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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Feb 20. 2023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난, 지금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난, 지금 어떤 현재를 살고 있을까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기억보다 더 일찍 너와 만났어.

우리는 대면하지 않았어.

하지만, 우리는 만났어. 스크린과 네트워크가 매개 됐다고, 만나지 않은 것은 아니야. '만남'이란 '상호 인식'이라고 생각해. 디지털 시대에 이런 생각은 틀리지 않을 거야.

만일, 기억보다 빠른 때든 아니든,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같은 시기에 네가 아니라 다른 이를 만났다면, 나는 어땠을까?



난,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면 집중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니까, 유심히 봐. 너에게 반응하는 것도 중요치 않고 한동안은 유심히 보며 너를 느끼는 데 집중해. 너가 네가 아니더라도, 마음이 같다면 동일한 행동을 했을 거야.

너에게 한동안 집중한 후에도 유심히 보기는 계속되지만 난, 너에게 무엇인가를 배우고 있겠지. 이와 더불어, 나에게서 무엇인가 버리고 있겠지. 확실히 나는 너와 만난 후 변했네. 그것은 사실이네.



지금 어떤 현재를 살고 있을까


나의 첫사랑은 어땠지?

유심히 보기를 하지 않았어. 상기해 보니 그렇네. 너무 좋아서 가까이 가고 싶어 했어. 네가 누군지가 아니라 좋아하는 내 마음에 집중했어. 결국, 전형적인 첫사랑으로 결말이 났지만, 그리고 아쉬움도 컸지만, 무엇을 배운다거나 무엇을 버리진 않았어. 나로 있었던 것 같아. 내 마음에 집중했었어.

어떤 태도가 바람직한 지라는 판단은 하지 않겠어. 마음에 집중했던, 배우고 버리든, 그것은 지금의 내 모습일 뿐이니까. 이 이야기의 주제, 너로 인해 내가 변했을까, 여기에 집중해 보자.

게다가, 내가 변했다고 더 좋아한 사람이고, 아니라고 해서 덜 좋아한 사람이라고도 판단하지 않아. 호감이라는 동일한 마음이었어. 형태와 무관하게 본질은 그랬어.

변했다고 의미 있고 변하지 않았다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 사람은 과정을 통해 현재의 나로 살기 때문이야.

더욱이, 이 이야기는 내가 걸어온 과정 중에 너와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그래, 나의 지금 삶은 어땠을까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니 이 핵심에 집중하고 있어. 정리하자면, 너를 평가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야. 오롯이 내가 대상이자 중심인 이야기야.



만일 그렇다면 난, 어땠을까?


너로 인해 배운 것이 없었을 거야.

너로 인해 버린 것이 없었을 거야.

삶의 경로, 삶의 태도, 삶의 가치관이 만나기 전의 상황은 아닐 거야.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을 만났을 것이란 상상은 배제하겠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만남이 아닌 다른 계기로 배우거나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만남이 의미가 없다는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이런 첨언은 필요 없었을까? 나에게만 집중한 이야기는 너무 이기적인가? 지금 난,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니까 이기적이라도 부정적인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해.

오히려, 너도 지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때?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넌, 지금 어떤 현재를 살고 있을까?



너와 나의 만남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여러 계기 중 하나야.


배우고 버릴 수도, 좋아하기만 했을 수도 있는 그런 여러 계기 중 하나.

너를 알기 위해 한 행동은 존재하지 않았어. 그로 인해 배우거나 버린 것은 없었어.

왕래하지 않을 이유가 3만 여 가지가 넘으니 정은 쌓지 못했지만, 대신, 잘 모르는 너에 대해 이럴까 저럴까 생각한 일이 없었어.

혹시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 나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일이 없었어. 아, 이것은 만나지 않아도 그랬을 테니 제외해야겠다.

너에게 부족하지 않도록 나를 채우는 일이 없었어. 끊어내지 못한 행동과 습관의 버림 시간이 더 늦었을 수 있었겠어. 끊어내지 않으면, 만나기 전 그대로 행동했겠다.

아마도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너를 몰랐을 테지. 잘 모르지만, 잘 모르는 정도도 몰랐겠지. 아! 이것은 큰 부분이네. 삶에게 너를 모르고 지냈을 거라는 상상은. 정이 많이 쌓이지 않아서, 아쉬움이 크진 않지만, 그래도 너를 알려고 한 호감은 없었겠네. 타인에 대한 호감은 좋은, 긍정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니, 그 경험이 없는 부분은 아쉽네.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난, 너에 대한 긍정적이고 좋은 경험을 하지 못하고 살고 있겠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아쉬운 마음이 큰 것이구나.


#만남 #변화 #현재 #삶


*Cover Image: Unsplash의 Łukasz Ra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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