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야기 5] 팀장과 오해가 쌓였다
그럭저럭 풀어가며 살아야 한다
5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 저녁 퇴근 시간 무렵에 OO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뭐해요? 오늘 저녁에는 생맥주 한잔해야겠어요. 지금 회사 근처 옛날 통닭집으로 오실래요?” 거두절미하고 S에게 대뜸 물어봤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시원스러운 말투에 이끌려 가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에는 혼자 방구석에서 궁상을 떨기보다는 사람들을 만나서 수다 떨며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날이긴 하지.’
게다가 갑갑한 마음을 달래기엔 정신을 살짝 놓고 헤롱거릴 수 있게 도와주는 차가운 생맥주 한잔도 괜찮은 아이디어다. 맥줏집에 일찌감치 가서 기다리니 OO장과 팀장이 내려왔다. 옆 팀의 다른 팀장도 곧 어린아이 둘과 함께 참석했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초등학생 남자 아이는 곧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서 뛰놀고 두 돌이 안 된 여자 아이는 엄마의 품에 새침하게 안겨있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간간이 불편한 주제가 오가며 화기 애매한 회식이 시작되었다. 시원한 생맥주가 한 모금 목으로 넘어가고 치킨에 골뱅이무침을 먹으면서 OO장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마이크가 필요 없는 타고난 목청을 가진 OO장의 이야기는 다행히도 꽤 재미있다. S의 취향에 그럭저럭 부합하는 유머와 화통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말투가 세고 거칠어도 뒤 끝은 없는 스타일로 보인다. 가끔 경우에 맞지 않는다거나 지나치다 싶은 말을 하기도 하나 듣고 나면 싹 잊히기도 하고 나름의 투박한 인간적인 정이 있다. S는 꺼져가는 화롯불을 후후 불어서 되살리고, 물에 빠져서 숨이 꼴딱 넘어가는 사람을 구해내는 심정으로, 그녀의 불도저 같은 추진력에 다시 기대를 걸어보고 싶어졌다.
S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미소만 띠고 있다가 뒤통수를 치는 것보다는 직접 하고 싶은 말을 다소 재단하지 않고 쏟아 놓는 게 낫다고 여기는 편이다. OO장은 무려 본인의 호랑이 같은 시어머님도 어렵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시어머님에게도 자기가 듣고 싶지 않다고 경고한 말을 세 번 이상하면 남편과 아이를 두고 가출을 선언하며 집을 나가버린다는 분이다. 이런 거침없는 일화를 마치 일인극을 하는 배우처럼 화냈다가 웃었다가 온갖 다양한 표정을 지으면서 들려줬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거친 상남자 같다가도 개구쟁이 남자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도 보이고 도무지 실화 같지 않은 막 나가는 엉뚱한 스토리에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시어머니에게 “어머님 때문에 당신 아들과 이혼하는 거예요. 이건 분명히 알아두세요.” 라고 마치 빚진 돈 내놓으라 협박하는 심부름센터 직원처럼 우락부락하게 말하는 데 어느 시어머님이 당해낼 것인가?
만만치 않은 성격의 시어머님도 두손 두발 다 든 것이 틀림없었다.
S와는 상당히 다른 성향의 인물이었지만 OO장의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거짓없는 진솔한 소통에는 답이 나오기 마련이라고 믿는다. 한참이나 그녀의 소개팅 첫날에 바다 보러 가서 밤새고 논 기가 막히는 연애 사연부터 시댁에서의 무용담을 들으며 깔깔 웃었다.
아까부터 팀장님이 심기가 무척 불편해 보였는데 그새 술에 취한 건지 갑자기 S에게 쏟아 내놓기 시작했다.
“저에게 직접 말씀을 하세요. 다른 선생님들 통해서 듣게 되는 말들이 있다고요. 본부의 OO장님이 저에게 홍보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전화까지 하셨어요.”
그녀는 그간 S에게 풀어놓지 못하고 쌓인 일들이 많은 것 같았다.
S의 잘못도 일부 있었지만 한참이나 지나서 기억도 가물거리는 일화들을 꺼내 놓아서 당황스러웠다. S는 누구에게 부탁하거나 부담을 주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번은 가열차게 공부방 홍보를 하러 나가야 하는 팀장은 선수를 치듯이 수시로 아프다고 했다.
그래서 S는 혼자 일 처리를 하고 홍보지를 돌리려 노력하면서 불쑥 화가 나곤 했지만, 본부의 기획실장과는 월세 관련된 일로 전화를 한 거였다. 덧붙여서 공부방 홍보에 좀 더 힘을 써 주지 않는 걸 토로하긴 했다. 이 정도는 정당한 요구가 아닐까?
이 회사는 끊임없이 도와달라 징징거리는 선생님들에게만 홍보를 같이 해주곤 했다. 어째서 자체적으로 계획해서 전 지역을 공평하게 돌아가면서 홍보를 하지 못하는 걸까?
그 중 요즘 팀장과 일주일이 멀다하고 홍보를 다니시는 분이 있었다. 벤츠 타고 다니시며 취미생활처럼 회사 다니시는 선생님을 ‘밥 사주는 예쁜 언니’라서 도와준다고 하는 눈치였다. 관리직원일 뿐인 팀장을 차로 모시고 다니면서 밥과 커피를 사면서 홍보해야 한다니 희한한 시스템이다.
관리해야 하는 선생님들의 숫자는 많고 팀장은 두 명밖에 없기 때문인 건가? 그렇다면 회사에서 인원을 보충해야 마땅하다. 우는 아이에게 젖 주는 것처럼 요청하는 사람들만 도와준다고? 그래서 각 지점에 방치된 클래스의 선생님들은 홀로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그만두든 말든 계속 새로운 클래스를 맡을 사람을 모집하고 교육하면 된다는 논리인 건가?
S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모든 것이 비용일 텐데 굳이 애써 교육하고 채용해 놓은 선생님의 클래스는 버려두기 일쑤다. 회사에서 회원 모집과 홍보를 담당해주지 않는다면 50%가 넘는 수수료를 내고 이 회사와 계약을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렇게 교육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허무하게 그만둔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각종 SNS에든 어디에든 이 회사에 대해 험담을 쏟아 놓을 것이다.
S는 팀장의 당황스러운 질책을 한참이나 들어야 했지만, 순순히 사과했다. 여기서 등 돌리고 헤어질 수도 없고 숨이 넘어가고 있는 공부방을 심폐 소생술을 해서라도 살려내야 하므로 화해만이 답이었다.
한 시간 이상을 실컨 떠들던 OO장은 마침내 공부방을 옮기자고 제안했다. 급하게 얻은 공부방은 내부는 괜찮았으나 외관이 너무 오래되어 문제였다. 근처 멀쩡한 아파트 촌에 거주하는 부모님들이 들어오고 싶지 않은 공간이라는데 어찌하겠는가?
‘그래서 이제 오픈한 지 오 개월 만에 이사를 감행해야 한다는 건가?’
S는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한숨 쉬고 있을 시간도 없을 뿐더러 대안은 이사밖에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