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1
양무개혁이란 무엇인가. 변발의 나라인 청나라가 서구 열강을 이기기 위해 내놓은 방법 중 하나다. 아주 옛적 세계사 수업을 떠올려보면 골자는 이렇다. 우리의 체제는 유지한 체 유럽의 무기를 들여와 이두와 삼두를 좀 키워서 서구의 멱살 좀 잡아보겠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아 이게 무기만 들여와서는 안 되는구나. 시스템과 철학을 같이 가져와야 하는구나"라는 교훈만 남긴 체 철저히 영국한테 두드려 맞은 것으로 기억한다.
현재 건축계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다양한 방법들을 가져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철학은 이해하지 못한 채 화포만 들여오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은 비난이 아닌 건설적인 비판을 하길 바라며 글을 써내려 가본다.
OKR의 핵심 정신은 서로 동기부여
<구글이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 OKR>이라는 책이 있었다. Object라는 목표와, 이를 위한 Key Result 다른 말로는 KPI를 달성하자는 그런 취지의 이야기를 하는 책이었다. 일종의 스타트업 성장기의 형태로 쓰인 책이어서 나름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그 책을 보면 서양인 감성으로만 가능한 얘기들이 나온다. 금요일 오전이 되면 다들 손에 와인잔을 하나씩 들고 그간 본인들이 한 것을 자랑하는 쇼를 가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개발자들은 서로 동기부여를 받고 선의의 경쟁심을 키워나간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고 있는 회의는 서로 경과 보고만 있지 선의의 경쟁심을 자극한다거나 기술적인 인사이트를 준다거나 하는 행위는 전혀 없다. 좀 더 날것의 말로는 이 회의를 왜 하고 있는지 마음속으론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일정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발전적으로 나가려면 일정 확인을 넘어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전수하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각 프로그램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한 프로그램 사용
프로그램하면 그냥 코드 덩어리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각 프로그램들을 써보면 그들 나름대로의 철학과 용도에 기반하고 있다. 그렇다는 말은 그런 용도와 철학에 반하는 행위를 하려는 것은 가능은 하지만 어마어마한 에너지 소모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몇몇 프로그램을 이야기해보자. 근데 맨날 같은 얘기 하는 건가 싶기도
1. Revit = 건축 데이터 베이스
Revit이라는 프로그램은 무엇이냐. 어느 스타트업이 만들었는데 Autodesk가 날름 한 프로그램이다. 문서를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 여러 사용 사례로 봤을 때 Revit은 건축의 데이터 베이스라고 보는 편이 좋다. 왜냐하면 다양한 데이터를 나름의 표준화된 체계 아래에 정리하는데 좋은 프로그램이다. 물론 실무적으론 다른 3D 프로그램에 비해 느리고, 뭔가 굉장히 딱딱한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사실 데이터를 통합하거나 깍두기 같은 건축을 할 것 아니면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 게 개인적인 소감이다.
2. Rhino = 네가 하고 싶은 건 다 해봐
Rhino는 사실 엄청 잘 만든 프로그램이다. 새로운 플러그인을 만들 때도 굉장히 쉽게 되어있고, 프로그램도 Revit에 비하면 훨씬 가벼운 편이다. 그리고 OpenSDK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C를 할 줄 안다면 Rhino의 강력한 geometry 엔진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앱을 만들 수도 있다. 사실 건축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프로젝트 관리에 대한 개념만 있고, 이를 강제한다면 사실 Revit보다 유용하다.
3. CATIA = 비정형 대용량 데이터 저장소
CATIA는 비정형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들어봤을 것이다. 원래 기계설계 프로그램 이기 때문에 자동차와 같은 곡선을 잘 다룬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점은 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기계적인 조립 방식을 기반으로 모델링을 했을 때, 시뮬레이션에도 상당히 강력함을 보이는 프로그램이다. 가령 자동차가 벽에 부딪히는 시뮬레이션을 본 적이 있다면 그건 높은 확률로 CATIA를 이용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꿈과 환상의 나라 CATIA지만 크나큰 단점이 있다. 첫째로 너무 배우기 어렵고, 둘째는 너무 비싸다. CATIA계에는 고인 물들이 많기 때문에 발끈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여러 회사의 여러 실무자들에게 CATIA에 대한 의견을 들었을 때 공통된 의견이다. 숙련되면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냉정하게 건축 워크플로우와 상당히 안 맞는 부분 이 많다.
GPT : 통계학과 강화학습에 기반한 말을 만들어주는 도구
반면 언어모델은 상당히 발전했다. 마치 강아지가 사람말을 알아듣도록 훈련하는 방식인 강화학습을 결합한 GPT는 매일 "특이점"이라는 표현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도구가 되었다. 하지만 GPT를 말하는 사람 중에 이게 무엇인지 제대로 말하는 사람은 없고, 오로지 "AI가 우리를 대체한다", "AI가 대세인데 너는 올라타지 않을 것이냐"라는 공포 마케팅 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학원때 했던 자연어 처리로 GPT를 이야기해 보면 대충 이렇다
GPT :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각 단어를 풀어보면 이 친구가 무엇인지 가늠할 수 있다. Generative : 이전 내용만 참조해서 다음에 올 내용을 생성하며, Pretrained : 방대한 데이터에 라벨을 붙이지 않고 동시 발생 확률을 기반으로 단어의 연관성을 통계론 적으로 도출하며 Transformer : Transformer라는 Attention 기법을 단어 사이에 거리가 멀어도 연관성을 계산하기 쉽도록 짜인 구조다. 여기서 핵심은 이 친구는 통계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뱉어주는 말도 통계론 적으로 맞는 말을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통계론적 방법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성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내 기준에서 GPT의 정의다. 근데 건축은 어떻나 가. 통계와 같은 정량적인 것을 이야기하기엔 데이터가 없다. 또는 데이터로 표현하기 어렵거나 사실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부분들도 분명 존재한다.
다시 양무개혁 얘기로
다시 말하면 기술 도입에 있어 중요한 것은 본인들이 추구하는 방향과 해당 기술이 가진 철학이 얼마나 겹치는지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갑자기 상부에서 AI를 하라는 폭탄이 떨어져 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은 분명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피동적으로 하는 척만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술 도입에 있어 그 기술과 철학을 동시에 이해하면서 좀 더 발전시켜 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