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
나의 학생들은 학기 초에 한 학기 동안 수행해야 할 과제를 받게 된다.
개인의 역사가 포함되는 과제다.
요구하는 일련의 과정은 있다.
그러나 요구하는 형식은 없다.
형식은 자유다.
그런데 학생도 선생도 다 힘들다.
학생들이 과제를 힘들어하는 이유는
첫째, 형식이 자유로워서.
정해진 형식이 없는 것은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라고 한다.
학생들은 샘플을 간절히 원한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내어줄 것이 없다.
샘플은 애초에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각자 자신에게 맞는 형식을 만들라는 것이니까.
자유로운 형식
자유 형식은 새로운 자기만의 규격을 창조하는 것.
동시에 과제는 이렇게 하면 좋은 점수를 받는다는 틀을 깨는 것.
기존의 규격을 뚫고 나가 보는 것.
즉, 의지할 기준과 비교할 대상이 없는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과제는 잘하고 있는지, 이래도 되는지, 틀린 것은 아닌지,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할지, 더 좋은 방식이 혹시 있는 건 아닌지
어디에 비교를 할 수 없다.
묘하게 불안하다.
학생들의 질문에서 이 불안의 냄새가 난다.
질문에 은폐된 것은
비교문화 그리고 평가, 훌륭한 과제가 따로 있다는
과제에 대해 갖는 선입견이다.
그렇다면 이 불안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뭘까.
결론, 그냥 해보는 것.
하다 보면 뭔가 나온다. 해보는 사람에게는.
종료는 시작함으로써 이미 발생한 것이니.
개인의 역사, 가족의 역사
과제가 힘든 두 번째 이유.
개인의 역사를 조망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의 역사에 빠지지 않는 것은 가족사이다.
요구한 적? 물론 없다.
그런데도 가족사를 중심으로 개인역사를 이야기한다.
아마... 대한민국의 아들, 딸이라서 그런가 보다.
가족사의 스토리를 보면 비슷한 유형이 보인다.
집안 분위기, 가족의 위기 극복, 가족 구성원의 특성 등.
스토리는 비슷하지만 이야기 방향은 전혀 다르다.
과제하는 학생이 어떤 위치에서 이야기하고 있는지에 따라.
딸의 입장에서 보는 가족사와
부모 입장에서 보는 가족사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당연하겠지.
마치 영화 라쇼몽과 같다.
영화는 `라생문`의 처마 밑에서 나무꾼과 스님이
'모르겠어. 아무래도 모르겠어` 라며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을 시작으로 한다.
전체 적인 내용은 겉보기에 명백한 듯한 사건이
당사자들(기사, 아내, 산적, 나무꾼, 스님)의 진술을 통해
다양한 진실을 들려준다는 점이다.
즉,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기억의 내용과 해석(이야기 구성)이 다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
기억은 생존적, 문화적, 참여적이다
기억을 인간의 깊은 심리 내면의 그 무엇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기억을 유지하는 동기 조건과 반응의 질, 이 둘의 연관성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기억을 심리적 진화론에 기초한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또 하나, 뇌의 생물학적 작용.
기계적 속성을 지닌 것으로 생물학적 우열에 의해 좌우된다는 관점이다.
이는 각종 인간 차별의 온상이 되기도 하는 19세기 제국주의 생물학적 관점이다.
이를 싹 다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선호하는 관점이 있다.
사회구성론자 sampson은
기억이 개인영역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문화적 담론 내에서 서로 연결된 결과물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한 사람의 기억은
그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문화 안에서 배운
지식과 생각, 개념, 가치, 행동양식에 대한 처리(manage)로서
반응(response)과 반사(reflection) 행동이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된 방법이나 요구에 부합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시공간에 그 사회문화의 배경에 맞도록 처리한 것이 기억이다.
자! 그렇다면 가족사에 대한 우리의 진술은 진실일까?
기억은 시간여행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기억을 말하고 있는 내가
현재 어떤 사람이며 누구인가에 따라
기억 이야기의 플롯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은
진실이며 또한 진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