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의 시대에 겨울은 12분의 3이었다. 4 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평균 3개월씩 각 계절에 할당되었다. 1년 중 25%의 기간은 휴식기이자 인내의 시간이었고 준비의 시간이었다. 농경의 겨울은 그랬다. 이러한 인상과 이미지는 지금까지 연결되었다. 와인을 이야기할 때 겨울 감성을 이야기할 때 이 이미지는 끊이지 않고 활용됐다.
서비스 시대의 겨울은 12분의 0이다. 일상이다. 동계 휴가도 없어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도구에 있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 이루어졌고 우리는 손난로를 들고 다니고 패딩을 입고 따스한 신발을 신는다. 이렇게 된 서비스 시대의 겨울은 Dress Code가 됐다. 패딩을 Long으로 할지 Short으로 할지 결정하는 계절이다. 스타일 외에는 영향을 주는 영역이 없다.
이런 와중에 만난 Little Forest. 원작은 일본의 농촌이다. 서비스 지역에서 농경 지역으로 돌아온 주인공이 4계절을 보낸다. 제철 요리가 등장하고 계절별 도구가 등장한다. 이것이 보는 사람에게 정신적 휴식을 주고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덕분에 패치카에 대한 원함이 생겼다. 이렇게 상상했다. 예전 연탄난로를 거실에 두고 스며드는 겨울 외풍을 이기던 기억을 상기한다. 연탄난로가 패치카로 변했지만.
영화처럼 나무를 연료로 사용한다. 장작은 아웃도어와 캠핑의 발달로 쉽게 구할 수 있다. 따뜻하게 불을 피운 패치카 위에 주전자를 올린다. 주전자에는 물을 채운다. 잠시 후 물이 끓고 건조한 실내에 습기가 감돈다. 습기가 패치카의 열로 데워지고 실내는 더 따스해진다. 패치카 주위에는 귤껍질을 둔다. 귤껍질이 말라가며 귤 향기가 거실에 감돈다. 그런 상상을 했다. 예전에, 귤껍질이 지금보다 농약에 덜 물들었을 때, 이렇게 말린 껍질로 차를 끓였다. 귤 차는 겨울의 심상이 됐고 겨울의 감성이 됐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이젠 진짜 현대가 되어 버린 것 같다. 과거와 달라진, 덕분에 단절된 계절이 된 것 같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서비스 시대의 겨울에도 눈이 내리고 기온이 섭씨 0도 이하로 내려간다. 눈이 내리고 기온이 내려가는 겨울의 속성 만이 두보와 이백을 연결할 수 있다. 따스한 아랫목은 사라졌지만, 보일러로 균일하게 데워진 바닥에 포근한 이불을 깔고 앉아 열정의 봄, 여름, 가을을 떠올리고 다가올 봄, 여름, 가을은 어떻게 할지 생각한다. 포근한 이불에 감싸여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그 속에서 농경의 문화 속으로 잠시 돌아간다. 긴장된 마음은 서서히 풀리고 '이랬지, 저랬지'하며 과거로의 여행을 간다. 현대의 시도 마음을 노골노골하게 만들지만, 요즘은 당시에 관심이 생겼다. 중국 사극을 자주 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가 어쨌든, 누가 지은 시든, 시는 군살을 떼고 꽉꽉 누른 압축된 문학이지만, 떼어낸 부분과 압축되어 커져버린 여백을 상상으로 채우게 한다. 그것이 마음을 다독이고 만진다. 옛 시는 농경의 시대로의 여행을 자극한다.
일상으로 변해버린 Winter,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요즘 생각해 본 것인데, 이제 공감이란 말보다 공명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될 것 같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절반을 넘어섰고, 디지털 기기로 제공되는 서비스는 사리사욕을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점점 개인화되어 간다. 예전 TV 만이 스마트 기기였던 시대엔 모두 같은 것을 봤다. 그래서 공감이 지금보다 더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화된 지금은 공감의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공명이라고 할 것이다. 같은 것을 보고 마음이 울리지만 각자의 원인을 가진 시간이다. 비 오는 장면에서 울적해진 마음은, 헤어진 연인을 상기하는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고 눅눅함에 젖어든 마음이기도 하다.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함께 울릴 뿐이다.
앞으로 Winter를 어떻게 표현해야 모두의 마음에 공명을 일으킬까? 일상이 되어 버린, 눈 내릴 때가 있고 기온이 낮아진 계절이란 공통점 외에는 현대 과학과 기술로 데워진 서비스 시대의 Winter를 어떻게 표현하면 될까? 서사 외에는 방법이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