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76 놀 줄도 알아야 한다 : 창덕궁 후원
블록체인을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에게 모두 유명한 사람으론 사토시 나카모토가 있다. 블록체인이라곤 전혀 모르던 시절, "이런 핫한걸 일본인이 만들었다고?"라며 분개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 공부하다 보니 익명의 이름을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한 것이었다. 뜬금없이 익명을 얘기하는 건 활동 하루 만에 나의 정체를 동기들에게 들켜버렸다. 아깝다. 왜 아까울까 킄킄.
오늘은 놀았다. 내가 요즘 놀기 시작한 건 지금만큼 놀기 좋은 때도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는 회사를 다녔던 아조씨다. 회사에 메이면 돈은 나오지만 시간은 없다. 학교를 다니면 돈은 없지만 시간은 많다. 원래 대학원의 흉흉한 소문상 시간이 없어야 하지만 어디나 빈집은 있는 법. 그래서 놀아재껴보기로 했다.
자영업을 하며 일을 하는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탓에 노는 게 뭔가 죄 된 거 같은 느낌을 지울 순 없다. 하지만 100만큼 일하나 101만큼 일하나 효과는 비슷하고, 0만큼 노는 것과 1만큼 노는 것의 차이는 크다. 그리고 인생이 즐거워야지 맨날 세빠지게 일할 수 만도 없는 법. 내가 노는 걸 합리화하기 위해 오늘도 패를 열심히 깐다.
요즘 놀다 보니 어떻게 놀아야 효율적 일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노는 것도 가성비를 찾는 나는야 한국인. 어려운 말로 레크리에이션이라 그러던데, 왜 그런 용어를 만들었는지 얼추 알 것도 같다. 오늘은 여러 가지 놀이 중 창덕궁 투어를 택했다.
창덕궁과의 인연은 약 10년이 됐다. 나는 건축과를 나왔다. 영화 <건축학 개론>처럼 교수님 중 한 분이 종묘, 창덕궁, 경복궁, 명동성당 등을 탐방하고 에세이를 써오라고 했다. 서울을 잘 돌아다녀 본 적이 없는 나로선 건축을 중심으로 서울을 돌아볼 하나의 재미난 기회였다.
그때 가장 임팩트가 컸던 것은 경복궁과 창덕궁의 차이였다. 무엇인지 말하기 어려운 힘이 각 채의 형태적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작용하고 있었다. 그 교수님께선 땅이라는 무대 위에 누가 주인공이 될 것이냐는 어려운 말을 하곤 했다. 몸으로 느끼니 단박에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경복궁을 얘기할 때 흔히들 불의 기운과 숭례문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내 생각엔 땅이란 무대 위에 건축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경복궁으로 보인다. 왜냐면 하나의 강한 축 위에 주요 건물들이 내 앞길을 탁탁 막으니 내가 건물을 돌아가야 하는 꼴이 계속 펼쳐진다.
반대로 창덕궁에 가면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계속해서 그 편안한 경험을 생각해 보며 답을 내려보면, 아마 건물이 내 앞을 막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약간의 언덕진 길을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 있게 해 준 것도 그런 편안함의 역할을 해준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그런 둘 사이의 "편안함"의 차이 때문인지 나는 자꾸 창덕궁을 찾게 된다. 그리고 후원을 맨 처음 찾았을 때 언덕을 넘자마자 마주치는 부용지와 그 일대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내가 한 3회 차 까지 찾아갈 때도 그런 감동을 여전히 느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건 그때마다 계절이 달랐던 것도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추억과 기억을 가지고 창덕궁 후원 투어를 예약하고 찾아가게 되었다. 예전보다 뭔가 합리적인 느낌이 들지만 약간은 갸우뚱해지는 예약 시스템을 통해 예약을 하고 매표소에서 다시 종이 티켓으로 바꾸고 전각용 티켓을 또 발권받았다. 후원을 가려면 창덕궁을 통해서 가던지, 창경궁으로 들어와도 창덕궁 티켓이 있어야 한다. 내가 예약을 하면서 갸우뚱했던 것도 후원만 따로 예약이라는 점이었다.
몇 년 전 창덕궁 매표소는 한옥 한채 달랑 있고, 그 안에 판매하시는 안내원 분들만 있었다. 지금은 새롭게 건물도 만들고 물도 팔고 그러고 있었다. 매표소 전면에는 키오스크가 있어 무인 발권이 가능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안내원들께서 표를 팔기도 했다. 후원 티켓만 있던 나는 다시 한번 확인차 안내원분들께 물어보고 전각 관람권을 샀다. 이 과정에서 키오스크를 쓰기 약간은 두려웠다. 후원 티켓 있는데 괜히 돈 더 쓰고 잘못 사는 거 아닌가 그런 감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주 잠시간, 나도 이제 키오스크에서 주문 못할 날도 오겠구나 라는 둠스데이를 느꼈다.
오랜만에 찾은 창덕궁은 뭔가 좀 더 정비된 느낌이 들었다. 예전엔 뭔가 발굴은 되었는데 어떻게 처리하지 싶은 느낌의 공간이 눈에 띄었다. 이번에 찾아갔을 때는 그런 부분들이 다소 해결된 느낌이 들었다. 후원 입구까지 16:00까지 도착해야 하는 아주 막중한 임무가 있었기에 큼직큼직한 건물들을 제외하곤 제대로 보진 않았다. 언젠간 또 오겠지. 그렇게 말해놓고 또 안 오겠지 싶으면서도.
순서가 뒤죽박죽 올라간 사진들. 인정문. 인정전. 옆문(?). 선정전. 대조전 일부를 빠르게 훑고 후원 입구로 갔다. 궐내각사 영역은 이렇게 패싱 되어 버리는데... 마음 한구석에 "공무원 집무실을 또 볼 필요 있나?" 품고 그렇게 안녕했다.
예전에 비해 좀 더 정비된 창덕궁을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들의 핵심은 내가 보는 것은 현재의 것으로 봐야 하나 전통의 것으로 봐야 하나 그런 생각이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이런 거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내가 내 눈앞에 보는 것은 300살 된 할아버지 인가, 아니면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런 일반인중 하나인가. 300살 된 할아버지치곤 뭔가 젊은이들의 패션에 뒤지지 않아 보였다. 근데 중간중간 땜질한 곳을 보고 있자니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것이 아닐까. 예전에 만들어졌음에도 여전히 통하는 그 무언가를 느낀 것. 그리고 현대의 것으로 다시 복원했지만 예전 재료와 지금 재료가 가져다주는 질감 차이가 그런 것들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오래간만에 찾은 창덕궁에서 예전만큼의 감동을 찾을 순 없었다. 하지만 감동의 키워드가 계속해서 마주하고 느끼고 체험하며 감응의 키워드로 변해가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창덕궁 후원 탐방 무리 중 나와 같이 고즈넉한 시간을 홀로 즐기러 온 몇몇 사람들이 있다는 점도 재밌었다. 그리고 해설사 분의 설명 하나하나에 놀라는 다른 관람객들을 보며 이곳을 처음 찾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음을 느낄 수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