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과 자신감.
어린시절 동화 중 미운오리새끼이야기는 내게 많은 위안과 좌절하지 않는
근거가 되어 준 옛날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시절 늘 무리지어 친하게 지내던 여자 학우들의 단체 이지매를 겪은 나로선
그런 이야기라도 담아두어야 살아 남을 수 있었던 무의식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책에 독서에 빠졌고 나중엔 주변에 읽을 책이 없고 부모님은 책 보다는 먹고 입는 것을
더 챙기는 분위기였기에 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이라도 봐야 해서 만화덕후에 하이틴 로맨스
덕후가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
재투성이 신데렐라나 백설공주나 미녀와 야수나 어찌되었던 주인공들은 늘 주변의 핍박과
멸시와 괴롭힘을 당했지만 꿋꿋이 버티면 응당한 보상과 신분 상승? 어떤 면에선 신분 세탁에 가깝다 할
정도의 성공적인 주변의 변화가 그런 스토리 속엔 너무도 당연하기도 하고 무조건 되는 거였다.
성공적 결론 따윈 믿어도 되는 사실에 속하는.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실재 그런 스토리가 존재하기도 힘들지만, 죽을 만큼 힘들어도 결국은 원하는 만큼 보다 2%부족하고 또 현실에선 그걸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한게 어디어야 한다.
이즈음 여전히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나의 존재감과 의미와 가치를 위해 어떤 일이 주어져도 슈퍼우먼처럼
성과를 내고 몰입하고 정신을 잃을정도로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문득 문득 정신을 차리기라도 하면
무언가 잘못 선택한 것이 분명 있다는 자각을 하곤한다. 난 언제쯤 백조가 될 수 있나? 과연 난 미운 오리새끼이기라도 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 소스라치게 놀란다.
난 여전히 예전의 달콤하지만 2%도 잘 맞지 않는 동화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던 건가? 미운오리새끼라고 언젠간 백조가 되겠나? 알고보면 진짜 오리인데 미울 수도 있지 않겠나? 지금은 이렇지만 언젠가는 백조가 될거야는 정말 만구 내 생각 내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불안함을 느낀 거다. 만약 오리가 아니라면, 그게 곧 백조를 의미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현재의 삶을 지탱하는 과거의 나의 선택이 족쇄가 되고 업보가 되도록 그냥 있어는 안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생활 속 번아웃은 그냥 현재의 안정과 보편적임과 덜 불편함에 편승하려한다. 그렇게 있다보면 무언가 계기가 되고 변화가 오고 그럼 난 백조가 되어 있을거라는 나도 모를 착각속에서 열심히만 하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난 백조가 아니다. 그렇다고 오리인가? 그것도 아닐 수 있을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어떻게 변화 할 것인가? 선택 될 것인가? 선택할 것인가?결국 이즘 타고난 자신감 마저도 흔들리는 이유는 결국 내 존재의 의미, 가치, 브랜드 그것이 문제였던 거 같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 자기 존재의 가치 그 자체로서의 나.
미운오리새끼이든 백조이든 또 다른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의 나와 그런 내가 하는 그 무엇을 선택해 줄
또다른 누군가가 있느냐 없느냐 또는 생기느냐 마느냐 그건 준비된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에 가깝다.
난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미운오리새끼도 아니고 그렇다고 백조도 아니다. 심지어 백조가 될 지 아예 다른 무엇이 될지 모르는 그 것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도 모르는 그 무엇이 되려 하지 말고
정말 난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누군가 나를 선택?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이제 만들어 내놓아야 하지 않겠나? 하지 않은 것을 두려워 하거나 지레 포기하거나 그런 것 하지 않기 위한 미운오리새끼의 교훈인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나를 어여삐 여기어 고난과 역경을 잘 극복해 보자. 아니 그리해야 한다.
그것이 생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