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야기 8] OO장이 죽을 사왔다
죽 한그릇에 담긴 감동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며칠 동안의 원룸 순례에 지친 목요일이었다. S는 아침에 일어나니 정신이 몽롱하고 두통이 있었으며 어깻죽지가 두들겨 맞은 듯이 아팠다.
‘아, 그동안 가끔 찾아왔던 가벼운 목감기와는 다른 양상이다.’ 머리가 어질거리고 아팠지만 겨우 일어나서 살기 위해 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은 목 아프고 머리 아프고 눈 아프고 하는 증상을 듣더니 “코로나인지 독감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차피 약 드시고 버티셔야 하니 감기로 처방하겠습니다. 그리고 OO 약과 OO 약도 두 달 치 드셔야 하고요.”
S는 파이팅이 넘치는 의사 선생님의 명쾌한 처방을 받고 당화 색소를 검사하기 위해서 다시 피를 뽑았다. 간호사님이 미리 피가 잘 나오지 않으니 손등에 주사하라고 말씀드렸는데 갑자기 노란 고무줄로 팔꿈치 위를 동여맸다.
“아, 아파요. 몸살 기운이 있어서인가 봐요 ” 주사도 아니고 고무줄인데 살갗이 아팠다. S는 너무 난데없이 소리를 지른 것 같아서 피식 웃었다.
결국, 간호사님은 한참이나 팔꿈치 옆 쪽에 주사기를 찔러 넣고 피가 나오지 않으니 몇 초 동안 기다렸다. 결국, 똑같이 멍이 드는데 굳이 여기에 주사할 이유가 있을까? 내 매정한 혈관은 왜 매번 한사코 피 한 방울도 내주지 않으려는 건가.
몸살감기가 심해서 출근을 못 한다고 팀장에게 연락했다. 아침부터 팀장은 OO 장과 통화하라며 문자를 계속 보내면서 난리 블루스를 췄다. S는 아파서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현실과 꿈속을 왔다 갔다 하며 헤매고 있는 참인데 짜증스러웠다.
그래도 명하신 대로 OO 장에게 전화를 두 번 했다. 지금은 교육 시간이라 받지 않을 게 분명한데. 역시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점심때가 지나고 오후가 지나도록 약 기운인지 계속 잠이 왔다. 잠깐 병원을 다녀와서 쓰러진 것처럼 오후 내내 잠에 취해 있는 셈이었다.
이른 저녁 무렵에 OO 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 쌤, 제가 죽 그릇 네 개로 따로 나눠 담아서 샀어요. 1층이시니 제가 문 앞에 걸어 놓고 갈게요.”
황송하게도 직접 죽을 사서 집 앞으로 가져오시겠단다. 바깥 현관문에 비밀번호가 있어서 들어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 방 안을 후다닥 청소하고 OO 장을 맞을 준비를 했다.
정신줄을 붙잡고 손님이 오시니 틴트도 살짝 바르고 옷도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OO 장은 도착했고 벨이 울렸다.
문을 여니 OO 장은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죽이 담긴 쇼핑백만 건네고 얼른 떠났다. 손님을 맞을 상태도 아니고 이렇게 빨리 떠나주시니 더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아이고, 여기까지 어떻게 오셨어요. 고맙습니다.”
이런 막무가내인 친절한 행동을 받아본 것이 언제런가. 세상이 각박해져 인지 생경하기도 하고 이제는 이유 없는 친절에 뜬금없이 의심이 싹트기도 한다. 왜 우리는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한 행동과 감동을 주고받지 못하는 세대가 된 걸까?
방금 만든 뜨거운 죽 그릇을 여니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통 크게도 네 통이나 사 오셨다. 아마 OO 장과 전장에서 살아남은 동지 같은 전우애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죽 하나에 마음이 움직이는 쉬운 여자라니. 이후 몇 끼의 생명을 이어가게 해준 고마운 죽이 아닌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