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록, 그리고 AI시대: 모방과 학습

by 아나키스트


요즘 AI를 모르는 중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AI는 오래된 화두가 아닌 최근의 것이기에,

우리는 그저 어떤 세계가 열릴지 추측만 할 뿐입니다.

분명한 한 가지는 AI가 머지않아 인간처럼 생각하는 AGI(범용인공지능)로 발전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물리적 실체를 가진 '피지컬 AI'를 구현하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AI는 양질의 데이터, 특히 인간의 숙련된 노하우가 담긴 데이터를 먹고 자랍니다.

지금까지의 로봇에게 모든 동작을 수식으로 계산해서 입력(코딩)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숙련된 요리사나 기술자가 센서가 달린 장갑을 끼고 시연을 하면,

AI가 그 '데이터'를 보고 인간의 미세한 감각을 '모방'합니다.

바둑은 잘 두지만, 처음 마주하는 문제를 추론해 해결하기는 어려웠던 것이죠.

그래서 전문가들이 찾아낸 방법이 바로 ‘경험’과 ‘모방’입니다.

숙련된 인간의 움직임을 모방하게 함으로써

AI가 스스로 작동 원리를 창출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학습'과 '모방', 그리고 '경험'과 '숙련'. 첨단 기술의 용어라기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하고 만만한 단어들 아닙니까?

사실 이것은 인류의 DNA에 새겨진 생존 본능이기도 합니다.


철학적 인류학자 아널드 겔런(Arnold Gehlen)은

그의 '결핍 이론'에서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결핍된 존재'라 정의했습니다.

다른 생명체들이 태어날 때부터

날카로운 발톱이나 두꺼운 털 같은 최적의 생존 무기를 갖는 반면,

인간은 아무런 무기 없이 무기력하게 태어납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 결핍 때문에 끊임없이 타인을 모방하고 환경을 학습해야만 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결핍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겔런은 "인간은 결핍되어 있기에 세계를 개조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결핍을 메우기 위해 축적한 경험이 '관록'이라는 단단한 굳은살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이론을 우리 중년에게 대입해 봅니다.

중년은 신체적 에너지가 20대 같지 않고,

암기력 또한 10대를 따라잡기 힘든 '결핍'의 시기입니다.

그러나 겔런의 말처럼,

인간은 결핍을 느낄 때

비로소 자신만의 경험과 시스템을 동원해 삶을 더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능력을 발휘합니다.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는 단계를 넘어,

수많은 모방과 학습 끝에 자신만의 작동 원리를 가진 중년.

그 결핍을 관록으로 채워낸 중년을

저는 모진 서리를 견디고 피어난 '국화꽃'이라 은유하고 싶습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