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투자의 정석-
장기투자 종목, 전략 종목을 선정함과 투자에 대한 공부를 할 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이 저의 인문학 소양이었음을 최근 들어 알게 되었습니다.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고전을 읽는 것이 아니겠죠.
고전을 읽는 것은 그저 지식을 담는 거죠.
인문학을 ‘하는 것’ 즉 동사입니다.
그리 살던가, 거부하는 행위인 겁니다.
그러므로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그렇게 세상을 보고, 읽고 해석하거나,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이지요.
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시대 읽기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시대를 읽어야 투자가 보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인문학은 인식론(epistemology)의 틀을 소개하고 그 인식론은 행동양식을 지시하고, 좌지우지합니다.
인식론이란 세상사를 보는 눈, 삼라만상에 나타나는 현상들을 어떻게 해석해서 삶에 적용할까란 틀과도 같습니다.
그것이 우리 삶에 누룩처럼 스며들어있고, 문화라는 형태로 체계화(시스템/ systematic)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영향받고 살아가는 문화와 시스템 안에는 그 시대를 관통하는 인식론이란 지시자, 운전자, 혹은 통제소가 있다는 겁니다.
이 지시자/통제소는 우리 삶의 어떤 힘으로 작용하여 예술에 종사하던, 학문을 하던, 소비, 투자, 기술발전에 전반적으로 작동을 합니다.
이 보이지 않는 운전자는 심지어 욕망을 심어 줍니다.
욕망을 프로이트 고전처럼 개인적, 상황적, 태생적으로 설명하면 큰 우를 범합니다.
욕망에는 색깔과 나이가 있습니다.
색깔은 인식적 틀이고, 나이는 그 인식론이 관통하던 시대입니다.
투자로 한정해서 예를 하나 들어 보죠.
근현대사에 각광받아 왔고 지금도 받고 있는 투자 방식의 왕도는 가치투자 아니겠습니까?
개인에 따라 인정하던 아니던 상당한 기간 동안 교과서나 다름이 없었고 정도의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 가치투자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돌아보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에서 절대가치는 이미 논외로 된 지 오래되었지요.
가치란 추상적인 것이고,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른 형태로 규정되지요.
그런데 왜 유독 투자에 있어 가치투자는 정석이라는 생각을 했을까요?
과연 가치라는 것이 투자 행위에 기준을 잡아 줄 수 있을까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