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야기 19] 이사 날의 에피소드

이사 ...

by 사각사각

오전에 이사하기로 했다. 온라인에 올라온 광고를 보고 견적을 받고 예약했는데 두 분의 다른 기사님들이 오셨다. 온라인에 올라온 회사에 광고 수수료를 지급하고 각자 자기 트럭을 가지고 오시는 것 같았다. 아홉 시가 조금 넘어서 공부방에 갔는데 이미 냉장고 외 물건은 다 차에 실려 있었다.


S가 급히 도착해서 음료수라도 사 오겠다고 하니


"저는 커피 달달한 걸로 부탁해요."


한 아저씨가 확고한 취향을 말씀하시기에 편의점에서 물어보고 캬라멜 마키아토를 사 갔다. 달곰한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서 순간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당황했다.


'여기가 다방인가 커피 메뉴 주문도 하시고 의견이 분명하신 재미있는 분이네.'


그건 그렇고 최근에 S의 집에 있는 냉장고에서 가끔 새벽녘에 으스스한 굉음이 들려왔다.


'내가 곧 사망할 예정이니 그리 알아라. 크르릉'


냉장고가 이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마지막 고통스러운 신음과 한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 냉장고는 작년에 이사 올 때 기본옵션으로 집주인분들이 무려 일주일 만에 사 온 것인데 외양부터가 어디서 버린 것을 주워 왔나 싶다. 중고이므로 세월의 때가 묻어서 본래 흰색이 누렇게 변색이 되었고 전 소유자가 붙인 듯한 지저분한 꽃무늬 스티커 역시 색이 바래졌다. 게다가 칠십이 가까워 보이는 집 주인 두 분이 직접 냉장고를 영차영차 들어서 날랐다. 위태로워보였지만 S는 모른 척하고 옆에 멀뚱히 서 있었다.


'중고로 사겠다며 시간을 끌어서 일주일동안 냉장고 없이 산 것도 억울한데 냉장고 나르다가 허리 나갈 일 있나. 궁상도 이런 궁상이 없지.'


그 우여곡절 끝에 얻은 중고 냉장고는 그럭저럭 쓸 수만 있으면 눈 감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곧 고장 날 것처럼 위태로운 소음을 냈다. 남의 사정이긴 하나 명색이 건물주인데 이렇게 돈을 안 쓰셔도 되는 건가? 어차피 원룸을 임대하려면 멀쩡한 냉장고는 갖춰야 하는데 굳이 폐기해야 할 것 같은 냉장고를 사 오시다니.


이사짐을 나르던 한 아저씨가 막간을 이용하여 이런저런 궁금한 것들을 물어오셨다.


”여기 집도 조용하고 좋은 것 같은데 왜 이사를 하세요?“


”근처에 중국인들이 많이 산다고 해서 이사하는 거예요. 한마디로 망한 거죠. 하하“


S는 속없는 소리를 하면서 웃음으로 마무리했다. 아저씨가 잠시 짠하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공부방에 필요하여 중고로 산 냉장고를 집으로 옮기고 나머지 이삿짐을 이동하기로 했다. 이사짐을 나눠서 두 군데를 가려니 더 일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짐이 별로 없는 관계로 이사는 한 시간 반 만에 끝났다.


송금하려는데 커피를 까다롭게 주문하시던 아저씨가 이번에는


"점심값이라도 몇만 원 더 얹어 주세요. 아니면 만원이라도." 이렇게 염장 지르는 소리를 했다.


미리 인터넷에서 찾은 용달 회사와 이만 원 정도 더 주기로 하고 견적을 마친 후여서 무시하려고 했는데 만원에 마음이 파르르 흔들렸다. 씁쓸하지만 보살 같은 미소를 띠며 만 원씩 얹어드렸다. 지난번에도 이사할 때 추가비용을 말해서 추가비용만큼 분노의 이삿짐을 직접 나르며 엄청 화를 냈었는데 오늘은 날도 더운데 기운을 빼고 싶지 않았다.


이사도 무사히 마쳤으니 얼마나 기쁜가? S의 통장 잔액만 도둑이 든 것처럼 야금야금 줄어들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