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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 여행

횡단보도에서 아이가 소매를 잡아 당긴다면

by 가브리엘의오보에

*Cover-image: Photo by Daryan Shamkhali on Unsplash


친절의 조건



친절의 조건은 진실이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진실하고 타인에게 진실합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행동하는 것이 진실된 행동이 아닙니다. 감정은 제어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본질입니다. 본질을 제대로 알면 '지금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고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세상과 관계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를 관람하고 세상과 사람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사실을 접합니다. 그 사실 속에 진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짚어 진실을 알게 됩니다. 진실을 아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은 사실이 아닙니다. 과거는 지금의 찰라 이전, 현재는 바로 지금의 찰라, 미래는 찰라 이후의 시간입니다. 사실은 과거와 현재 발생한 현상입니다. 사실이 모여 상황을 만듭니다. 상황 역시 진실은 아닙니다. 진실이란 쉽게 말해 모두가 옳다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할지 말지의 선택 여부와 무관하게 옳은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옳음에 변화가 없습니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은 적합입니다. 진실은 시간의 영향권 밖에 있습니다.



조건 없이 은혜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것이 의(義)입니다. 의(義)의 의미는 '옳다'입니다. 의를 지키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조건 없이 상냥한 마음으로 행한 친절에의 보답은 원시 시대에도 옳다고 여겼고 과학의 현대에도 옳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진실의 한 예입니다.



진실은 마음이 압니다. 진실을 깨우쳤다는 증거는 무엇일까요? 진실이 쉽게 무시되고 제외되는 광경을 봅니다. 무시되고 제외되는 것이 진실 임을 안다면, 나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입니다.



Photo by kyle smith on Unsplash



너와 내가 즐거울 방법



횡단보도에서 보행 신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적색 신호가 녹색 신호로 바뀌길 기다립니다. 드디어 녹색 신호가 됐습니다. 이때 옆에 있는 지도 몰랐던, 내 허리에 이르지 않는 키의 아이가 나의 소매를 잡아당깁니다.



"저는 길을 건너려고 합니다. 길 건널 동안 제 손을 잡고 가 주시겠어요?"



'이 아이가 왜 내게 이런 부탁을 하는 거지?' 판단이 필요할까요? 이성의 필터를 통해 진실을 파악해야 할까요?



상황 1은 이렇습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떨어진 위치의 골목에 우리를 주시하는 눈은 없는지, 그리고 아이의 눈을 들여다봅니다. 마치 내가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듯이. 그렇게 살펴보아도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시선으로 구분이 가능한 거리에 우리를 보는 눈이 없고,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아도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없습니다. 이성의 필터가 반만 작동합니다. 진실을 파악할 수 있을까요?



상황 2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아이가 귀엽다는 눈과 표정을 짓고 "그래"라고 답합니다. 어느덧 차가워진 아이의 손을 잡고, 그 손을 녹이려 아이 손 전체를 감싸 쥡니다. 아이의 걷는 보폭에 맞춰 걷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하지만 신경 쓰며 도로 끝까지 걸어갑니다. 살며시 아이의 손을 놓습니다. "됐니?" 아이는 "감사합니다!" 생긋 웃고 걸어갑니다. 어디로 가는지는 묻지 않아 알 수 없지만, 아이는 무사히 길을 건넜습니다.



만일, 나의 친절 이후에 상황이 이어진다면 어떨까요?



아이가 "제가 저기까지 가야 하는데 같이 가 주시겠어요?"라고 묻습니다. 당황합니다. 고민합니다. '나도 용무가 있는데....' 내 친절의 끝이 어디일지 모릅니다. 불안이 피어오릅니다. '혹시...'. 이 이후의 이야기는 스릴러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겠군요.



나의 친절이 너와 나의 즐거움이 될지, 스릴러가 될지 알지 못합니다. 어떤 공부를 해도 전조 없이 발생한 일을 한눈에 알아볼 수 없습니다. 선형적 인간으로서, 미래를 향해 앞으로 열심히 걸어왔습니다. 사람들을 모르니 세상을 모릅니다. 세상을 모르니 전조 없이 일어난 일을 식별할 수 없습니다.



상황 1은 "나도 바쁜 일이 있어서. 미안해." 거짓이 아닙니다. 일이 있으니 신호를 기다리고 길을 건넙니다. 내 걸음 속도로 걸어 횡단보도를 건넙니다. '옆에 다른 사람도 있었어.'


상황 2는 "그래. 어디까지 가니?"라고 묻고 아이의 설명을 듣습니다. 이유는 요청자가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순수하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상황 1에서 내 마음이 심란할 수 있습니다. 놓아 버린 아이의 손에 안타까움이 생길지 모릅니다. 예전에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아이의 손을 잡을지 모릅니다. 상황 2에서 내 마음은 즐거울 수 있습니다. 예전에 비슷한 경험이 없더라도 어린아이를 돕는 것은 진실이라 믿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제시한 사건이 여러 가지 가망 결과를 가집니다. 아이의 의도와 나의 행동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일어납니다. 나의 친절이 나의 당황함으로 이어질 수 있고, 나의 거절이 나의 심란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나의 친절이 나와 아이의 즐거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Photo by Jonas Vincent on Unsplash



너와 내가 즐거울 친절의 방법



심리학자, 심리상담사, 테라피스트, 명상 지도자가 즐겁진 않을지언정 불안과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것은 지금 할 수 있고 어떤 것은 할 수 있기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중에 친절은 꽤 어려운 주제입니다. 의도, 선택, 행동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발생합니다. 우리가 즐거울 수 있고 즐겁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는 보리수 아래에서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생각하며 명상했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고심을 거듭했습니다. 나도 그처럼 깨달을 수 있을까요? 지금은 손을 뻗으면 필요한 정보에 닿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보다 깨달음이 빠를까요?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전문가의 코칭을 받습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 우리가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없습니다. 배운 것과는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배운 범위 내에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에게 상냥한 마음으로 친절하게 행동한다면 사회와 세상은 즐거울 것입니다. 나부터 상냥하고 친절하다면, 점점 확산된다면, 세상은 즐거울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세상 변화의 시작이 나라는 생각은 진실일까요? 상냥한 마음과 친절한 행동이 바보 취급을 받습니다. 그렇게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상냥하려다가 친절하려다가 손을 움츠립니다. 이는 진실일까요? 심리학자, 심리상담사, 테라피스트, 명상 지도자는 타인에게 자신의 선택을 맡기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상냥한 마음과 친절한 행동에 상냥한 마음과 친절한 행동으로 답하는 이가 주위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것도 조심하라 합니다. 누군가 받아들인다고 상냥 친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상냥 친절하지 않는다면 이런 선택 역시 타인의 손에 있습니다.



스티븐 코비의 의견 중에 '영향력의 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원은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담고 있습니다. 태어나서 원을 넓히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스스로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진실을 알아가는 일에 성실하고 메타인지 등의 기술적 방법으로 감정을 제어하는 일에 성실하다면 영향력의 원에 자신이 들어가 있을 것입니다. 진실을 알게 되고 감정을 제어할 수 있게 되면 영향력의 원 안에 자신 외에 자신의 행동이 들어옵니다. 그날의 사실을 적고 진실과 근본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관계의 진실을 볼 수 있습니다. 나와 내 행동의 관계, 그리고 인한 인과관계. 그렇다고 타인이나 세상이 내 영향력의 원 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넣으려는 마음은 야망일 뿐이지 진실은 아닙니다. 상냥한 마음으로 친절한 행동을 하는 것은 내 영향력의 원 안에 있습니다. 다만, 진실을 아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처음엔 옳지 않은 일만 보게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에 옳은 일과 옳지 않은 일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혼재되어 있음을 아는 것이 시작입니다. 내가 너에게 조건 없이 은혜와 도움을 주는 것을 친절이라고 합니다. 너의 일이 옳은 일이라는 판단을 했을 때입니다. 근거가 있고 오랜 세월 옳은 일이라고 여기는 일입니다. 옳은 일의 옷을 입고 있는 옳지 않은 일이란 시간을 두고 알아봐야 합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행동을 조절하는 것은 나의 영향력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관찰하고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가 옳은 일을 하고 내가 그 일을 돕는다면, 너와 내가 즐거울 것입니다.



횡단보도에서 소매를 잡아 다니는 아이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일이 일어나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친절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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