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그리고 신체나이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신하며 효율의 정점을 찍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숨 쉬고 움직이는 ‘몸’의 실존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지능의 영역을 AI에게 나누어준 지금, 우리는 오랫동안 오해해 온 우리 몸의 진짜 가치를 대면해야 합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중년들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이 말은 현실적이긴 하나, 정확한 진단은 아닙니다.
인류 역사상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움직여야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뱃살이 붙을 틈도 없었거니와,
젊은 시절보다 속도는 떨어질지언정 근력만큼은 쉽게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노화 그 자체가 아니라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우리가 먹고사는 방식의 변화가 우리 몸을 지금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특히 18~19세기 생물학은 젊음을 ‘미(美)’로, 늙음을 ‘추(醜)’로 규정하며
이를 과학의 이름으로 박제했습니다.
여기에 1965년 엘리엇 자크(Elliot Jaques, 2015)가 발표한 논문에서 시작된
'중년의 위기'라는 유령
이때부터 중년은 드라마 속에서 처진 어깨와 나온 뱃살을 가진
‘위기의 어른’으로 박제되었습니다.
금융자본과 자기 계발 시장은 이 공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신체 나이에 위기감을 불어넣어 ‘은퇴 준비’를 종용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관리해 매력적인 상품이 되라고 설파합니다.
이 대열에 서다 보면,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젊음이라는 기준점에 미치지 못해
패배자가 된 듯한 기분에 휩싸이게 합니다.
"저는 중년의 신체 나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기준을 바꿀 뿐입니다.
20대의 속도는 아닐지라도,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깊은 호흡과 절제된 움직임을 가졌습니다.
게으름이 우리를 가두도록 허락하지 마십시오.
이제 타인의 시선과 자본이 만든 달력이 아니라,
우리만의 '주관적인 셈법'으로 신체 나이를 다시 써 내려가야 합니다.
과연 그 셈법의 공식에는 무엇이 담겨야 할까요?
회복탄력성 셈법: 얼마나 빨리 달리는가가 아니라, 힘든 하루 뒤에 얼마나 건강하게 나를 회복시키는가?
자유도의 셈법: 남들이 정한 운동량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곳까지 내 발로 걸어갈 수 있는 ‘자유’가 있는가?
경험의 셈법: 20대의 팽팽한 피부 대신, 수많은 감정을 겪어내며 다듬어진 중년 특유의 ‘단단한 눈빛’과 ‘여유로운 미소’를 점수에 넣는다면?
AI와의 비교: 데이터로 수치화되는 건강검진 결과(AI적 관점)가 아닌, 내가 직접 느끼는 몸의 ‘결’(인간적 관점)?
저 역시 그 답을 찾아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