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 뒤에 숨겨진 치열함: 국제회의기획자의 24시
이 업계에 들어와서 얼마 안된 후배님들이
현실과 마주하며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이 일이 이렇게까지 힘든 줄 몰랐어요. 제가 잘하고 있는 걸까요?"
네, 맞습니다. 이 일은 힘듭니다.
성공적인 행사는 마치 우아한 백조가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모든 것이 편안하고 순조롭게 보여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평온한 수면 아래, 우리는 쉼 없이 발을 젓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우아함 뒤에 숨겨진 치열한 발버둥과,
그 속에서 진짜 '프로'가 되어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한 국제 포럼의 중국 기조연사의 강연이
5분 앞으로 다가온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무대 옆쪽 콘솔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갑자기 화상 연결이 끊겨요. 중국 쪽 인터넷이 너무 불안정해요."
장내에는 앞전 연사의 발표가 마무리에 이르면서
모두가 집중하고 있었지만,
저희 스태프들의 카카오톡 단체방과 무전기는 그야말로 전쟁터였습니다.
"초청팀은 지금 바로 중국 쪽에 연락해서 상황 전달해.
전화로 다시 줌을 연결하고 지금 멈춘 중국 연사 스크린샷 따!
테크니션에 바로 이미지 전달하면 화면으로 내보내는거 준비하고!
무대팀, 사회자님께 애드립으로 2분만 더 끌어달라고 전달!"
시간이 멈춘 것 같았습니다.
청중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발표가 끝나자 박수를 치고 있었죠.
마침내 화면이 만들어지고 화상통화가 제대로 연결되기 시작한 것은
무대에 영상이 나가기 불과 10초 전이었습니다.
스태프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경험'의 힘입니다.
수많은 위기를 겪으며 우리 몸속에 체득된 힘.
기획자의 진짜 역량은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계획이 무너졌을 때 시작됩니다.
평정심을 잃지 않고,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그것이 우리의 진짜 프로페셔널리즘입니다.
PCO의 역할은 행사를 '운영'하는 것을 넘어,
참가자의 '경험'을 책임지는 일입니다.
때로는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태풍에 야외 만찬이 취소될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는 즉시 '플랜 B'를 가동해 실내 공간을 재창조합니다.
한 참가자가 갑자기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가장 먼저 달려가 그를 돕고 병원까지 동행합니다.
이것은 매뉴얼에 없는 일이지만,
사람을 향한 진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2014년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최초의 여성 필즈상 수상자가 탄생했을 때,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고, 현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특정 국가의 한 기자가 살아있는 닭을 들고
앞으로 나오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수상자를 위협하려는 의도가 명백한 돌발행동이었습니다.
순간 장내는 얼어붙었고, 자칫하면 행사가 아수라장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사전에 약속된 시나리오대로 움직였습니다.
경호팀이 그를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제지하는 동안,
저는 다른 외신 기자들에게 다가가 상황을 설명하며 안심시켰습니다.
사회자는 침착하게 장내를 정돈했고,
수상자는 차분하게 회견을 이어나간 후 안전하게 먼저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일은 때로 이렇게 우리가 만든 무대와 그 무대의 주인공,
그리고 참가자들을 돌보고 때로는 위협으로부터 지켜내는
'보디가드'의 역할도 해야만 합니다.
행사가 끝나고 모두가 떠난 텅 빈 행사장.
며칠 밤을 새운 몸은 천근만근이고,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이 쑤셔옵니다.
저 역시 수없이 '다시는 이 힘든 일을 하나 봐라'
다짐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순간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ISO 총회를 준비할 때, 저는 경력 2년 차에 PM 대행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매일 밤을 울며 일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소진된 행사 마지막 날,
행사가 끝나자마자 또 정신없이 사무국 짐을 싸고 있었습니다.
그때, 함께 길고 긴 전화회의와 행사를 기획한
국제기구 이벤트 플래너가 행사를 총괄하던 국제기구의 사무총장님을 모시고
인파를 뚫고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제 두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여기가 제가 말한 그 Michelle이에요.
Michelle, 당신이 없었다면 이 행사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 한마디에 지난 몇 달간의 모든 힘듦이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대부분 무대 뒤에 가려져 박수를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그 판 위에서 누군가는
새로운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나고,
누군가는 인생을 바꿀 영감을 얻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회를 얻고,
누군가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듭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렇게 진심 어린 감사의 인사를 받기도 합니다.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하지만,
그 무대 자체를 존재하게 하는 사람들.
우리가 만든 그 판 위에서 새로운 가치와 연결이 탄생하는 순간,
우리는 이 일의 본질을 다시 깨닫습니다.
우리는 그 모든 '연결'의 순간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 자부심과 보람이,
우리가 기꺼이 수면 아래에서 쉼 없이
발을 젓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일 겁니다.
성공적인 국제회의에 참석한 분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어요."
저희에겐 최고의 칭찬입니다.
마치 우아한 백조가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모든 경험이 편안하고 순조롭게 느껴지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니까요.
하지만 그 고요한 수면 아래, 백조는 쉼 없이 발을 젓고 있습니다.
지난 편에서 이야기한 완벽한 청사진과 계획이
현실의 돌발변수와 만나는 순간, PCO의 진짜 24시는 시작됩니다.
오늘은 그 우아함 뒤에 숨겨진 치열한 발버둥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