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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Dec 11. 2020

행복 체크

Gabriel's Playlist

‘우리는 행복하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불행하다’

양승권 작가의 ‘니체와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의 첫 챕터 첫 글의 제목이다.


양승권 작가의 ‘니체와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책을 계속 읽어 보자.


‘장자(莊子)
사람의 뱃속에는 빈 공간이 있고, 마음에도 자연스럽게 놀 수 있는 텅 빈 공간이 있다. 마음에 자연스럽게 놀 수 있는 청 빈 공간이 없으면 눈, 귀, 코, 입, 마음, 지식/지혜 등에 의해 발동한 정욕들이 서로 싸우게 된다. 사람들이 큰 숲속이나 산속을 좋아하는 이유는 정신이 정욕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인간관계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리 거창하게 정해 놓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상대를 개조하려고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해 놓은 목표를 사랑하는 것이다. 왜 자연 대상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인간은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이미 있는 것들을 그대로 바라보며 만족하는 것에 행복의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까지 읽다보니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지 궁금했다.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네이버 국어사전


이런 자문을 하게 됐다.

ㅇ 난 언제 행복했나?

ㅇ 어떤 상황에 행복을 느꼈나?


내가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봐야 내가 행복한 기준, 중심점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다. 


이 책에도 기술되어 있지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 너무도 많은 매체에서 인용되고 편집되고 논한 문장이라 익숙하여 지겨울 정도다. 왜 지겨운 가? 이 문장의 첫 부분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인정 혹은 정의할 수 없어서 이지 않을까? 필자는 그랬다. 필자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다.


만족, 충족은 결핍이 존재하기 때문에 태어난다. 한 때 필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만족과 기쁨에 흐뭇한’ 행복인지, ‘문제와 곤란함이 없는’ 평화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물론 평과와 행복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한쪽이 다른 쪽의 충분조건임에는 분명하다. 다만 인과관계를 형성할 만큼 필요충분조건 관계가 되지 못해서다. 


만족과 기쁨이 흐뭇하지만 마음의 평화는 없고 번잡스러움에 지치거나, 마음은 평화로운데 만족과 기쁨의 순간이 없어서 갈구함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 기존의 평화로움이 침해당하기도 했다.


필자가 욕심쟁이여서 인지, 아니면 길을 찾지 못해서 인지 알 수 없다. 다만 행복과 평화를 모두 갈구하는 나이임에는 틀림없다.


‘이젠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평화를 갈구하는 현대인이 그리는 삶의 모습은 ‘실업 상태’라는 글을 얼마 전에 읽었다. 속세의 번잡함과 꼬이지만 하는 연을 끊고 좋아하는 것과 원활한 것만 주위에 두는, 지극히 개인주의적 발상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갈망이 강해지면 이기적인 발상도 떠오른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은 행복과 평화다. 그래서 매일 체크해 보기로 하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봤다.


By Gabriel’s Oboe

*Excel 버전 다운로드: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4IRZWJmyZRqfulJSvVdfLVnUfNZMlyPXm2aNcAyrxVg/edit?usp=sharing

*Numbers 버전 다운로드: https://drive.google.com/file/d/1zxZPlZ60Y12f_xLNn7ccScnEYB3cOnIC/view?usp=sharing


주간 단위로 매일 행복 정도를 수치로 입력하고 수치 좌측에 수동으로 색을 채운다. 그리고 2 미만에 도달했을 때 그 이유를 생각해 보고, 2 이상에 도달했을 때 무엇으로 인해 그랬는지 표시하는 방식이다.


척도는 1부터 5로 나누었다. ‘1’은 전혀 행복 평화를 느끼지 못한 상태, ‘2’는 약간 느낀 상태, ‘3’은 윤곽이 잡히게 느낀 정도, ‘4’는 행복 평화의 상태, 그리고 ‘5’는 행복과 평화로 미쳐 나갈 정도로 날아갈 듯한 상태를 의미한다. 척도가 균등하지 않게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척도를 세워보자.


수치를 입력하면 표 아래 그래프가 변한다. 그렇게 입력하고 매일 자신을 돌아보며 행복과 평화의 순간을 식별한다. 그리고 주간 단위로 차주에는 무엇을 어떻게 보완해서 수준을 올릴지 고민한다.


정량적 평가는 정성적 반성보다 상황을 시각적으로 보여줘서 검토와 고민을 하기에 도움이 된다. 정량적 수준을 기점으로 금주는 2 정도였으니 차주에는 3이나 4 정도로 올려보자 라고 차주 출발점을 발 디딜 정도로 명확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이 체크목록을 일기로 쓸 것인지 아니면 계획으로 쓸 것인지는 사용자의 선택이다. 다시 말해서, 겪고 나서 반성을 할지 계획 예상 상황을 구성하고 대응해 나갈지는 사용자가 결정할 문제라는 점이다.


계획으로 사용할 경우, 1주 단위로 목표 수치를 채운다. 이미 일상의 주기는 발에 밟힐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러니 ‘무엇 무엇을 개선 달성 실행하여 수치 얼마에 도달하자’라든가 ‘목요일은 대부분 이런 상황에 지치니 이 부분을 개선해 보자’라든가 계획을 세운다는 의미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필자의 자기 계발 혹은 개선의 지침으로 삼은 이유는 유비무환을 가장 큰 가치로 두기 때문이다.


필자는 인간이 1초 후의 미래도 알 수 없다는 생각에 맨땅에 헤딩하듯 현실에 부딪히며 살았다. 덕분에 3주간 병원 입원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을 만난 후에도 한 동안을 이렇게 지냈다. 하지만 이 책의 이야기를 여러 번 읽으면서 필자의 일상이 4사분면으로 나뉘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을까 싶은 분수령이 됐다.


행복과 평화의 기준은 100인 100색이다. 100인 모두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고 경험을 누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 서울 여성 인구 등 인구통계학적 기준으로 개인의 삶을 퉁 치고 갈 수 없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활권에서 경험하지 못했다고 하여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던 지난날들도 있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적이 있었고 꽤 오랜 시간 그런 채로 살았다.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쳤다.


혹자는 이럴 때 절대자에게 기도를 한다. 도와달라고, 이룰 수 있게 해 달라고. 마치 맡겨 놓은 것을 찾는 것처럼. 만일 절대자가 실존하더라도 인간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도와줄 방법이 없지 않을까?


Photo by Amaury Gutierrez on Unsplash


목욕통에 몸을 담그다가 ‘유레카’하며 순금을 식별할 방법을 찾은 그도, 그 순간 전까지 지속적으로 일상 속에서 그 문제만을 생각했을 것이다. 집중했을 것이다. 그러니 목욕통의 물이 넘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된 것이 아닐까?


필자가 그린 이 체크목록이 해결책이 아니다. 도구를 해결책으로 간주하지 말자, 이제는. 자신에 맞는 도구를 찾는 것조차 자신의 일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인간의 행동에서 비롯됐다. 행동하지 않으면 현실은 변화되지 않는다. 넘어져 코피가 나고 무릎이 까질 때 울지만 말고 싫은 상황, 즉 안 넘어지려면 어떻게 할지 치열하고 고민하고 시도하고 실험하자.


https://youtu.be/e9dZQelULDk


*표지 이미지: Photo by Everardo Sanchez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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