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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Aug 04. 2021

왕은 노릴 만한가

*커버 이미지: Photo by kilarov zaneit on Unsplash     


  


조선으로 귀화한 여진족, 돌보지 않은 조선. 그 복수전. 실무자가 귀화 여진족을 이용한다. 왕은 과연 이를 알고 있었나? 여진족의 귀화 역시 알고 있었나?     


왕은 권력의 정점일지 몰라도, 왕과 정보 사이 실무자(신하)가 있다. 북을 쳐 억울함을 알리는 '신문고', 글을 직접 올리는 '상언', 왕의 가마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가전 상언'과 '가전 격쟁', 궁궐 문으로 들어가 징을 울리는 '격쟁' 등. '백성들이 무조건 국왕에게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억울한 사연이 있는 사람은 일차적으로 자기가 사는 지역의 관서에 호소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사헌부에 억울함을 호소해야 한다. 사헌부에서도 그 사연을 다루어주지 않고 기각하였다면, 마지막 수단으로 국왕에게 호소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서 국왕에게 제출된 상언들은 승정원을 통해서 국왕에게 보고됐다. 국왕은 사안별로 관서에 보내 조사하여 다시 보고하게 하였는데, 보고는 5일을 넘길 수 없었다. 국왕이 관련 부서에 신속한 보고를 요구했던 것은 백성의 억울함을 속히 해결해주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조작과 방해가 가능한 구조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은 신하들과의 논쟁에서, 신하들이 민의를 막고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다고 성토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성군은 민의를 들어야 한다고 왕의 스승인 신하들은 말한다는 점이다. 왕의 스승은 누구인가? 바로 민의와 왕 사이에 선 실무자(신하)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세자를 역모로 몰아 살해하려 목숨을 노리고, 자신의 딸이 낳은 계비의 어린 적통을 세우려 한다. 그래서, 죽은 왕을 생사초의 힘으로 되살려낸다. 세자 앞에 선 살해 조직은 세자는 존재하지 않고, 역모자만 있다. 과연 조선의 신하들은 왕을 어떤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왕권과 신권이 1:1의 비율을 갖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에 기반하면, 지력의 정도전이 재상 총재를 맡고, 무력의 이성계가 왕 고유의 권한인 재상 인사권을 가지고 국가를 대표한다.     


세종은, 태종이 정리한 신권에 기반해 정치를 시작했고, 그럼에도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것은 신하는 뇌를 가진 왕의 손과 발이다. 또한, 조선은 정치는 총재를 중심으로 한 신하가 하고, 왕은 총재 인사권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으로 출발했다. 이 이론이 구현된 시기는 태조 이성계의 집권 기간에 한한다. 1차 왕자의 난은, 정치를 왕이 직접 하는 형태를 구현하기 위한 과정이다.     


신권이든, 왕권이든, 힘, 사람을 움직일 수 있어야 구현할 수 있다.     


힘이 없는 왕은 국가를 대표하는 '꽃'이다. 이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이 정몽주에게 자신이 구상한 새로운 국가 형태를 설명할 때 등장한다.     



숙종이 환국정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의 주도권을 당파에 주고 뺏는 방법이었다. 인사권 이상의 방법이며, 이는 이에 동조하는 손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숙종이 연잉군의 등극을 위해 당파의 영수와 독대를 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 독대가 '부탁해' 만으로 이루어졌을까? 신하가 왕이 될 사람을 지원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힘이 필요했고, 현직 왕과 당파의 수장 간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명이다'로 퉁치고 넘어갈 수 없었다는 점이다.     


왕이든, 당파의 영수든, 그들의 의사에 전적으로 충성하는 이들이 있고, 충성자들이 실권이 있어야 왕이나 영수가 권력을 갖는 것이다. 이는 현대의 기업과 정치권 모두 동일하고, 전 세계 모든 조직에서 권력을 얻는 방법이다. 뛰어난 한 사람을 추종하는 이들이 많든, '나의 장자방이 되어 주오'로 같은 철학을 공유하든, 권력은 실무를 할 '사람'이 있어야 존재한다. 정리하면, 권력이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연산군은 공포 정치로 신하를 다루었다. 세종은 집현전과의 연합을 통해 지식으로 정치를 했다. 성종은 초기 훈구대신의 '귀염둥이'로 살았다. 정조는 규장각과, 태종은 숙청과 제거로 정치를 했다. '왕'이란 이런 존재인가? '어명' 혹은 왕명 하나로 신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의 자리, 그 앞에서는 누구도 머리를 들지 못하는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왕은 노릴 만한 자리가 아닌가?     


어명 하나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왕은 매력이 없다.     



신하는 충성하고, 군사부일체를 지키는 존재여야 하지 않나? 하지만 맹자는 백성이 왕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한때 맹자를 읽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조선에서 가장 큰 죄, 역모이기 때문이다.     


성공하면 반정이고, 실패하면 역모다. 이 역시 웃긴다. 반정을 혹은 역모를 하는 이유는 정의에 있지 않나? 그것이 자신만의 정의든, 모든 이의 정의든.     


과연 무엇이 정의인가?     


민주주의는 국민이 국가의 대표를 뽑는다. 하지만 총선과 대선 이후는 조선 시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들만의 리그로 국가를 운영한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포퓰리즘'로 몰아가는 예도 있다. 세금으로 움직이는 이들이 세금을 내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대상으로 삼고 자기 생각을 펼치려고 한다. 자기 생각이 소수의 생각이 과연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국민은 권한을 위임해 국가를 운영하라고 했는데, 공무원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행정부 공무원, 사법부 공무원, 입법부 공무원이 국가 원수네, 행정 수반이네 하며 자꾸 왕이 되려 한다. 삼권분립은 편의에 따라 경계가 없어진 지 오래다. 담합과 절충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법치주의 국가라며, 유권해석으로 법을 다룬다. 민주주의이고 자유 평등 주의이며 시장 경제라면서, 이를 자꾸 수정한다. 그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 나이만 든 아이들이 우리 앞에 나서려고 한다.     


인간은 완벽한 결과를 낼 수 없다?     


"진짜 좋은 것은 모두 좋다고 한다"라는 말을 믿는다. 그렇다면 인간은 완벽한 결과를 낼 수 있는 존재다.     

우리는 모두 각자 중요한 것을 안고 산다. 모두 여기에 매달려 있다. 이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모여 국가를 이루고 대표를 직접 뽑아 권한을 위임한다. 그렇다면 잘하고 있는지 지켜봐야 하고, 명확하고 정확하게 보고해야 한다. '국민이 혼란을 일으킬 것이다'라며 숨기고 감추고 보고하지 않은 수많은 사안. 예전, 눈과 귀가 신하의 벽에 막혀 민의를 읽지 못하는 왕과 다를 바 없는 국민. 해방 후 76년. 이젠 맡겼다가 뒤통수 맞는 일을 점점 줄여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모든 국민에게 지난 1년 동안 무엇을 했고 결과가 어땠는지 명확히 보고하는 일을 정례화해야 한다. 숨기고 감추는 일이 없어야 한다.      



*참고

https://www.segye.com/newsView/20161111002781     


#킹덤 #아신전 #왕 #민주주의 #소통 #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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