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이미지: Photo by Rachit Tank on Unsplash
눈앞에 긍정과 부정이 있을 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긍정일까 부정일까?
앞에 부정이 아니라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부정으로 본다면, 뒤돌아설 것이다. 문제를 목표로 본다면, 뛰어들 것이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 나는 부정이라고, 혹은 나는 목표라고 인식한다.
세상의 모든 것의 정체는 내 인식에 따라 결정된다. 의자를 책상이라고, 고양이를 강아지라고 인식할 경우는 없다. 물론, 내가 내 인식에 동의할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근거는 물질적일 수 있고, 혹은 정신적일 수 있다. 논리적일 수 있고, 판타지일 수 있다. 근거가 무엇이든, 근거가 존재하고, 그에 근거해 동의한다. 그럼, 인식은 정의가 된다. 정의는 한동안 시의성을 갖는다. 그 정의를 흔들 다른 인식이 나타나기 전까지.
내가 주위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든, 오롯이 내 안의 세계 일이다. 남이 그 대상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든, 그것은 'Not my business'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주위 세상이 나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이 200개면, 약간의 다름도 인정하지 않을 경우, 100가지 인식이 발생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경우에 따라 대학교. 같은 동네에서 살아왔다. 동일한 방송을 보고, 동일한 영화를 보고, 동일한 음악을 듣는다. 그래도 양보하지 않고 100가지 인식이 생긴다.
제 멋대로의 세상이다. 누구는 좋다고 하고, 누구는 나쁘다고 한다. 누구는 흑백 논리로, 누구는 다양성을 인정한다.
맞다. '누구는'이다. 그 '누구는' 중에 나도 있지만, 대부분 내가 아니다.
'누구든'의 인식에 동의한 것이라 소리칠 수 있다. '누구든'의 인식이 내 인식보다 멋져서, 그것은 내 인식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자기 생각에 변명을 마련하는 나는 한심해 보인다. 되도록 멋진 것을 주위에 놓고 싶다. 발생이 나에게서 비롯됐던 타인에게서 비롯됐던, 저작권이 무슨 소용인가? 내가 동의하면 나의 인식이 되는걸. 내 주위 세상에 대해 하나하나 정리할 의무는 없다.
살아가며 내 속에서 발생한, 혹은 내가 동의한 인식 혹은 정의는 내 삶에 영향을 미친다. 타인의 멋진 인식을 가졌는데, 그로 인해 내가 싫은 결과를 맞으면, 변명할 수 있다. '난 원래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여기엔 이면이 있다. '난 원래 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어!' 내 주위 세상에 대해 모두 정리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도시에 살고 있다. 주소가 읍, 면이라고 시골에 산다고 말하지 말자. 도시에서 시작된 문명이 모든 가게에 흡수되어 있다. 아궁이를 사용한다고 시골이 아니다. 오히려 레트로한 생활을 하는 것이다. 도시는 돈과 물건을 교환해야 생존할 수 있다. 돈은 하루 종일 일해야 한 달에 한 번 내게 들어온다. 교환의 결과가 오랫동안 긍정적이길 바란다면, 자신이 내린 인식과 정의를 갖는 것이 어떨까?
자신의 인식 혹은 정의가 옳은지 그른지의 문제가 아니다. 나에게 가장 잘 맞고 적합한 인식 혹은 정의는, 아직도 내가 나를 모르지만, 내 인식 혹은 정의일 것이다. 후회해도 그리 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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