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루션 아키텍트. 어찌저찌 오다 보니 이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제 일을 소개할 때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과거에는 건축이라는 업계에서 개발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거나, 형상을 다루는 일을 한다고 설명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또 다른 성격의 일로 넘어왔습니다.
솔루션 아키텍트는 엄밀히 말해 개발자는 아닙니다. 제가 이해하는 솔루션 아키텍트는 회사의 IT 구조를 파악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회사의 IT 구조라는 큰 그림 아래에서 개발도 겸하고 있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 성격이나 살아온 궤적은 사람들과 마주하고 복작거리기보다는, 방구석에서 코드를 보고 개선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대중이 선호하는 스타일이라기보다는, 특정 매니아층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업무 스타일을 가지고 있죠.
그런 성향과는 별개로, 지금 맡고 있는 일은 사람들과 더 자주 만나야 하는 일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상황을 판단하며, 어떤 솔루션을 어떻게 그려나갈지 추천하고 결정해야 하는 역할입니다. 단순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개발자에서, 이제는 일을 기획하고 결정하며 책임도 져야 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가늘고 길게 가고 싶던 저의 작은 바람은 이렇게 끝나버렸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주 듣던 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사람 상대하는 일은 하면 안 된다.” 흉흉하게 편집된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 대한민국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이로 인해 “난 내 상사만 상대하는 회사원이 되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말도 일면 맞지만, 저 역시 직책을 옮기며 사람들을 자주 만나보면서 오히려 크게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뜬금없지만, 레이 달리오의 『원칙』에서 말하는 것처럼, 고통을 감내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성장하는 길에 접어든 것입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개발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몰라서 어렵고, 잘 아는 사람은 그만큼 지식이 높아서 어렵습니다. 모든 걸 어려움으로 보면 결국 끝은 없습니다. 그러니 일을 하며 유용하고 재미있는 부분들을 항상 찾아내야겠죠.
AI가 일을 대체할까 봐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부분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 AI가 저를 대체하기보다는 훌륭한 비서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코드도 만들어주고, 때론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추천해주지만, 아직은 그런 내용들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본질적으로 사람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인간이 하던 특정 영역을 좀 더 합리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AI의 의의라고 봅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관점에서 보면, 사람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건 아직은 사람의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직은 괜찮습니다. 어느 세대까지 갈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언어 모델이 발전하고, 비전 모델이 발전한다 해도 사람보다 더 좋은 판단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고요.
결론을 내보면, 아직은 아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현재로서 최선의 결론입니다.
예전에는 한 가지 기술을 깊게 파는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 것들이 삶을 더 성공적으로 이끌어준다고 생각했죠. 성공을 ‘한 분야에서 깊은 기술을 가지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그것이 그 사람의 성공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회사, 그리고 여러 회사를 보며 결국에는 ‘기술이 아닌 비즈니스’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나도 이를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한계는 명확히 정해져 있습니다. 사업을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 이유로 큰 제약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레이 달리오의 『원칙』에서도 일을 직접 수행하는 자신보다는,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높게 평가하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와 같이 본인의 성공이 좀 더 큰 그림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결국 실무자의 색을 어느 정도는 지울 수밖에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그것이 노동을 하는 변호사와 사업을 하는 변호사를 가르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큰 그림을 그리고, 이제 거기에 맞는 사람들을 배치하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현재 상황의 특수성으로 제가 그 자리에 직접 들어가 있지만, 점차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맡도록 하게 되리라 예상합니다. 그리고 그 중 단순한 것들은 AI가 대신 해줄 것입니다. 마치 지금 바이브 코딩을 이용해서 일부 잡무를 해결하듯이 말입니다.
학교 다니던 시절 교수님들은 자주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때론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도 있지만, 전체적인 그림에서 현재 잘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저는 이 일을 통해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전문가로 남아 있는 분들도, 한 번쯤은 큰 그림 안에서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며 오늘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