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야기 18] 인생은 나그넷길

이 노래가 공감된다

by 사각사각

S의 동생이 가방 등을 가져다주기로 해서 집에 방문했다. 한 시간 가량을 온 김에 같이 공원이나 한 바퀴 돌려고 했다가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근처의 언덕길에 올랐다. 산이라기에는 작은 언덕에 가까운데 길이 좁아서인지 나무 그늘이 시원하게 드리워졌다.


더운 여름에 햇빛을 피할 운동 장소를 찾아서 기뻤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산길을 걸었다. 다양한 헛소리와 엄마의 건강에 관한 이야기 등등. 중간에 정신을 놓고 걷다가 나무 뿌리에 걸려서 한번 호되게 넘어졌다. 당시에는 괜찮았는데 오후에 수업할 때부터 아파서 절뚝거리며 걷게 됐다.


S는 이 오래된 노래 가사가 갑자기 생뚱맞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인생은 나그넷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동생을 보내고 아파트 홍보의 길에 나섰다. 관리 사무소에 가서 광고비를 지급하고 아파트 입구 곳곳의 게시판에 공부방 학생 모집 홍보물을 붙이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가 큰 편이라 지하와 지상까지 38군데를 게시할 수 있었다. 아파트의 구조가 복잡했다.


지하부터 101동, 102동 하면서 게시를 했는데 아파트가 111동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주차장이 운동장처럼 드넓어서 동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나가서 1층의 게시판도 모두 돌았다.


'이노무 회사가 내 건강이 염려되어 운동까지 주기적으로 시켜주시는구나. 얼마나 감사한지.' S는 빈정거렸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중이다.


한 시간 가량 뜨거운 햇빛을 견디고 마침내 빠진 동을 찾아서 완료했다.


'인생은 나그넷길.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인간에게 큰 기대를 걸지 말고 독고다이(홀로 살다 죽으리)해야 한다.'


S는 이런 결심을 다졌다. 평소 애용하는 단어인 '독고다이'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자 사전을 찾아봤다. 일본어인데 특공대를 뜻하며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조직과 상관없이 별도로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을 독고다이라고 불렀다.’ 고 나와 있었다.


혹은 ‘스스로 결정하여 홀로 일을 처리하거나 그런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S의 성향과 잘 맞아떨어진다. 사회에서 어울려 살아가긴 하지만 인간은 결국 혼자 태어나고 일하고 죽는 운명이지 않은가? 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고 독고다이하련다.


과외를 하러 갔다. 이노무 자식이 수업 시간 한 시간을 넘기는 무렵이면 지겨워지고 힘이 드나 보다. 저녁 때 부모님이랑 식사를 하기로 했다며 오늘은 제멋대로 수업을 일찍 끝내달라신다. 시간이 촉박한 것도 아닌데 잠시 쉬었다 가겠다면서.


'아, 중2병 증상이 심해졌다 약해졌다 하는 놈이랑 입씨름 하기 싫다.'


S는 짜증이 났지만 차근 차근 설득했다.


"정해진 시간이 있는데 일찍 끝내면 불같이 화를 내는 부모님들도 있고 내 입장이 곤란하지 않겠니?"


예전에 수업 시간 10분 늦었다고 난리를 하던 한 신경질적인 어머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사회성을 좀 키워봐라. 나중에도 그렇게 너 하고 싶은 대로만 사회생활 하면 안 된다.“


"수학은 한 시간이란 말이에요. 어차피 쉴 거면 가셔도 되잖아요."


아이가 눈을 부릅뜨고 제 주장을 펼쳤다.


"수학이 일주일에 몇 번인데?"


S는 극강의 인내심을 갈고 닦으며 물었다.


"두 번이에요."


"그럼 수학은 두 시간이고 영어는 일주일에 한 번이니 한 시간 반이네. 네가 힘들다고 마음대로 한 번으로 줄인 거잖아."


이렇게 계속 답도 없는 소모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이 자식아, 나도 발목이 욱씬거려서 집에 가고 싶단 말이다.'


S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돈 받은 처지에서 제멋대로 수업 시간을 줄일 수는 없지 않은가? 회사에서 업무를 다 마쳤어도 퇴근 시간 전에는 퇴근 못 하는 거랑 비슷한 거 아닌가. 사회생활이란 걸 해본 놈이랑 대화해야 통하던지 말든지 할 텐데.


쉬라고 했는데도 얼른 가시라 눈치 없이 재촉하는 아이. 진짜 짜증이 솟구치지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이 아이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 MBTI 좀 확인해봐야겠다. 도마뱀 상태인 전두엽이 발달하는 중이고 호르몬의 변화가 생기는 것 같긴 하지만 아무래도 S랑은 궁합이 안 맞는 스타일인 것 같다. 궁합이고 뭐고 먹고 살려면 꾹꾹 참고 달래며 하는 게 옳다만.


아무리 청소년이라도 이 정도 설명했으면 사회에서 학습한 타인에 관한 공감 능력으로 수긍하고 이해할 만한데.


'사회가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이 ㅇㅇ아!' S는 사소한 사물이나 일에 얽매이지 않고 세속을 벗어난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가고 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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