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커피 피할 수 있을까

by 가브리엘의오보에

*커버 이미지: Photo by Antônia Felipe on Unsplash


하루에 커피를 몇 잔 마시냐면.


멍한 날은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커피를 마신다. 그렇지 않은 날은 아침 식사와 함께 마신다. 아침 식사와 함께 혹은 이후 마시는 커피는 대략 200~250ml. 110ml 롱고를 마신 경우 한 잔을 더 마신다. 요즘 대용량 캡슐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415ml 캡슐이 존재한다. 내 음용 양은 꽤 많다.


아메리카노는 커피가 아니다. 에스프레소를 물에 탄 커피 음료다. 유럽식 커피는 에스프레소가 대부분이고, 이것이 너무 진하고 양이 적다고 느낀 누군가 데운 물에 에스프레소를 붓고 양을 늘리고 진함 수준을 낮춘 것이리라. 라테는 커피 + 프림의 방식을 에스프레소 + 스팀 가열 우유로 전환된 것이리라. 바닐라 라테는 커피+프림+설탕의 전환재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꽤 진하게 커피를 내려 마신다는 의미다. 원두 20~25g에 물을 200~250ml 사용한다. 일반적 드립 커피는 20g에 130~150ml의 물을 사용한다. 연하게 마시고 싶은 가족은 컵 바닥 넓이만큼 끓인 물을 붓고 내린 커피를 추가하여 맛을 마일드하게 만들어 마신다.

프랑스 출장 시 브랜드 커피라 해야 하는데 커피라고 주문하는 바람에 에스프레소를 제공받았다. 진한 에스프레소에 대한 겁나는 기억을 가진 나는, 사약을 대하듯 북쪽에 절을 네 번 마음속으로 올리고 마셨다. '오!' 무슨 의미인 줄 알 것이다. 국내에서 맛본, 죽을 만큼의 진함이 아니었다. 내가 에스프레소를 마시게 된 이유다. 커피라 하면 에스프레소나 드립으로 내린 차를 말한다. 나머지는 모두 커피 음료다. 마트에 삼각뿔 포장에 담긴 커피 우유와 다를 바 없다.


불면은 아니다.


야행성이며, 아침에 깨우면 비틀거리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 내가 '아침 인간'으로 변신했다. 여기서 커피 이야기를 더하자면, 체질상 커피를 마신다고 잠을 못 자지 않다. 머리만 베개에 닿으면 잔다. 의학적으로 과학적으로, 몸은 자지만 뇌는 깨어 있을 수 있어서 다음 날 멍한 채로 생활할 수 있다고 한다. 뭐, 딱히 그렇지는 않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면 멍한 채로 하루를 보낸다.


그러니 오후 커피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내가 오후 커피를 마시지 않거나 지양하게 된 이유는 커피의 카페인을 간이 해독하는 시간이다. 아무리 카페인의 각성 약효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몸에서 소화되기 전에 잠을 잔다는 깨림찍함은 남겨두고 싶지 않다. 적어도 커피 카페인에. 그래서 웬만하면 오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대신 차(tea)의 카페인은 커피의 그것보다 나은 것이라 하니 녹차를 마신다.


커피전문점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 커피 음료는 마시지 않는 신념이 작동해서 커피를 마신다. 참고로 화자는 드립 방식의 ‘오늘의 커피’를 마신다. 간혹 당이 필요하다 생각할 때 바닐라 라테를, 아침 첫 커피인데 아침 식사를 하지 않은 날에 라테를 마시는 정도. 아이스드보다 따스하게 마신다. 오후 커피를 마시는 원인이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몸 상태와 무관하게 커피가 당기는 날이 있다. 그럼 마신다. 마시지 않기로 정했어도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는다. 생각나면 마신다. 이러는 편이 ‘오후 커피 마시지 않기’를 저항 없이 지속할 수 있다. 오후 커피를 마신다고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죄의식은 정말 잘못을 했을 때 가지면 된다.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어도 하고 싶다는 것은 가치가 남아 있다는 의미다. 그 가치를 알아 낸다.


가치가 있다면 하지 않기 어렵다.


마시고 싶을 때 마신 후의 가치, 멍한 정신을 각성하는 가치. 가치를 인정하면 하지 않기 어렵다. 하지 않기로 정한 후 이를 지키지 않고 행하면 죄 짓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했을 때 혼나던 기억인가?


세상에 진짜 잘못은 의외로 적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싫어하는 일을 하면 잘못이라고 한다. 엄마나 아내가 하지 말라고 한 이유가, 잘못이 아니라 ‘내가 그 행동을 하는 것이 싫을 때’가 더 많다.


하지 않기로 한 것을 한 행동은 규칙 위반이며 ‘이는 죄다‘라고 하는 자연스러운 사고의 연결을 지켜나가지 말자. 오히려 하지 않기로 한 것을 하는 이유를 조명해 보자. 가치가 있으니 하는 것이다. 가치가 없다면 할 이유가 없다.


전교 10등 안에 드는 아이가 만화책을 보고 있으면 쉬는 것이고, 반에서 10등 밖에 있는 아이가 만화책을 보는 것은 일탈이다. 왜 이런 판단이 가능한가? 이건 넘겨집어도 너무 멀리 넘겨집은 것이다. 자신이 위대한 예언자인 줄 안다. 그러면 실패한 인생을 살 것이라고 목에 힘주어 강조한다. 그러다가 세계적인 웹툰 작가가 되면 어쩌려고. 성공한 자녀와 따로 살기 힘들 텐데.


만화 읽기는 공부가 아니다. 성적이 낮다. 공부하지 않는 아이다. "만화 보지 말고 공부해!" 이렇게 죄의식이 형성된다. 정말 웃기지도 않다. 공부하라는 이유는 대학에 가라는 말이다. 대학에 가는 이유는 취직을 위해서다. 지금은 대학 입학률이 고교 재학생 대비 70% 안팎에 있다. 예전엔 30% 안팎이었다. 그럼 대학 입학을 위해 공부할 인원은 고교 재학생의 70% 안팎이면 된다. 더 명확한 진실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학 입학이 필요한 과정인 사람이 대학을 가면 된다. 장인 슬하에서 기술을 배워 업을 세우는 사람이 굳이 대학에 갈 필요없다.

잘못이 아닌 일이 잘못으로 몰리고, 죄인이 아닌 사람이 죄의식을 갖는다. 역모로 몰아 적을 제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잘못으로 모는 것이 더 효과적인 구현 방법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세상은 아직 고난으로 가득하고, 20살이 되기 전에 생의 고난 절반 이상을 겪는다. 세상을 살맛 나지 않게 하는 이들은 어쩌면 부모나 교사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입에서 ’나도 그렇게 컸어‘라는 말이 나온다. 무슨 상관인가? 부모나 교사가 어떤 인생을 살았던 그것은 그들의 인생이다. 자녀의 인생과는 무관하다. 이는 악순환을 만드는 행위다.


가치가 있으니 계속하는 것이다. 숨어서 하지 말고 가치를 명확히 한다. 스트레스 해소도 가치다. 현실 이탈도 가치다. 그 행동을 하는 동안은 불행하지 않을 테니까. 불행의 원인을 해소하고 행복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도 잘못이 아니다. 시도하지 않고 무언가를 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치 판단이 옳지 않다고 말하지 말라. 자신이 생각하는 틀에 맞출 수 있는 존재는 자신밖에 없다. 그러니 타인의 판단에 좌우되지 말고 자신이 판단을 내린다. 정말 현명한 이의 말, 정말 올은 조언은 누구나 알 수 있고 누구나 감동 받고 누구나 따른다. 정말 좋은 것은 누가 보아도 좋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오후 커피, 마시고 싶으면 마신다. 오늘 마셨다고 앞으로 쭉 마시지 않는다. 그런 겁쟁이의 논법은 버려라. 함께 그렇게 하기로 한 약속을 어기는 것은 규칙 위반이고 잘못이다. 자신의 가치를 따라가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 잘못이다. 타인이 싫어하는 일은 타인의 문제다. 내 행동을 타인이 싫어하는 것은 타인의 문제다.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다. 효도와도 무관하고 스승의 은혜와도 무관하다. 그것에 좌우되어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내 가치는 나만이 안다. 굴복하지 말아라. 어떤 경우라도.


시킨 자도 그 일이 죽을 짓인지 알고 있다면, 시킴을 받는 자가 의연할 때 시킨 자는 오히려 당황한다. "죽을 지도 몰라!"라고 겁을 낸다. 우스운 존재고 가능하면 멀리하라. 내 행복에 도움 되지 않는 이를 멀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행복은 모두 나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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