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을 알아보기
스케치로 뭔가 만들어보겠다는 원대한 꿈은 대학원 석사 논문이라는 현실을 직격탄으로 맞고 고꾸라지게 되었다. 그 후 여러 일들이 흘러 흘러 결국 다시 건축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내가 석사 시절 한 것과는 무관하게 이전 업계에서 여러 명이 연락이 왔고, 내 쓰임새는 이곳에 있다는 판단이 들어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갈 사람들이 있기에 그 이야기를 가끔씩 공유하고자 한다.
나는 남들 귀에 딱지가 지도록 하는 말이 있다. 왼쪽 끝에 가장 안 좋은 것을 놓고 오른쪽 끝에 가장 좋은 것을 놓는다면, 가장 오른쪽 끝에서 배우고 현실과 맞춰가는 과정을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최악인 왼쪽 끝만은 안되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좋은 스승과 사람들을 만나 우수한 자료들을 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중 프로그래밍 중 가장 근본 있고 여전히 이해를 잘 못하지만 듣고 있는 수업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듣고 이해하지 못하며 내가 나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는 해외 대학 기준 학부 2~3학년 수준 정도라는 것이다.
대학원에서 프로그래밍 수업을 듣고 잠시 큰 꿈에 부풀었지만, LeetCode 문제를 몇 개 풀어보고 갈길이 멀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로그래밍은 계속 내가 개선해 나가려는 분야로 조급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준비해 나가려고 한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 오늘글에선 나를 정당화하려는 노력을 조금은 해야 할 것 같다. 업계에선 Revit = BIM이라는 공식을 자주들 세우고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BIM을 풀어서 쓰면 Building Information Model 또는 Modeling 이기 때문에 한 회사의 프로그램을 어떤 개념과 같다고 표현하는 것은 틀린 말이다. 가령 검색엔진은 구글이다라든가, GIS는 ArcGIS라던가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맞아 보이기도) 하는 표현과 같은 것들이다. BIM에 대한 나의 생각을 잠시 써보면 아래와 같다.
BIM을 하는 이유는 건설산업을 효율화하기 위한 것이지 Revit을 쓰는 것이 아니다. IFC로 대표되는 Revit을 쓸 것이라면, 사용하는 회사의 작업흐름을 효율화할 수 있다면 용도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무에서 IFC를 기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아 보이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나는 주로 제작단계에서 일을 많이 했는데, IFC 파일로 공장에 작업데이터를 보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 면에서 Nurbs 기반의 Rhino가 훨씬 많은 효용을 가졌고, 필요한 데이터를 유연하게 저장하고 꺼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Rhino가 훨씬 효율적이었다.
아무튼 나는 Rhino를 잘 쓰는 편인데, 이런 과정 안에서 배운 모델링 이해는 Revit을 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뜬금없지만 취업을 위한 프로그램 사용을 원한다면 음 글쎼... 둘 중 하나를 깊게 잘하는 방법을 익히면 될 것 같다. 어차피 가면 Revit은 웬만한 곳에서 교육해 줄 것이니까
건축이 철학이나 다른 예술과 다른 점은 실제로 지어지는 것을 또는 만들어지는 것을 가정하는 분야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제작 불가능한 디자인을 하는 건축가라면 나는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는 미켈란젤로, 미스 반데로에 등은 각자 석재, 철골 등을 잘 다루는 방법 등을 알던 사람이고 우리나라로 오면 도편수들은 현장에서 실제로 집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었다. 내 학부시절을 생각해 보면 이런 시공 측면은 일단 제치라는 교수님들의 교육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실례가 되는 얘기지만 그런 현장에 무지한 건축가를 키워낸 결과는 현장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건축가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건축교육도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지만 어쨌든
제작 가능한 수준의 3D모델링은 건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건축 전반의 과정에 건축가들이 전문가로서 활약하지 못하는 순간 주도권은 다른 곳으로 넘어간다. 나는 좋은 기회로 여러 회사 프로젝트를 통해 정해진 예산안에 디자인을 합리화시키고, 필요한 제작도를 빠르게 만드는 방법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앞서 Revit을 BIM이라고 여기는 실무 이야기를 잠시 했다. 건축에서 CAD(Computer Aided Design) 도구를 쓰는 이유를 쓰는 이유는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위함이다. 가령 제도판을 쓸 수 있지만 AutoCAD를 쓰는 이유는 수정사항이 있을 때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고, 컴퓨터 자원을 이용해 많은 부분을 자동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컴퓨터 자원을 이용해 많은 부분을 자동화하고, 효율성을 높이거나 작업 결과물 간 정합성을 높이는 것. 이것이 프로그램을 쓰는 핵심 이유다. 만약 지금 쓰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 프로그램을 분명 잘 못쓰는 것이다.
내가 다년간 그래스호퍼를 쓰면서 느낀 것은 거의 모든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에서 제작까지 모든 생애주기를 담당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거의 그래스호퍼 라이노만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카티아도 있지만 너무 비싸다. 그리고 해외 유수 대학의 연구 프로젝트를 봐도 라이노 그래스호퍼를 기준으로 작업된 것들을 꽤나 많이 볼 수 있다.
마무리가 있어야 시작도 있다는 마음에서 글을 적어봤다. 국내에서 코딩과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몇 명 있다. 어떤 사람은 각종 API를 이용하는 수준, 어떤 사람들은 높은 수준의 알고리즘을 사용해 다양한 도구를 개발하는 수준 등 다양하다. 다음에 어떤 얘기를 할지는 모르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코딩하는 건축가"가 된 기념으로 업계에서 일하며 느낀 내용을 일기형식으로 풀어나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