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건축 노동자의 일본 1년 생환기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나 보다. 블로그를 통해 좀 더 정보성 글을 제공하려다가 실패했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바로 정리해서 올리지 않으면 다 까먹게 된다. 브런치 작가 신청할 때 내가 뭐라 뭐라 쓰긴 했는데 잘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빤쓰런한 역사를 쓸 거란 얘기를 했던 건 기억이 난다. 그렇담 당연히 나의 대탈주, 출일굽기를 쓰는 것이 관리자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럼 기억나는 대로 더듬더듬 이야기를 써본다.
자신의 마음을 바로 인정하기 힘들 때가 있다. 아니면 너무나 선명하지만 차마 남들에게 말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나는 내가 왜 일본으로 가기로 했는지 명확하게 기억한다.
한계: 어떤 범위에서 최고치
한계라는 게 이런 의미란다. 저기에서 "어떤"을 "나"로 바꾸면 이야기는 간단하다. 내 범위에서 최고치를 느꼈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다른 이와 비교했을 때, 내가 그에게 따라 잡히고 종국엔 뛰어넘지 못하겠다는 것을 느꼈다. 살면서 그럴 일이 별로 없었다. 공부는 사실 남들보다 좀 떨어진다고 해도, 학점을 잘 못 받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나와 정확히 같은 포지션에 나보다 더 상위 호환인 사람이 나타난다면 마음이 상당히 불안해진다. 사내에 수많은 질투와 정치가 난무하는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지 않을까 싶었다.
어쨌든 이 인물에 대해선 나중에 얘기하고, 나는 그런 이유로 일본행을 택했다. 내가 속한 회사는 한국, 홍콩, 일본에 각각 사무소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동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서로 궁했기 때문에 어려울 수 있는 일도 빠르게 끝났던 것일 수도 있다.
해봐야 일본으로 건너가는데 유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찌 보면 맞는 얘기다. 나를 돌아보면 사실 한국에 있으나 일본에 있으나 만날 사람만 만나게 되고, 그 외의 사람들은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다. 즉, 몇 명 빼고는 사실 외국에 있으나 한국에 있으나 보는 주기가 비슷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럼에도 뭔가 많은 이들과 직접 만나 인사를 하게 된다.
아주 가까운 일본이라는 나라를 갔음에도 외노자가 겪는 인간관계의 문제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친구들과 즉흥적으로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뜻하고, 부모님과 만나기 위해서도 꽤나 많은 계획이 필요해짐을 뜻한다. 필요에 따라선 휴가를 쓰고 표를 예약해야 된다. 그냥 주말에 버스나 기차를 예약하고 집으로 내려가는 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 과정 중에 예상치 못하게 선물을 받기도 했다. 비유하면 장례식 미리보기 일까. 그렇게 한 명 한 명 인사하다보면 어떤 이는 약간의 아쉬움을 표하고 어떤 이들은 신남을 표한다. "이제 일본 가면 네가 안내해주겠네?"이런 느낌으로 좋아한다. 다양한 반응들을 볼 수 있던 점도 재밌었다. 이러저러한 인사를 마치고 짐을 꾸리고 일본으로 떠났다.
어느 정도 공적인 느낌이 드는 글에는 문제가 되는 이야기를 최대한 접어두긴 해야 한다. 하지만 나의 모난 마음은 쉽게 그런 것을 허락해 주지 않는다. 더군다나 얼마 전에 읽은 최순의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에 보면 일본 미학의 쩨쩨함을 까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나는 일본인들의 치밀함에 약간은 소름 돋기도 했다. 2년 후에 있을 올림픽을 위해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하다니. 그리고 그 단순한 광고 방식마저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 이들도 2년 후에 일이 그렇게 될지는 몰랐겠지.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여 회사에서 마련해준 임시거처로 몸을 향했다. 어떤 일본 회사는 기숙사도 직접 마련해준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럴만한 수준까진 되진 않았다. 그래도 한두 달 숙소를 마련해준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숙소와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이어서 해야겠다.
아무튼 좀 더 궁한 쪽은 일본이었기에 나는 비교적 간단하게 일본으로 넘어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