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그리고 은퇴

by 아나키스트

은퇴는 축복이어야 하거늘, 이제는 두려움의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본래 은퇴는 평생 헌신한 이에 대한 보상으로 시작되었으나,

어느덧 금융자본과 지식 권력에 의해 '철저히 준비해야만 하는 위기'로 변질되었습니다.

의학계, 자기계발서, 광고는 끊임없이 노후의 공포를 생산하며

우리를 은퇴라는 시험대 앞에 세웁니다.


인류에게 '은퇴'라는 단어는 본래 없었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삶의 현장에서 활동하다 자연스러운 안식으로 접어들 뿐이었죠.

그러나 산업사회는 인간의 모든 활동을

'컨베이어 벨트 위의 생산력'으로 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속도와 근력이 기준이 되는 곳에서,

중년은 효율이 떨어진 '자본의 짐'으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수렵 시대의 중년은 유능한 전수자였고,

전쟁터의 노련한 지휘관은 근력이 아닌 지략으로 승부했습니다.

근대까지만 해도 나이 듦은 '지혜의 보고'였습니다.

산업사회가 규정한 '은퇴=퇴장'이라는 공식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퇴장을 종용하는 사회적 주체들의 의도를 우리는 의심해 봐야 합니다.


[사례: 46세 배달/ 드러머의 지혜]

저 역시 은퇴 후의 막막함에 잠 못 이루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만난 46세의 배달원이자 드러머인 한 남성이 제 생각을 뒤흔들었습니다.

노후를 걱정하는 내게 그는 덤덤히 말했습니다.


"커피 한 잔, 막걸리 한 사발, 담배 한 갑이면 충분합니다.

정 안되면 기초수급을 받으면 되죠.

국가를 위해 일한 만큼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의 생각이 정답은 아닐지라도,

은퇴를 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일방향일 필요는 없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