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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한 Jan 29. 2020

패션 마스크

호주 멜번에 사는 한 버스기사의 삶 이야기

중국인이 없는 곳은 없다고 한다. 호주에도 많은 중국인들이 살아가고 있고, 그중에서도 멜번은 진짜 중국인이 많다. 어지간히 동양인이다 싶으면 대부분 중국인이다. 한국인 인구라 해봐야 전체 도시의 1프로도 안되니, 소수민족 중의 소수민족이고, 일본인들은 어디에 숨어 사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고는 다 중국인이다. 물론, 베트남 이민자도 상당히 많지만 호주애들도 그냥 보면 한, 중, 일 합한 동북아 아시안과 남쪽 아시아 사람들 정도는 구분한다. 여하튼, 엄청 많다.


내가 일하는 차고지는 그 중국인 비율이 절대적으로 많은 곳이다. 유명한 사립학교가 많이 분포되어 있고, 공립학교마저도 순위가 쟁쟁한 곳이며, 기차, 트램, 버스의 대중교통도 잘 발달된 곳이라 교육열이 높고, 비싼 동네에 거주할만한 '좀 살아주는' 중국인이 많은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중심부가 복스 힐(Box Hill)이라는 동네이다. 영어는 한마디 못해도 중국어만 할 수 있다면, 일자리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곳이다.


내가 운행하는 노선중 삼분의 일은 이 복스 힐 지역을 지난다. 안 그래도 한국에서도 중국인 닮았다 소리 듣던 내 생김새에 중국인 많은 지역에서 버스를 몰고 있으니, 뭔가 기사에게 물어보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중국어로 대화를 시도한다. 실은 회사 동료들 중 많은 수의 중국인들은 내가 그들 중 하나인지 알고 말을 걸었다가 친해진 경우가 많다. 거기다 제로에 가까운 나의 패션감각은 한국식당에서 조차 절대로 한국어로 뭘 물어보지 않는 결과를 낳고는 한다.


아내가,

"당신은 머리만 단정해도 중국인처럼 안 보여!"

어디서 이발하고 돌아오면

"어머 어쩜 거기는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놓니? 완전 중국 아저씨를 만들어놨네."


그러다 보니, 졸지에 나도 단골 미용실이 생겼다. 그런데 거기 원장이 바빠서 다른 사람의 손에 머리를 맡기면

"아니, 기다려서라고 제이슨(원장)한테 맡겼어야지. 이게 뭐야? 중국사람 같잖아."

"중국사람들 중에도 멋진 사람 많아."

"누가 그런 중국사람들 이야기하는 거야? 조선시대 왕서방 같은 중국사람 이야기지."

"......."


며칠 전 아내가 제이슨에게 예약을 하였다. 오늘 아침에 나오는 데도 다시 확인을 한다. 반전은 이 미용실이 복스 힐 한복판에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미용실 가기 전 1.5인분의 점심식사로 충분히 만족감을 채워가고 있다는 것. 오랜만에 중국 정통(?) 싸구려 만두집에 앉아, 예약시간에 맞춰 천천히 음미도 하고 글도 쓰고... 그러고 있다. 주차장에서 여기 식당까지 오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혹시 유행 중인 우한 폐렴을 막아주지는 않을까, 혹 내가 이미 걸렸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옮기지 말아야지.. 하는 기대로 마스크를 하는 것이겠지.

며칠 전부터 회사 단체 채팅방이 뜨겁다. 버스기사도 마스크를 필수로 착용해야 한다는 몇몇 기사들과, 마스크는 아무런 효과가 없고 되려 동요만 일으킬 뿐이라는 사무직 직원들의 열띤 공방이다. 그 와중에 나는 이베이에서 나름 세련된 마스크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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