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야기 16] 사랑합니다 OO장님!

난데없이 사랑고백...

by 사각사각

S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메뉴판을 보고 고민을 해봤다. 문득 콩국수가 눈에 띄어서 반가운 마음에 주문했다. 여름의 별미는 고소한 콩국에 얼음이 동동 띄워진 시원한 콩국수가 아니던가. 푸른 빛이 살짝 도는 검은콩으로 만든 콩국은 기대했던 대로 아주 진하고 고소했다.


'음, 만족스럽군.'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데 주인 아주머님이 또 맛이 어떠냐며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셨다. 콩국수가 아주 맛있다고 하니 더욱 신이 나시는 것 같았다.


"우리는 국내산 콩으로 만들어서 맛이 달라요. 콩이 밑에 가라앉았으니 잘 저어서 드세요."


S는 애매하게 배가 불어왔지만, 아주머니가 친근한 태도로 빤히 보고 있고 왠지 분위기가 원샷을 해서 이 아주머니의 기대에 부응해드려야 할 것만 같았다. 결국, 국물까지 싹 비우고 배가 터질 것 같은 상태로 가게를 나섰다. 과외를 하러 가는 데 OO 장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공부방 홍보물 준비 완료! '


’아차차, 운전 중인데 무심결에 확인해버렸네. ‘


곧바로 불도저같이 밀어붙이는 문자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제가 여기저기 알아봐서 본사에서 3개월 동안 30만씩 지원하기로 했어요.’


‘맘고생 많으셨으니 올해 ㅇㅇ 지국의 주인공은 S 선생님이 돼 보세요. 기대합니다!’ 등등.

'속이 타들어가는 걸 알긴 아는구나.'

ㅇㅇ장님이 이리 적극적이신데 이쯤 되면 맞장구를 쳐야 마땅하다.


S도 열정적으로 답을 보냈다.


'아, 감사합니다.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제가 치킨에 맥주 등등 맛있는 걸 쏠게요!'


'사랑합니다. OO장님 ㅎㅎ'


이쯤해서 그만 문자 소통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강력한 한마디를 던졌다.


결국에 S는 사랑 고백까지 하고야 말았다. 혹시 애정 결핍 증세가 생긴 걸까? 말뿐 아니라 지금 허그에 볼에 뽀뽀라도 진하게 할 판이다. 현 상황에서 믿을 자는 OO 장 뿐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상부상조하여 다시 일어설 기회를 만들어 내야 한다.


"회원은 한 명도 탈퇴하지 않도록 관리합시다! "OO 장은 또 퇴약볕 아래 교장 선생님이 운동장에서 하시던 것 같은 지리멸렬한 훈시를 시작했다.


'그노무 회원의 그림자도 보지 못하고 있는데 괜한 걱정하고 계시네.'


S는 늘 주장하는 지론이 있다. 오는 과외(인간) 막지 말고 가는 과외(인간) 잡지 말자. 수년 동안 과외로 먹고 살아보면 얼마나 자주 부지불식간에 과외가 교체되는지 경험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과외, 학원, 온라인 수업 등 선택지가 다양하고도 많다. 대부분 학부모님이 수업을 그만두겠다고 하면 이미 마음을 확고하게 굳힌 상태인데 떠나가는 남자를 잡는 것도 아니고 매달리면 모양 빠진다.


S는 수업을 중단한다고 하면 딱 한 마디의 문자를 남긴다.


"네 알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 얼마나 깔끔하고 쿨한가.


그리고 잊어버리면 늘 새로운 수업이 들어오지 않던가. 인생은 단순유식하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내 개똥철학 혹은 생활의 지혜를 설파해봐야 OO 장의 심기를 건드려 이어지는 설교나 더 들어먹을 테니 얌전히 수긍하고 넘어갔다. 더 듣기 피곤하다.


아무튼, 다음주에 이사를 해야 하고 오픈식이 다가온다. 7월 첫 주에 인도네시아에 한국어 문화교류 활동을 하러 가지만 아직은 말을 꺼내지 못하겠다. 인생이 참 공사다망해서 이미 몇 달 전에 항공권은 예매되었고 작년부터 가기로 약속을 했으니 어쩔 수가 없다.


그 전에 입막음용으로 치킨에 맥주라도 거하게 내는 거로 해야겠다. 코로나가 끝난 마당에 사정이 어떠하든 여름 휴가는 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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