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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한 Dec 13. 2019

Lefts & Rights

호주 멜번에 사는 한 버스기사의 삶 이야기

어제는 대학입시를 치른 딸아이의 결과가 나왔다. 빅토리아 주는 그해 입시생들 중 1등을 100점, 꼴등을 0점으로 놓는가, 이렇게 줄을 세운다. 자신의 사생활을 존중해 달라는 딸아이는 점수 공개를 꺼리니, 상위 20% 안에 들고도 점수가 꽤 남았다고 표현하면 되겠다.


원하는 대학교나 과정에 들어갈 수 있겠냐는 나의 물음에 이전에 미리 지원해둔 학교들의 과정들을 들어가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한다. 나는 원하는 곳이라는데, 딸아이는 지원한 곳이라 표현한다.


"너는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싶니?"

"몰라요."

"그럼, 너는 어떤 일을 하고 싶니?"

"몰라요."

"아빠랑 이야기하기 싫은 거니?"

"아니요."

"그럼, 왜 자꾸 모른다고 하는 거니?"

"모르니까요."


이후는 서로의 눈빛으로 의사를 소통한다. 딸아이가 마지막 대사를 날린다.


"아빠는 내 나이 때 뭘 하고 싶은지 알았어요?"

"응,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

"그런데, 선생님 되었어요?"

"아니."

"그럼, 지금은 원하는 걸 하고 있어요?"

"그런 건 아니지만, 만족은 해."

"뭘 하고 싶은데요?"

"글세, 잘 모르겠다. 돈도 중요하니까......"

"저도 모르는 것이 당연할 거예요."


빅토리아주의 대학들 대부분은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을 찾아 전과하는 것에 큰 제한이 없다. 그러니 1년 정도 공부하다가 맞지 않다 생각되면 다른 과정으로 옮겨가는 사람들이 많고, 그러다 보니 10년 이상 대학교를 다니는 사람도 꽤 있다고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이제 갓 만 18세 넘은 딸아이가 세상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자신의 진로에 대해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새로운 버스 노선을 부여받으면 대부분의 신참 기사들은 Lefts & Rights를 찾게 된다. 어느 길에서 좌회전을 하고, 어느 길에서 우회전을 하는지 정리해둔 종이이다. 지도를 보면 편하겠다 하지만, 운전석에서 페이지 넘겨가며 지도를 들여다본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또, 어떤 전자제품도 소지하면 안 된다는 운행규칙이 있어 전화기나 내비게이션을 본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이 좌, 우회전을 적어둔 종이 한장은 신참 기사들에게는 성경과 다름이 없다. 친절하게도 코너가 급하다고 주의하라고 적어놓기도 하고, 참고 삼을 수 있는 지형지물도 나름 기록이 되어있다. 이 종이 한 장이면 그 노선은 어느 정도 대처하고도 남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 이런 종이 한 장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본다. 어디서 좌회전을 하고, 어디는 언덕이 높으니 힘을 내라 하고, 다음 교차로까지는 거리가 멀다고 하고...... 나이에 맞게 지급되는 이 좌우회전 종이를 누군가가 만들어 줄 수는 없을까?


통학이 쉬운 대학교로 가라는 아빠의 '조언'을, 딸아이는 그렇게 흘긴 눈으로 흘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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