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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한 Jan 22. 2020

배려는 베푸는 것이 아니고 그냥 일상인 것

호주 멜번에 사는 한 버스기사의 삶 이야기

이전에 한번 언급하였던 200번과 자매 노선(?)인 207번 버스가 있다. 시티에서 나오면 200번은 불린(Bulleen)이라는 동네로, 207번은 돈카스터(Doncaster)라는 동네로 잠시 헤어질 뿐 두 노선의 특징은 이전에 언급되었던 만큼 거의 동일하다. 이번 주는 이 207번을 꽤 많이 주행하고 있다. 벼라별 사람들이 많이 타는 노선인데, 그중에서도 장애인들이 많이 탑승하기도 한다. 내가 말하는 장애인이라 함은 눈에 드러나는 장애인만을 이야기하는 거다. 드러나지 않는 장애인이야 내가 무슨 말을 나눠보지 않은 다음에는 알 수 없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한 버스정류장으로 다가가는데 한국이라면 신선과 같은 헤어스타일을 가진 남자가 선글라스를 끼고 시각장애인용 스틱을 들고 있다. 조심스레 버스를 보도블록과 평행하게 주차하고 문을 열어줌과 동시에 차량을 낮춰준다. 스틱으로 툭툭 치면서 보도블록과 버스와의 갭을 확인하고서는 버스에 오른다.

"브런즈윅 스트리트 플리즈(Brunswick Street, please). " 오케이 서, 브런즈윅 스트리트(Okay, sir. Brunswick street)!"


그러면서 거울을 통해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한다. 이미 이 승객이 오르기 전에 우선좌석(Priority Seats), 우리말로 하면 장애인석 정도 되는 곳에 이미 앉아있던 승객이 뒤편으로 이동해서 자리를 텅 비어있었다. 문을 닫고 서서히 출발한다. 어차피 방학기간이니 시간표를 지키려면 그다지 서두를 필요는 없다. 이윽고 아까 부탁한 정류장에 다 왔다. 어지간하면 평행하게 바짝 붙여대려 하였는데, 정류장 직전에 노변 주차한 차들 덕에 쉽지가 않다. 그래도 나름 요리조리 핸들을 돌려서 최대한 맞춰보지만 문을 여는 순간 그 갭이 꽤 크기도 하고, 평행이 아니라 한쪽은 더 갭이 크다. 조급하다. 그 와중에 차를 낮추면서 "디스 스톱, 브런즈윅 스트리트(This stop, Brunswick street)!"라고 외친다. 스틱을 두드리며 앞문으로 다가오니 어떻게든 주의를 줘야겠다는 생각에

"워치 유어 스텝 서(Watch your step, sir)!" 했다. 그 와중에 이 승객이 대답한다. "아이 윌 츄라이(I will try)."  그러면서 쉽게 버스를 하차한다.

몇 정거장을 더 가니, 왜 앞좌석 승객들이 피식거리고 웃었는지, 아까 그 시각장애인 승객이 노력해보겠다며 대답을 하면서 미소를 머금었는지 생각이 나기 시작한다. 시각장애인에게 watch 하라니...


어제는 시티 한복판을 벗어나자마자 있는 첫 버스정류장에 전동휠체어를 탄 승객이 눈에 보인다. 천천히 다가가면서 탈것이냐고 수신호를 보내니, 고개를 끄덕여준다. 원래 시각장애인용 점자 보도블록에 맞춰서 차를 대어야 하지만, 이미 그쪽엔 사람 몇이 서있는 상태라 천천히 더 진행하여 전동휠체어 바로 앞에 평행하게 차를 대고, 문을 열고, 보스를 낮추고, 운전석캐빈에서 일어나 버스 바깥으로 나간다. 이 버스에는 수동으로 휠체어램프를 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 바깥으로 나가기 전 휠체어가 들어갈 아까 말한 우선좌석이 확보되었나 확인을 하니 눈치를 챈 한 젊은 승객이 재빠르게 뒷좌석으로 이동한다. 의자 몇 개를 접어 공간을 확보하고 바깥으로 나가 램프를 편다. 전동휠체어가 천천히 이동하여 자리를 잡은 것을 확인하고, 램프를 다시 접고, 버스를 출발한다.

 

웬일로 몇 정거장 안 가서 또 전동휠체어 승객이 보인다.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우선좌석을 확보하려 보니 상당히 근엄하게 생긴 머리 하얀 노신사가 책을 읽고 있다. "아 니드 투 해브 디즈 싯츠 어베일러블 서(I need to have these seats available, sir)." 하니 나를 치켜보며 그러던가 말던가 하는 표정으로 "유 어 모스트 웰컴(You are most welcome)." 한다. "위 해브 원 모어 윌 체어 커밍 인(We have one more wheelchair coming in)." 하니 분위기 파악을 한 이 노신사가 책을 주섬주섬 챙기고선 뒷자리로 물러선다.

처음으로 두 휠체어로 우선좌석을 채워서 운행을 해본다. 그런데, 뒤에서 들리는 대화 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정확하게 판별되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전동휠체어에 대한 의견을 교환 중이고, 그 가격과 정부 보조금에 관련된 내용이다. 또렷하게 들린 건 누군가의 전화번호이다. 아마도 전동휠체어에 관련한 조언을 해주는 누군가의 연락처인 듯하다. 도심지역을 벗어나 주거지역에 들어서면서 차례로 두 사람을 내려주었다.

예전에 어느 한국 방송을 보니, 한국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버스에 오르내리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고 한다. 현실 문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호주에 사는 사람이 어떻다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방송에서 보이는 문제 중 한 두 가지는 기본적인 마음자세의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고쳐줄 수 있는 문제라 보였다. 버스는 대표적인 대중교통 수단 중 하나이다. 여러 사람이 오르내리는 교통수단이다. 장애가 있거나 말거나, 다 같이 함께 사용하도록 디자인된 교통수단이다. 한국사람들, 우리 잘하는 말 있지 않는가?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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