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이직러의 하루하루
작은 사건이 터졌다. 이날은 초등학교 동창 친구랑 약속이 있었고 속이 굉장히 좋지 않던 터였다. 그래서 원래대로라면 일찍 퇴근하려고 했지만, 퇴근 거의 직전에 일이 주어졌다. 그 일이 뭐냐 하면 외주처 사람에게 전달할 파일에 이것저것 요구할 사항을 적는 것이었다. 우리 팀원 각각은 나를 포함하여 본인이 담당하는 외주처 직원이 둘셋은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의 문제는 내가 우리 팀원 모두가 각각 본인이 담당하는 외주처 직원에게 파일을 전달해야 되는 그 일을 내가 온전히 홀로 전부 다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업무양이 어마어마해진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가슴이 갑갑하고 무겁고 불안해졌다. 내가 담당하지도 않는 다른 외주처 직원에게 줘야 되는 파일을 작업해야 하는지 사실 이해가 안 되어서 짜증도 났고 화가 좀 났었다. 나머지 팀원들은 본인이 담당하는 외주처 직원의 업무 스타일을 잘 알 거고 그동안의 히스토리를 잘 알터라 우리 팀원들이 각자 스스로가 원하는 요구할 사항을 본인이 먼저 잘 알 테니까 그렇게 본인이 담당한 외주처 직원에게 전달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는 안 되고 일이 감당이 안될 것 같았다. 우리 팀 팀원들은 본인들이 할 일이 줄었으니까 좋을 테니 빠르게 나에게 업무를 떠넘겨 주는데 그게 또 기분이 너무 나빴다. 오늘은 팀원들이 퇴근할 때 원래는 날 보면서 웃질 않는데 이 날엔 밝게 웃으면서 퇴근했다. 약간의 조롱같이 느껴져서 기분이 좀 상해버렸다. 나도 적어도 오늘은 퇴근은 빨리 해야 되는데 일이 갑자기 많이 주어졌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 일들을 주말 동안에라도 집에 가져가서 하자'라고 생각하고 우리 팀원들이 내게 건네어준 그간의 히스토리가 담긴 파일들을 내 메일함에 넣으려고 했다. 근데 내가 정말 정신이 없었던 것인지 내 메일함이 아니라 내가 담당하는 외주처 직원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다가 그 파일들을 뿌려버렸다. 황급하게 그 파일들을 지웠지만, 지워도 '삭제된 메시지입니다.'라고 뜨질 않던가. 그렇게 뜨니까 되게 수상하고 이상해 보였다. 선임이 이 일로 '얘 알고 보니까 사실은 일 정말 못하는 애네.' 또는 '정말 부주의한 애네. 그래서 싫다. 얘 때문에 나도 얘 뒤처리해야 되는 일이 많아지는 것 같아.'라고 생각할까 봐 창피했고 계속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달았다. 그 와중에 내가 퇴근을 빨리 하겠다고 선임에게 인사하러 갔는데 선임 모니터 화면에 그 단톡방이 띄어져 있어서 내가 '제가 정신없어서 파일 정리하다가 실수로 파일들이 저기 단톡방에 올려졌다'라고 말했는데 선임은 정색하는 표정으로 '아;;네;;;'라고 대답했다. 난 스스로에게 '도대체 넌 구제불능이고 넌 쓰레기야'라고 되뇌며 퇴근했다. 이건 그렇다 치고 아까 맡은 일도 남이 해야 되는 일 같은 것도 맡게 되어서 뭔가 억울하고 화나는데 거기에 대해서 표현도 못하겠다. 내가 겉으로는 나이스하게 그 팀원들한테서 본인들이 맡던 업무 파일들을 받기는 했다. 그럼에도 억울한데 그것을 표현할 권리가 없는 나를 견디기 힘들어졌다.
이번 주에 꾼 꿈 중에서 인상에 남는 게 있다. 자주 꾸는 꿈 레퍼토리였다. 뭐냐 하면 공간은 학교이고, 나는 고등학생즈음이 되고 내 또래 친구들이 각자 본인이 원하는 교실로 가서 피신(또는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언제 괴물(또는 귀신), 좀비 등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난 항상 불안과 공포에 가득 찬 느낌을 갖고 그 꿈에서 학교라는 큰 공간 안에서 이 교실, 저 화장실, 또 다른 교실 등등을 옮겨 다녔다. 내가 자주 꾸는 꿈의 레퍼토리는 그러한데 이번 주에 꾼 꿈도 비슷했다. 그 꿈에서 처음에 20명이 되는 무리들이 학교로 가게 되고 각자 학교 안을 탐방하다가 서로 맘에 드는 교실로 들어가서 각자 쉬는 내용이었다. 나는 2명 정도가 이미 책상에 앉아 있는데 그 2명이 나와 성격이 비슷해 보여서 그 교실에 나도 들어갔고 그 교실 공간이 좋게 느껴졌다. 내가 그 교실에 쉬고 있던 와중에 교실 밖 창문에서 불량해 보이는 여러 명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 무리들이 내가 있던 교실로 들어왔다. 내가 괜히 저 무리들이랑 눈이 마주쳐서 그 무리들이 내가 있던 교실로 들어온 것 같아서 억울하게 느껴졌다. 난 잠깐 어디 갔다가 다시 그 교실로 들어오는데 그 무리들이 담배 연기를 천장 가득히 수북이 날리면서 담배를 피웠다. 그리하여 난 다른 교실로 옮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 무리들이 오기 전에 있던 교실에는 오래간만에 맘에 드는 2명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 교실을 떠나게 되는 것이 억울하고 화나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꿈에선 항상 전제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괴생명체, 괴물의 존재가 항상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번 꿈에서는 그 존재들을 만나진 않았다. 꿈에선 언젠가는 그 무리들과 비슷한 존재를 만난다는 느낌이 있는 건데 마치 그 괴생명체든 담배를 피우던 무리들이든 그들이 나를 집단적 괴롭힘을 하는 현실 속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직장에서는 아직 그 집단적 괴롭힘이 실현되진 않았으니까 그 괴물들을 직접 만나지는 않았던 것일까? 첫 직장, 이전 직장 다닐 땐 그 괴물들 실체를 꿈에선 직접 눈으로 봤었기 때문이다. 내 해석이긴 한데 마치 그렇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그러한 느낌이었다.
물론 점심시간 때 소외감을 느끼고, 직원들이 날 불편해하는 게 여전히 있고, 난 여전히 말을 종종 잘 못 꺼내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게 익숙해진 건지 내 입장에서는 크다고 느낄만한 사건들은 없었다. 물론 양치하러 회사 화장실에 갈 때, 마침 거기서 떠들던 직원들이 날 보고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어색해지고 뭐 그런 일도 있었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큰 일처럼 느껴지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