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오랜만이다.
아버지는 무엇에도, 누군가에도 그리 '기대'를 하며 살지는 않았단다.
그렇다고 부정적이거나 허무주의이거나 그런 건 아니야
다만 인간은 기대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이라는 거!
너희에게도 마찬가지야
너희에게 어떤 기대를 하며 키우지는 않았어.
너희에 대한 기대를 세우지 않았어 '그저' 사랑해야 할 존재로 여기며 키웠어.
다만 남들에게 해 끼치지 않고 너희 입정도는 너희가 해결하며 살기만을 바랬지.
음... 이것도 기대치라면... 이것도 내려놓아야 한다면.... 그건 성인이 아니지 ^^
그런데 아들
아버지 늙나 봐.
아니면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되어 가나 봐.
아버지 지인들과 만날 때마다
너희들이 걱정되고 안타까워.
그들의 자녀 분들이 잘 자리 잡은 것 같아서 말이지.
그런데 아버지가 보기에 아직 단단히 자리 잡지 못한 것 같아...
그래서일까? 요즘 너희가 머리를 파고들면 잠이 안 와... 오늘도 새벽까지 뒤치락 엎치락.
아~ 오해하지 마
너희가 잘 못 살고 있다는 게 아니라 아비지의 기대치가 꺾이지 않는다는 거
자꾸 나이가 먹을수록 남과 비교한다는 거... 고백하는 거야. 그게 부모인가 봐.
아버지도 어쩔 수 없는 부모라는 거.
많이 안타깝지. 정말 누가 봐도 멋지게 컸는데...
해피보이였는데...
꼬임이 없고 마음 따뜻했는데....
어느 곳을 가던, 누구든 너희를 보면 다들 침 흘리며 탐냈는데...
아마도 그런 너희들을 보며 아버지도 모르게 기대치를 키웠나 봐
아니 당연한 길을 당연히 걸을 줄 알았지.
어릴 때부터 같이 기도하던
직업과, 배우자관, 신앙관.... 당연히 그렇게 살아갈 줄 알았지.
어느 것 하나 아버지가 불안해할 것이 없을 줄 알았지.
그런데 말이다 아들
어제 오늘 새벽 다시 마음 다 잡았어.
음.. 너희가 단단히 자리 잡지 못하면 아버지가 대신 자리 잡지 뭐.
너희보다는 아버지가 이런 일에는 선수니까...
배우자에 대해서는 함부로 결정하지 말고, 단언하지 말고 보고 또 보고...
부탁하마!(다음 편지에 배우자에 대해 쓸게)
이렇게 생각이 드니 잠이 좀 오는구나.
늘 즐겁고 평안하길 기도하마
아버지 가슴 한 가득인 내 아들들에게...
ps. 아래 시는 너희 어릴 때 밴쿠버에서 아버지가 쓴 거야
<눈 오는 밤의 기도>
한 해의 반은 비가 오는 밴쿠버의 밤
보기 힘든 많은 눈이 와요
아주 하얀 눈이에요
그래서 커튼을 짙게 드리웠어요
아침에 깨는 아이들에게 깜짝쇼해 주려고요
많이 많이 눈을 기다렸거든요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아빠의 마음
내일 아침을 기다리며 한 밤 지새웁니다 홀로.
슬픈 우리 세 가족의 아침이면 좋겠어요
밤새 내린 눈 때문에
하얀 밤
하얀 대지
하얀 아침
포근하게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 가족 온통 하얗게
검은 아기들 가슴의 멍이 하얗게
가는 앞 길 검은 반점들 하얗게
아침에 놀라는 아이들의 모습도 하얗게
아빠의 남은 일생, 단 한번 만이라도 하얗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