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고민을 계속할 시간이 없었다. S는 세 군데 정도의 지역을 돌아봤고 회원모집이 가장 잘 될 것으로 보이는 OO장님이 추천한 지역의 1.5 원룸을 계약했다. 원룸이지만 방과 부엌이 문으로 분리되어있는 구조였다. 보증금이나 월세 등의 비용도 고려해야 했고 입주시기가 빠른 곳을 선택한 것이다. 주변 지역에 고층 아파트가 많고 상대적으로 학원은 적어 보였다.
공부방으로 사용될 공간이 비교적 넓었고 1층이어서 거주민들에게도 피해가 적으며 학생들이 드나들기도 편리했다. 며칠 동안 고민을 거듭했지만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 ‘는 말처럼 이제 막 지국으로 발령을 받은 OO장의 의욕이 넘치는 이 시점에서 때맞춰 오픈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S는 엄마에게 전세금을 융통할 생각이었는데 적금에 들어있다고 하여 동생이 극구 반대했다. 십 년이 넘도록 백수 생활을 하면서 전세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데 어찌 그리 당당하기만 한지.
하지만 공부방 위치 선정이 잘못된 현시점에서 다른 지역에 오픈 하지 않으면 대안이 없었다. OO장은 인성이 어떠한지는 모르겠으나 ’일은 잘하는 능력자‘라 평가하고 싶다. 말 바꾸기를 하는 점에서 크게 점수를 잃었지만 직장 생활에서 만나는 상대방의 바른 인성까지 기대하는 건 무리라고 본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과거에 따라 습관화된 말이나 행동의 패턴이 있고 이 회사는 실적에 따라 수당이 지급되므로 영업하는 자들 특유의 능구렁이 같은 스타일이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말처럼.
OO장은 공부방을 한 달 전부터 홍보하고자 계획한다고 하고 ’반듯이‘(?)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문자를 보고 S는 ’반드시‘가 맞는 표기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반듯이‘ 라도 성공시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비 오는 토요일 오후, 새로 계약할 집주인분들과 만나기로 했다. 임대하여 공부방을 열 계획이라고 하고 허락을 구해야 했다. 어머니와 아들 관계인 집주인분들은 매우 꼼꼼하셔서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마치 면접을 보는 느낌으로 성심성의껏 답하니 갖가지 걱정이 조금 누그러드는 것 같았다.
"인상이 매우 부드럽고 좋으세요. 전 너무 날카로운 분은 아니었으면 해서요." 깐깐한 아드님보다는 인자하게 생기신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S는 좋은 인상으로 합격을 받았다.
”하하, 감사합니다. “
S는 서먹한 자리에서 갑작스러운 칭찬을 들으려니 어색함을 웃음으로 무마했다. 아주머님과 아드님이 그 외에도 현수막 설치며 관리비며, 소음 때문에 옆집에 사시는 할머니가 불편하시지는 않을까 등등의 걱정 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S는 현수막은 못을 박아서 현관에 부착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며(못을 직접 박을 수도 없거니와) 관리비는 거주하지 않으니 수도세 등이 크게 나올 일이 없고, 옆집 아주머니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과일이라도 사 들고 가겠노라 조곤조곤 정답을 말해드렸다.
처음 만나는 공간의 냉랭한 공기를 뚫고 이런저런 대답을 해드리고 바로 임시계약금을 송금했다. 이미 전세자분이 이사를 나가서 집이 비어있다고 하니 잘된 일이었다.
S에게는 서둘러 책상 등의 가구를 옮겨서 공부방 환경을 세팅해야 할 과제가 주어졌다. 감기몸살인지 코로나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병으로 호되게 일주일을 앓았으나 차차 몸은 좋아지고 있었다.
이사 등 다음 주에도 할 일은 태산이었다. S는 사실 큰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은 없다. 오십이 코앞에 온 시점에서 체력도 약해졌고 돈보다는 건강이 중요함을 인식하는 때가 되었다. 혼자 생활하는 데 굳이 큰돈이 필요하지도 않거니와. 다만 독립적으로 삶을 이끌어갈 정도면 충분하다.
전세금 일억은 엄마의 통장에서 빌려와야 해서 미안함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장사 밑천으로 유산을 받은 셈 치고 S에게는 꼭 필요한 자금이다. 전세금 대신 근근이 살아갈 생활비를 보내준다고 해서 일을 하지 않고 그것으로만 살아가기엔 아직 젊고 시간도 많지 않은가?
S의 앞에는 100세 시대를 어떻게 알차게 계획하여 의미 있게 살아가느냐는 문제가 놓여있었다. 은퇴 이후의 20년 이상 긴 삶을 생각해 볼때 100세 까지 산다는 건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백세까지는 살지 않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