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막연함
하나씩 따라 하다 보면 지친다. 그래서 책을 서가에 꽂아 두고 도망치듯 다른 책을 집어 든다. 그러다, 의무감에, 이러면 안 된다는 자책에 다시 그 책을 집어 들고, 공부를 시작한다. 물론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할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다 보면, 또 지친다. 지겨워진다. 도움이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고, 양식으로 삼으려고 책이 일러준 대로 따라 한다. 지친다는 것은,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책대로 해서 조금씩 나아지는 내 모습은 둘째로 하더라도, 책 내용대로 원활하게 흉내라도 냈다면 부편해도 재미가 붙었을 것이다. 결코 중간에 그 즐거움을 스스로 잘라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읽었다가 한동안 보지 않는 과정을 되풀이하다보니 책의 앞부분은 너덜너덜 유물이 되어 간다. 그 손때와, 페이지 접착 부분의 벌어짐, 심하면 낱장으로 분리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책을 잊지 않고, 다시 돌아가는 것은, 그 책대로 내가 할 수 있다면, 1만 시간이 걸리진 않더라도 어제보다 나은 내가, 더 행복해진 내가, 더 충족된 내가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 가두어 두었던 세상의 모든 악과 질병이 다시 세상에 나왔어도 희망이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이야기는 이해가 안 된다. 왜 희망이 악과 질병들과 함께 가두어져야 했을까? 그것은 희망이 주는 중독성 때문이다. 언젠가는 행복해질 것이라는 막연함 때문이다. 희망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해 결국 인간이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자기 개발 서적이 주는 막연한 희망. ‘내가 알려줄게’라는 그 보증할 수 없는 가르침. 세상은 결코 한 가지 질서로 정리되지 않는데, 자기 개발 서적은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표지부터 풀풀 풍기는 그 희망의 향기가 독자의 손을 이끈다. 하지만, 자기 개발 서적이 범하지 않는 실수는 ‘보증하는 것’이다. 결코 성공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글에는 보증하는 것보다 더한 힘이 넘친다. 단정적 표현도 많고 때로는 감동도 준다. 막연한 희망에 빠져들게 한다.
오히려, 내가 좋은 결과를 낼 때를 기억해 보는 것이 더 유효한 자기 개발 가이드가 되지 않을까? 좋은 결과를 낸 적이 없다고?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다. 맛있는 밥을 만들었을 때 이것을 좋은 결과로 기억하지 못했나? 왜? 만족스러워서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일 맛있었기 때문에 당연하게 넘겨 버렸기 때문이다. 매일 적어도 한 끼의 밥은 지었을 것이다. 쌀을 이렇게 저렇게 씻고, 밥물을 저렇게 이렇게 맞추었을 것이다. 그 순서를 굳이 기억하면서 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했을 것이다. 익숙하여 뇌에 저장된 기억도 떠올리지 않고 몸이 기억하는 대로 해도 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기 개발 서적을 읽으며 자신을 발전시키려는 사람이라면 업무만이 아니라 일상도 대상으로 삼는 것이 좋다. 작은 기쁨이 쌓이면 그것이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글을 잘 쓰고 싶으면, 잘 쓰는 법이 기술된 책을 볼 것이 아니라, 매일 글을 쓰고, 그것을 읽고,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을 고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숨 쉬듯, 습관이 되고 몸이 기억할 때까지. 굳이 잘 쓰는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을 필요도 없이. 내가 타인에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조리 있게, 그들이 이해할 수 있게 쓸 때까지 계속 쓰는 것이다. 타인의 덧글에 기대를 걸어도 될 것이다. 악풀에 화내지 말고 그가 지적하는 내용에 집중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쩌면 책을 다 못 읽는 것은, 왕도를 찾다가 결코 세상엔 왕도나 첩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 개발 서적의 효용성’을 무시해서가 아닐까? 어떤 일을 해내는 방법에 보편타당한 길이 있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자기 개발 서적의 역할 설정(positioning)부터 잘못된 것이다.
다 읽지 못한 책. 방치한 책을 세어보면, 책꽂이, 도서관, 심지어 디지털 대여 앱까지 수백 권은 될 것이다. 결국 독서도 나에게 맞는 책을 고르는 눈을 필요로 하는가 보다. 남의 말에, 남의 평가에, 랭킹에 그 책을 접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책이 나에게 맞는 것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어머니, 좋은 아버지’를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행복한 가정’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도 있다. ‘훌륭한 아이의 부모님의 자녀교육 방법’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대부분 직업적으로 성공한 사람의 집안 이야기)이 있다. 그 프로그램의 의도나 목적은 ‘자랑질’이 아니다. 성공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따라하지 말아라. 부모의 의사에 대항하는 아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믿고 키워주는 부모일지도 모른다. 이미 부모 자식 간에 신뢰가 형성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들의 방법을, 부모의 의사에 대항하는 아이가 있고, 아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판단에 하지 못하고, 부모 자식 간에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집안에서 그 성공사례를 그대로 따라해 봤자 오히려 상황은 나빠질 것이다. 우리 가족이 단 한 번이라도 서로 얼굴을 보며 웃었을 적이 있을 테니 그것을 기억해 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표의 구성이라든지, 글쓰기의 기본이라든지, 부모 자식 간에는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는 원칙이라든지 기준을 삼을 내용은 책에서 참고할 만하다. 기본과 핵심은 알고 가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이다. 나에게 맞는 성공 방법을 찾을 눈을 갖는데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이미지: Photo by Elijah O'Donell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