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듯

by 가브리엘의오보에

*커버 이미지: Photo by Antônia Felipe on Unsplash


집을 짓는 현장 옆에 선다. 하루가 지나면 어제보다 집의 형태가 분명해진다. 매일 정해진 순서에 따라 작업을 진행한다. 여러 사람이 현장 책임자의 의사결정 및 판단에 따라 일을 한다. 각자 맡은 임무를 해낸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집이 구축된다. 비가 오면 작업을 중단한다. 비가 오기 때문에 흙을 섞어 바르고 골조를 세우고 벽을 쌓아가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런 날은 모두 현장에 나오지 않는다. 작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것에 죄의식은 없다. 작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작업을 중단한 것이다. 장마에는 며칠씩 작업을 중단한다. 하늘을 쳐다보며 비가 언제 멈출지 기다리는 마음은 있어도 작업을 못 하는 것에 죄의식은 없다. 할 수 없으니 하지 않는다.


연말이면 다음 해 계획을 세운다. 바라는 바는 ’올해보다 나은 내가 된다‘이다. 플래너를 사던 다이어리를 사던 엑셀로 계획표를 작성해 벽에 붙이던 모두의 마음은 같다. 지난해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마음은 같다.


계획은 1년 목표를 세우고, 분기/월 기준으로 필수 수행 활동(전개하면 목표가 달성되는 활동)을 정해 나눈다. 분기/월 활동은 목표와 활동 내용으로 구성한다. 주/일 계획은 세분된(break-down) 계획이다. 여러 번의 경험으로 여유 있게 수행할 수 있도록 조정했고, 모든 활동은 우선순위를 정해 중요한 것(나를 개선하는데 큰 영향력을 가진 일)부터 하기로 계획했다. 내년 계획에는 각 활동에서 예상되는 변수도 생각해 대응 방안의 핵심을 요약했다. 목표 수립 및 계획 수립 활동이 지난해보다 나아졌다.


집 짓기와 다르게, 나의 목표 달성과 계획 수행은 실내에서 수행하므로, 비가 진행 중단 요소는 아니다. 이번에 예상 변수를 생각하고 대응 방법의 핵심을 정리했다 해도 예상을 벗어난 일은 일어난다. 아이가 아프거나, 뒷배 팀장이 잘리거나, 협업하던 동료가 다른 과제를 받고 떠나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 도저히 계획을 수행할 수 없을 상황은 일어난다. 죄의식이 나를 괴롭힌다. 마음이 안달한다. 무리하게 계획을 진행한다. 수행 못 하는 것 이상의 사건이 연쇄한다. 죄의식은 점점 커지고, 계획을 놓을지 고민한다.


할 수 없다면 하지 않는다.


할 수 없는 상황이 확실하면, 수행을 중단한다. 집을 지을 때 비가 오면 작업을 중단하듯. 장마 같은 상황이라서 마음이 안달해도 수행은 중단한다. 죄의식에 빠지지 않는다. 일상에는 나를 긴장시키는 일, 내가 겁내는 일, 죄의식에 빠지는 상황, 아닌 척하는 상황 등 스트레스를 키우는 일이 많다. 힘 빠지게 하는 많은 일,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나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할 수 없어. 명확해. 수행 중단.' 이렇게 해서 계획 수행을 못 하는 것으로 초래된 죄의식을 마음에서 걷어낸다. 아니 마음에 죄의식이 자라지 않게 한다.


얼마나 수행할 수 있을지는 나의 상태(condition)에 따라 다르다. 수행 양이 많은 날도 있고 적은 날도 있다. 나의 상태가 좋다면 수행 양이 많은 날이고 좋지 않다면 적은 날이다. 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이상 없다. 그렇게 생각한다. 수행 양이 적다고 죄의식에 들지 않는다. 만일 일관된 수행을 원한다면 나의 상태(condition)를 관리한다.


이제 남은 것은 이런 목표 달성 방법론을 여러 번 생각해서 다듬는 것, 나의 상태에 따라 계획 수행이 진행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 할 수 없을 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 정확한 판단으로 진퇴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목표에 닿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못할 수도 있지'와 '할 수 없으니 중단한다'라는 다른 말이다. 중단이란 행동에는 그 결과에의 대응 방안도 함께다. 마감은 정해져 있고 비로 작업이 중단된 상태다. 모든 계약에는 천재지변에 따른 계약 수행 중단이 양해되어 있다. 또한, 문제 발생 시 갑과 을이 협의하여 결정한다고 계약서에 적혀 있다. (이 시점에서 웃지 마라. 계약을 무시하는 것은 갑이나 을이나 마찬가지다. 계약 따로 실행 따로인 상황이 대부분인 것을 화자도 알고 있다. 잘못된 것을 지속하는 것은 갑의 책임도 을의 책임도 아니다. 서로 용인하니 계약이 요식행위가 된 것이다.)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이 계획은 나에게 필요한, 아니 필수적인가? 아니, 이 목표 달성은 나의 개선을 낳을 수 있나?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추가한 부분은 없나? 허세는 없나? 내 능력 이상인 부분은 없나? 남을 흉내 낸 부분은 없나? 목표를 정하면, 자꾸 목표를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달성할지 집중하자는 것이 화자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니 결정하기 전에 목표를 충분히 검토한다. '더 이상의 검토는 무리!'라면 종결하고 달성에 집중한다.


계획 수행이 중단될 때 죄의식에 빠진다는 것은 중단함에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마음 상태가 아니다. 죄의식이 자연스럽다고 여기면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사막이니까 유사(流砂)가 있는 거지'라며 가라앉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수행 못 할 상황은 존재한다. 그 상황을 식별하자는 말이다. 성공한 사람은 정확한 판단자다. 모든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더욱이 세세한 부분까지 판단하는 데 얽매이지 않는다.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