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신

by 가브리엘의오보에

*커버 이미지: Photo by Antônia Felipe on Unsplash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무술 하면 어떤 이미지인가? 판타지? 현실적이지 않은 기술? 남의 이야기? 그럼 호신은 어떤가?


나날이 흉포해지는 사회. 스스로를 지키는 능력도 역량의 하나다. 사무실 식수에 약을 타고, 지하철에서 이유 없이 칼을 휘두르고, 완력으로 돈을 뺏고 괴롭힌다.


나는 히어로가 아니다. 사회의 악은 피하면 된다. 아니면 잠시 굴복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그런가?

사실, 교양강좌로 전락한 호신술 강의는 조금 잘못됐다. 호신하기 위한 신체적 준비가 생략되어 있다. 도망가기 위해 사용하는 기술 역시 힘과 동체 시력과 민첩함을 요구한다. 기술로 접근하면 이렇고, 기지로 접근하면 가능한 사람 수가 확 줄어든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지키기는 해야 한다.


영화에서 막다른 상황에 몰려 전에 없던 힘이나 기지가 솟아나 위기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을까? 그래서 호신술이니 자기방어 방법을 배울 필요가 없을까? 무술이란 허황된 이야기이니 최대한 기지를 발휘에 위기에서 몸을 빼고 경찰에 연락하는 것이 현대인이 갖출 호신술일까?


무술을 배워도 허공에 몸이 떠오르지 않고 수면을 밟고 달려갈 수 없으며, 원거리의 상대를 장풍을 날려 넘어뜨릴 수 없다. 그러니 무술은 건강을 위해 반복하는 체조인 걸까? 거리의 싸움에서 도장에서 배운 찍기를 날리려 다리를 들어 올렸는데 상대가 몸통으로 밀고 들어와 그만 벌렁 자빠졌다. 내가 배운 무술은 무용일까? 아니면 내게 재능이 없는 걸까?


무술이란 무엇일까?


약자가 강자의 공격을 막는 기술.

국가를 강건하게 하는, 상무 정신의 근간.

자신의 오만을 강제하는 힘.

일격필살은 꿈이 아니라 전장의 기술.

이종 격투기에서 최강자에 오르는 기술.


무 武.


창(창 과; 戈)과 발 지(그칠 지; 止)를 합해 '창을 든 사람'이란 의미라고 한다. '그칠 지'의 상형문자가 엄지발가락이 길게 뻗은 발로 그려져 있어 이렇게 해석하는 모양이다. 현재 '그칠 지' 의미는 '발걸음을 멈추다'이다.

또 하나의 의미는, '창과 같은 무기로 병란을 막아 그치게 하다'이다. 이 경우 굳세다는 의미를 갖는다.

무술을 배운다, 무예를 배운다.


무술을 배운다고 하면, 타인과 싸우는 기술을 배운다고 해석한다. 싸움의 기술이란 말이다. 무예를 배운다고 하면, 무도에 관한 기술을 배운다고 해석한다. 심신 단련을 위한 체계적인 수련 방법이다. 또한, 예술적으로 승화하는 데 목적과 의의를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도는 무인(武人)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다. 정신 수양에 무게를 둔 의미다.


무술 혹은 무예를 배운다는 것은 타인을 제압하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수련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무술 혹은 무예가 있고 유사하지만 독특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타인을 제압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자신을 보호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타인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는 의미다. 타인이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경우 타인보다 먼저 선제공격을 하는 것은 병법과 무예의 기본이다.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의 효과를 얻고자 하는 공통된 목표가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몸이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결코,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


무는 타인 제압이다.


다양한 상황에서 타인을 제압하는 방법을 체계화하고 정리한 것이 무술의 초식이다. 얼굴을 주먹으로 공격하면 이렇게 막고 이렇게 대응한다는 일련의 공식이다. 싸움은 절대 공식에 따르지 않는다. 눈에 흙을 뿌리고 몸으로 부딪쳐 온다. 초식만 연습할 경우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타인의 공격이 자신의 어떤 부위를 목표로 하는지 파악할 눈, 공격에 신속한 대응을 하기 위한 민첩성, 그리고 최소한의 대응으로 타인을 무력화할 파괴력, 이 세 가지가 전 세계 모든 무술이 추구하는 목표다. 더불어, 일반 도장에서는 훈련하지 않는 과목이다.


유튜브에서 중국의 이종격투가가 전통무술인들을 이기는 이야기를 시청할 수 있다. 더불어 전통 무술의 무용론, 진정한 고수가 아니라는 폭로전이 함께 전개된다. 대결을 펼친 전통무술인은 어느 도장의 사범이자 누군가의 스승이며, 언제나 이렇게 방어하고 이렇게 공격하면 상대가 쓰러진다고 시연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이 이종격투가의 훅 한 방, 잽 한 방에 자세가 무너지고 초식이 붕괴하여 잡싸움의 동작을 보인다.


훅으로 턱을 공격하면 좌측 장으로 공격을 무위로 돌림과 동시에 엄지와 검지를 벌려 목을 가격하라는 초식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말이다. 허보로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진각을 밟으며 발경하면 상대를 무력화할 초식이 있고 이를 연습했는데도 말이다. 상대의 복싱식 공격의 속도에, 허보에서 궁전보로 무게 중심을 이전하는 속도가 미치지 못한다. 발경은 힘의 연결이다. 복싱에도 발차기가 있다. 땅을 강하게 차는 힘을 주먹에 전달할 경우 팔힘 만으로 칠 때보다 더 강한 힘을 전달할 수 있다. 발경 역시 마찬가지다. 적의 약한 곳에 더욱 강력한 힘을 전달하기 위해, 땅을 박차는 발, 이를 허리로 전달하는 굳건한 다리, 그 힘을 회전으로 전환하는 유연하고 질긴 허리, 어깨로의 연결, 마지막으로 타인의 약점에 주먹이 닿을 때 느슨한 주먹을 최대한 강하게 뭉친다. 이것이 발경이다. 신비의 무술이 아니다.


결국, 이종격투가가 최상의 무술인가? 로우 킥을 반복 연습하고 스트레이트의 파괴력을 향상하며 그라운드 기술을 반복하는 것만이 최강이 되는 길인가? 지금은 당랑권의 방어-공격 동시 전개도, 영춘권의 접근전 타격 기술도, 팔극권의 일격필살도, 태극권의 화경도 전설 속의 기술일 뿐인가? 도장에서 실효성 없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인가, 단지 무술의 우위는 개인 역량에 달린 것인가?


약자가 사용해 효과를 거둘 수 없다면 무술이 아니다.


힘이 약한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 나이가 어린 사람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무술이라 말하기 어렵다.


심신을 단련하고 호신을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모든 도장은 이야기한다. 도장에서 매일 앞차기를 10번씩 반복하고 집에 와서도 아침저녁으로 50번씩 반복해도 실전에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단지 그의 담력이 적어서일까? 누구나 사용해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기술은 없나? 그렇다면 이 도장에서 가르치는 무술은 어떤 사람이 배워야 실효를 거두는 초식일까?


호신술이라도 무술의 3가지 핵심 요건은 수련해야 한다.


동체 시력, 민첩성, 파괴력은 백화점 호신술 강좌에서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뒤에서 누가 껴안았을 때 배운 기술을 펼칠 힘과 민첩성이 없다면 결코 타인의 팔에서 벗어날 수 없다. 손목이 붙잡혔을 때, 상대의 손아귀에서 수직으로 움직여 손목을 빼내려면 잡힌 손목을 뺄 힘이 있어야 한다. 운 좋게 팔굼치로 상대의 턱을 가격했는데 상대가 웃고 서 있다면 상황은 이미 끝나 결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떤 부위를 어느 정도의 힘을 주어 어떤 손 모양으로 가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손목과 발목에 중량 백을 달고 초식을 수백 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어떤 훈련을 하면 필요한 만큼의 힘을 가질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방어란 상대의 공격을 막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공격할 틈을 만들기 위해 상대의 급소가 드러나게 하는 기술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뒤꿈치로 상대의 발등을 세게 밟아 틈을 만들고 손가락 관절을 구부려 주춤한 상대의 눈이나 목의 울대를 치는 것이 철사장을 수련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라고 알려줘야 한다. 어떤 방법이든 반복 연습을 통해 몸에 익혀야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음을 명확히 알려줘야 한다.


위의 이야기에 질려 버렸다면, 공동 구매를 통해서라도 보디가드를 곁에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