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움직이고 있다
호주 멜번에 사는 한 버스기사의 삶 이야기
지금 어느 곳에 서 있던들 이 바람을 맞지 않고 서있을 수 있을까.
머나먼 고국은 이 큰 비바람을 잘 버텨내고 있으니, 먼발치 떨어져 있는 입장에서 안도의 마음이 드는데,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빙 둘러보면 이제 불어닥칠 더 큰 비바람이 올 것임이 확실하니 불안한 마음이 그 안도를 파묻어버린다.
누군가는 상황이 되어서 높다란 곳이나 먼 곳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고, 누군가는 감당치 못할 쓰나미가 덮쳐올 것이란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그 상황에서도 다른 이들보다는 더 버텨보겠다고 무언가를 재어두고 쌓아두고 있지만, 그 큰 파도가 다 쓸어가 버릴 것이란 걸 알면서도 하는 의미 없는 방책이다.
호주 총리는 몇 단계에 걸쳐 사회를 나름 격리하여 이 썩을 놈의 바이러스가 조금이라도 더 느리게 퍼지게 하려고 온갖 묘수를 다 짜내고 있는 듯하다. 거기에 맞춰 각 부처들은 엇박자로 엉뚱한 소리를 내지만, 그들도 분명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으리라. 각 주정부 수상들 역시도 나름의 머리를 짜내어 이 무서운 쓰나미의 속도를 늦춰보려 애를 쓰고는 있지만, 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괴물이 얼마나 그 노력을 참작해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동네의 레스토랑이나 카페들, 그리고 절대적인 존재 펍마저도 다 닫게 하였고, 극장, 카지노 같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도 당연히 폐쇄되었다. 교회를 비롯한 다양한 종교시설도 당연히 문을 닫았고(종교의 지유 운운하는 사람은 진짜 아무도 없다.) 인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 될 결혼식도 신랑, 신부, 신랑 측 증인, 신부 측 증인, 주례, 그렇게 5명 이하로 모여야만 한다. 장례식도 10명까지로 인원 제한이 생겼다. 멜번이 수도인 빅토리아주의, 어찌 보면 종교시 되는 스포츠 호주 풋볼도 무관중으로 미뤄진 1라운드를 치르고 나서는 그냥 시즌 종료를 외쳤다. 설마설마하던 일들이 하루가 다르게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그 와중에 도시의 움직이는 인프라, 대중교통은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비록 이용객은 거의 없지만, 이 괴물의 코앞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대중교통은 어떤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유지할 모양이다. 처음에는 우리도 마스크가 지급되어야 한다고 떠들던 몇몇 선배 기사들도 정작 한노선 한번 운행에 한두 명 밖에 안타는 승객을 보고 제풀에 투정을 그만두었다.
일상은 무섭게 공격당하고 있고, 우리는 그 일상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치를 떨고 있다. 많은 지인들이 돈벌이가 없어지거나 많이 줄었고, 나 역시 이 쓰나미의 전조현상에 맥없이 당하고 있다. 아내의 소득이 절반 아래로 떨어져 버렸고, 따로 세를 주었던 아래층은 들어오기로 한 사람이 한국에서 호주로 들어오질 못해 그나마 경제적으로 가쁜 숨을 막아주던 부소득이 없어져버렸다. 원래부터 국가의 복지수당을 받아오던 사람들은 국가가 선별하여 더 큰 도움을 주기로 하였지만, 생에서 한 번도 그 복지수당을 안 받아보던 사람들은 뭘 어찌해야 할지도 몰라 준다는 임시 수당을 신청도 못하고 있다.
오늘도 버스는 움직이고 있다. 나는 일을 하고 있고, 한없이 고마워하고 있으며, 너무도 마음 아파하고 있다.
웃을 일을 억지로라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