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야기 15] 사람들의 말, 말, 말
남의 말을 옮기는 게 문제
OO장은 사무실에서 개인주의를 타파하고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지난 육 개월 동안 별 대화가 없던 사람들이 눈치가 보이는지 하나둘 찾아와 말을 걸어왔다.
”S 선생님, 저는 주변 어머님들에게 선생님 공부방에 관해서 전달을 해드렸어요. 근데 그 지역이 중국인들이 많이 살고 위험하다고 어머님들이 꺼리시더라고요. 미리 선생님께 말도 못 하고 참. 그리고 드림 아파트에도 공부방이 생겼는데 여기와 비교도 할 수 없게 잘 꾸며 놨더라고요. “
이렇게 수개월 만에 조언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뼈 때리는 발언을 하시는구먼.’ S는 겉으로는 동의했으나 속으로는 반감이 일었다.
”아, 제가 집을 잘못 선택할 것 같습니다. 이제 곧 다른 지역으로 옮길 거예요. “
S는 우후죽순 한마디씩 하는 선생님들에게 일일이 비슷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육 개월 동안 아무 말 없다가 참 어이가 없네. 진즉에 언질을 주는 것이 쓸데없이 나간 월세도 줄이고 훨씬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S는 밤낮으로 홀로 속을 태우던 시간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S는 공부방 주변에 있는 한 분식집에 종종 갔다. 그곳의 주인아주머니는 조선족이신 것 같았다. 특유의 억양이 있었지만, 음식도 맛있는 편이었고 늘 친절하게 말을 걸어오셨다. 중국인이라고는 이분 밖에는 못 만났는데 중국인= (성)범죄자라는 공식이라도 있는 걸까?
중국인이라는 단어는 조선족을 지칭하는 것 같은데 이분들도 대부분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외국까지 나와서 일하는 선량한 노동자들이 아닐까 싶다. 가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분들이 있긴 하나 이런 과잉 일반화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본다.
그 선생님이 말한 번듯한 공부방이 있다는 아파트는 이십 년은 훌쩍 넘은 것 같은 낡은 복도식이었다. 그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이 연립주택이 범죄 촌이라도 되는 것처럼 꺼린다는 게 기가 막혔다. 물론 집값으로 보아 상대적으로 서민들이 사는 건 분명하지만 보통의 주택가일 뿐인데 이렇게 터부하고 무시를 당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여럿이 입을 모아 충고하는 걸 보면 분명 집 위치 선택에는 문제가 있는 게 분명했다. 마음이 쓰리지만 이건 인정해야 한다. 그건 그렇고 이 회사 직원의 99.9...%는 여성이다.
이전 교육에서 “우리 지국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는 OO장의 질문에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개인주의”라고 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S에게 질문했으면 ’각자도생이다‘ 라고 답하려고 했는데 모두에게 묻고 어쩐 일인지 S만 쏙 빼놓았다. 싸늘한 답변을 할 것 같은 예감이 좋지 않았나?
개인주의라고는 하나 이기주의가 더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주의를 올바른 가치로 여기지 않고 이기주의는 너무 강하다고 여겨서 ’개인주의‘라 답한 것일 거다. 게다가 이 회사는 사람들 사이에 너무나 말이 잘 전해졌다.
사람들이 말을 전할 때는 원래의 정보에 자신의 가치관과 판단을 얹어서 한다. 그러니 A라는 말은 A+1+1+1……. 등으로 불어날 수가 있다. 혹은 A라고 했어도 B로 이해한 이가 있다면 B 혹은 창의성을 더해서 C로 전해진다. 날개가 달린 것처럼 말이 잘 전해지니 당연히 조심하는 분위기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믿을만한 사람들과만 따로 만나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고 새로 입사하는 이들은 그 무리에 들어가기 어렵다. 신임 선생님들의 질문에는 혹시라도 자기 때문에 퇴사할까 봐서인지 똑바로 대답하지 않는다. 이상한 미소만 지으면서 진정 궁금한 질문에는 딴소리만 하는 데 마주하고 대화하고 싶겠는가?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벤츠 타고 다니시는 모나리자 선생님도 한 분 있다. 늘 애매한 미소를 지은 채로.
S가 들은 건 온통 부정적인 이야기들이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도움은 됐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에 OO장도 전격적으로 이사를 권유했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OO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쌤, 선생님이 수학 과목을 수업할 수 없다고 하셨어요? 다른 선생님들이 그 말을 전해줬는데 그러면 선생님을 믿고 학생들을 보낼 수가 없잖아요. 저도 스물다섯에 이 회사에 들어와서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 저희 엄마가 그렇게 공부를 했으면 S대 들어갔을 거라고 했어요. 아침에 시간이 있으면 나오셔서 같이 공부하시자고요. 블라 블라.“
OO장이 느닷없이 한바탕 자기주장을 하면서 목소리를 드높였다.
’ 암요 암요, 지당하신 말씀이죠. ‘S는 OO장의 말에는 토를 달지 않는다. OO장은 흥분해서 말할 때는 상대방의 대답을 듣지도 않기에 고성을 듣다가 피곤해지기만 하기 때문이다.
‘공부방을 어느 정도 괘도에 올려놓기 전에는 비위를 맞춰드려야 한다.’ S는 다짐했다.
S는 이전에도 간혹 봤지만, 그날부터 수학책을 펴들기 시작했다. 학생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당연히 공부했겠으나 어디서부터 얼마나 해야 하는지도 애매하고 분량이 많지 않은가? S가 수학을 못 하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니 전공인 영어로 수업을 유도해 달라는 말이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회사에서는 버티고 인내하는 자가 이긴다. 적자생존의 법칙으로 남은 자가 별로 없으니 남아있으면 살아남는 거다.
’내 수학에 다시 눈뜨고야 말겠다. 태어날 때부터 수학은 나의 길이 아닌 것 같으나 머리가 나쁘지는 않단 말이다. 교사 자격증을 공으로 받았겠는가? ‘
S는 혼자 주먹을 불끈 쥐고 의지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