 것은 이기는 것보다 어려운 일. 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니까. 너는 현재 상황에서 해야 할 최적의 행동을 선택해 낼 수 있는 능력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네게 답답함을 느낀다.


답답함 #1.

왜 부장을 따라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았나? 자신을 배신한 존재가 회사뿐만은 아니었잖나. 지금가지 잘 이겨내 왔잖은가? 너는 대체 블랙 라군의 조직에서, 혹은 그 도시에서 무엇을 본 것인가? 견디지 않는 삶? 자신의 이름을 건 인생? 굳이 남을 필요가 없었다. 총도 제대로 쏠 줄 모르는 네가.


답답함 #2.

해적질도, 갱단의 추적도 경험이 없는 네가, 어떻게 그 위기들을 벗어날 수 있었던 거냐. 그 위기를 넘길 때마다 넌, 중공업 상사의 발길질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위기를 모면한 다음의 얼굴을 하고 있다. 무엇이 변한 것이냐?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블랙 라군의 일원이 됐을 때도 너의 환경은 변한 것이 없다. 너 자신도 변한 것이 없다. 회사에서 강제 퇴사로 생계가 위협 받는 상황에서 견디며 변한 너와, 블랙 라군에서 빗발치는 총알 아래 살아남으며 변하는 너와 무엇이 다른가? 왜 남았나?


답답함 #3.

카케야마 부장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 전혀 굽힘이 없이 전진하는, 각오 자체인 사람이다. 어떤 상황이든 해결해 나가며 상사 앞에서 절대 충성을 보이는 그는 각오의 화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너는 투철한 각오도 없이 현실을 용케도 살아내고 있다. 인생에 각오는 필요 없는 것인가? 지금을 넘기고 숨 한 번 돌리면 족한가? 시원한 맥주 한 잔이면 내일의 태양에 다시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인가?


답답함 #4.

레비의 이지매를 잘도 견뎌내고 있구나. 상사의 이지매를 견뎌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아! 레비에게는 대들어 상황을 전환하던데, 그 때는 무슨 용기인가? 막판에 몰린 짐승의 마지막 고양이 깨물기인가? 왜 회사에서는 그렇게 못했나? 레비의 총에 맞는 것이 회사에서 잘리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었나?


답답함 #5.

스페인어 통역도 가능하고, 그 말이 루마니아어인지도 기억 속에서 찾아낼 뿐만 아니라, 라군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기지까지 부리는 너는, 오히려 대기업에서 그런 태도로 살았다면, 상사에게 엉덩이를 차이진 않았을 것이고, 카케야마 부장처럼 승승장구 했을 텐데. 왜 지금은 가능해진 것인가?


P.S.

각오한 자가 지킬 규칙은 하나, 견디는 자가 지킬 규칙은 수만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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