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야기 1] 일도 사람이 하는 겁니다

소설은 너무 어려워요

by 사각사각

S는 연애 소설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끌어내 보고자 해도 달곰한 연애 감정이 생기는 일이 없었다. 연애 세포가 죽었느니 하는 건 바로 이런 초연한 감정 상태인 걸까? 그렇다면 치열하고도 생생한 현재 상황에서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 글감이 넘쳐 나고 술술 써질 것 같은 회사 이야기를 해보자.


S의 마음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공부방을 오픈한지 오개월이 넘어가는데 아직 학생이 한 명도 모집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저녁 어둑 어둑해질 무렵에 혼자 동네를 돌면서 오기로 두 시간 동안 홍보지를 붙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에 적당한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그때 단톡방에 장문의 카톡 메시지가 왔다. OO장이다.


” 그동안 선생님들께 감사했습니다. 제가 지국 이동을 하게 되어서 오늘까지 근무하게 됐어요. 어쩌고저쩌고. “

A4 반 페이지는 족히 될 양의 절절한 메시지였다.


S가 이 회사에 발을 담게 된 것은 이제 오개월 여가 되어간다. 그동안 이렇게 하루 만에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거나 잘린 다양한 직책의 OO장이 네 번째다. 그런 연유도 있고 OO장은 S의 공부방 월세 지원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떠난다는 메시지를 난데없이 보냈다. 신입 사원 교육을 받을 때 육개월을 약속한 월세 지원금은 처음 듣는 조건을 내세우며 세달 만에 뚝 끊겼다. 세 달 후에는 30과목의 수업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항목이 어딘가에 붙어 있었다고 전해들었다. 그걸 미리 설명하지도 않고 무책임하게 지급일이 지나서 나중에야 따져 물으니 전달하는 인간이란.


'헐, 가든 말든 그건 안중에 없는데 미해결된 이 문제를 어떻게 한다는 거지?'


단체방에 아쉬움 가득한(?) 환송 문자들이 끊임없이 올라오는 걸 슬쩍 보며 S는 아파트 계단을 씩씩거리며 올랐다. 이 회사에 들어온 이후로 아파트 계단 오르며 홍보지를 붙이는 데 이력이 났다. 헬스장에 따로 갈 필요가 없을 지경이다. 오늘은 공부방 근처를 벗어나서 처음 가는 지역인데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했다.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고 거리가 꽤 되는데 여기서부터 공부방까지 올 수 있을까? 하는 당연한 걱정이 생겼지만, 몇달동안 공부방 주변 아파트를 수시로 돌아봤으니 궁여지책으로 새로운 지역으로 와 볼 수밖에 없었다.


S는 OO장의 애절한 이별 편지를 차갑게 외면하고 그토록 강조하던 홍보 사진을 몇 장 무심하게 올렸다.

아파트 문이나 편지함에 홍보지를 넣고 찰칵 찰칵, 마치 숙제를 하는 것처럼 증거 사진을 찍는 거다.


”OO역 주변 아파트 홍보했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OO장의 메세지에 환송의 문자를 생략하고 이만큼 쌀쌀맞은 내용을 보냈으면 월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가는 것에 관해 충분히 뒤틀린 심사를 드러냈다 싶었다.


S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욕을 참고 무심하게 반복적인 홍보지 부착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이제는 동료애나 정이고 뭐고 없는 냉정한 인간이 되어가는 건가. OO장이 당일 11시 p.m에 카톡방을 나가고 다음 날은 토요일인데 새로운 OO장이 들어와서 왁자지껄한 공지를 올리기 시작했다.


수다스럽기 그지없음을 문자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직 직원들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문자로 업무를 벌써 시작하고 계신다.


‘5월 1일이 근로자의 날이라 다음날 뵙고 싶지만, 근무일이 아니므로 O요일 뵙겠습니다. 어쩌고저쩌고....’


하, 누구 마음대로 일주일에 두 번 나가는 출근도 지겨운데 출근일을 따로 만들겠다는 건지. 아주 정신이 제대로 나갔구먼. 그 후에도 끝없이 이어지는 온갖 신상 관련 수다와 인사 메시지들. OO장은 십 여년 전에 이 지국에 근무했다가 본부로 발령을 받았기에 지국의 선생님들과도 안면이 있어보였다.


하아, 모처럼 자유를 만끽하는 주말 아침에 단체방에서 회사 사람들이랑 다정하게 대화하고 싶은 인간이 과연 있을까? 눈치가 아무리없다해도 약에 쓸래도 없다.


모닝 재즈를 들으며 불편한 심기를 다스리고 있는 찰나에 OO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헐, 이제야 며칠 동안 목 빠지게 기다리던 전화를 하시는구먼.’


마지막 유언을 남기듯이 한참 동안 온갖 대화를 나눴다. 평소에 만나서 소통할 일이 그닥 없어서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전한다. 나 참. 벌써 몇 달 전부터 해야 했을 대화를 떠나가는 마당에 하는 건 뭔가. 그나마 조금은 상횡이 이해가 되었다만, 어디서든 다시 웃는 얼굴로 만나고 싶지 않다.


고무적인 일은 새로운 OO장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다음 달에는 지원이 되도록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조금 마음이 누그러들었다. 하지만 몇 달간 쌓여온 감정들이 한 번에 해소될 수는 없었고 이 사람의 역량과 됨됨이를 익히 알고 있기에 100% 믿는 건 아니었다.


”저도 실적이 좋지 않아 옮기게 된 거잖아요. 일이 중요하니까요.“ OO장이 S의 지적에 하소연하는 듯 말을 꺼냈다.


” 그 일도 사람이 하는 겁니다. 이렇게 직접 마주보고 인사 한 마디 없이 인사 이동하는 것이 당연한 건가요? 그렇게 사람을 대우하는 회사를 직원들이 신뢰할까요? “


OO장이 진심으로 듣고 싶은지 의사는 알 수 없으나 S는 그동안 쌓아온 억겁의 한을 풀어놓는 것처럼 일장 연설을 했다. 일주일동안 쌓인 산더미같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것 같은 시원함을 느꼈다.


'엉겁결에 나온 말인데 내가 생각해도 꽤 멋진데. 앗싸, 제목을 뽑아냈다.' 이렇게 사람을 진정성 없이 대하는 회사가 일은 잘되리라 기대하는 게 어불성설이다. 과연 다음 OO장은 얼마 동안이나 함께 근무하게 될 것인가? 다시 초단기 기록을 경신할 것인가.



*이 글은 특정 회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