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말랑 이라는 도시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젊은이들과 사흘을 보낸 후 우리는 브로모산 근처에 사는 사람들 집에서 홈스테이하기로 했다.
이곳은 해발 1,500m 정도 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가는 길이 험난했다. 경사도 매우 가파르고 길 왼쪽은 절벽이었다. 겨우 차 두 대가 들어갈까 말까 하는 좁은 길에 오토바이, 트럭들이 끊임없이 지나갔다.
웬만하면 이 차선도 채 되지 않을 길에서 차를 만나면 멈추기도 하련만 굳이 조마조마한 거리를 두고 스쳐 가곤 했다.
한번은 우리나라로 치면 오래된 마을버스 정도 되는 우리 차가 다른 차가 지나갈 때 길을 살짝 벗어나 절벽 쪽으로 가서 비명이 절로 나왔다.
”악, 차라리 안 보는 게 낫지. 옆에 있는 절벽에 떨어지는 순간 그냥 가겠더라고요. “나중에 인솔자님께 말씀드렸더니 한다는 말이
”저는 여기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가실 수 있는 확신이 있는 분만 오시라고 해요. 하하하. “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지만 참. 목숨을 담보로 하는데 보험도 들지 않고 왔다. 보험을 들었다 해도 아직 창창한 내 목숨이 더 아까운데.
산골에 사는 탱그르르(혀를 굴려야 한다) 족 후손이라는 분들은 매우 친절한 분들이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의 사모님은 요리를 정말 잘하셨다. 맛집이라는 칭찬이 절로 나왔다. 끼니때마다 웃음이 나오고 집밥 같은 정갈한 음식을 꾸역꾸역 잘도 먹었다.
”음식은 잘 맞으시나 봐요? “이런 질문을 들을 만 할 만큼.
인도네시아 전통 집에는 큰 복병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화장실이다. 인도네시아 화장실은 우리나라로 치면 신식의 좌식 변기였다. 게다가 문을 내리는 장치가 없고 커다란 고무 대야 같은 곳에 받은 물을 끼얹어서 내려야 했다. 그리고 휴지를 사용하지 않고 매번 물로 씻는다고 한다.
참으로 의심스러운 게 날씨가 더워서 씻는 걸 더 깨끗하게 여긴다고 하는데 사실 이곳은 산골이라서 서늘한 편이었다. 물로 씻기 때문에 바닥에 항상 물이 흥건했다.
으악, 그 물이 누군가 뭔가를 씻고 나온 물이라니. 슬리퍼도 없이 맨발로 들어가서 참으로 기분이 찝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밥은 아주 잘 먹었으니 배출을 해야 하는데 그 화장실에 가서 앉아 있으면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집에 있는 인원이 열셋인데 화장실은 단 두 개. 문 고정장치도 멀리 있고 허술해서 불안해진 나의 장은 배출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사흘이 지나고 나니 음식도 더 들어가지 않았다.
‘똥 마려운 강아지’라는 표현은 참 적절하다. 계속 안절부절못하면서 겉으로는 내색도 못 하고 마음속으로 끙끙거리게 된다. 점점 초조해졌다.
마을에 사는 다른 분 집에서도 하루 홈스테이를 했다. 외국인을 처음 맞이하신다는 할아버지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매우 기뻐하셨다. 산골에 사는 이 사람들은 음식을 산더미처럼 차려놓고 연신 권하는 문화가 있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계속 음식을 하므로 입에 맞는 음식이 있어도 조금씩 먹어야 한다. 차에도 설탕을 한 숟가락씩 듬뿍 넣어서 계속 주신다.
침대도 킹사이즈로 있어서 하룻밤 더 묵고 싶었지만, 이 집에는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 집이 온수가 없다고 한다. 이 사람들이 밤이면 영상의 기온에 모닥불 피우고 모여 앉아 있는 '그크니'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냉수 샤워라니 몸이 얼마나 차가워지겠는가?
이 집에는 스물두 살인가 된 매우 스윗한 보이가 있어서 샤워할 거면 물을 데워준다고 했지만 그렇게까지 하기엔 미안해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전날 안락한 킹사이즈 침대에서의 꿀잠을 포기하기가 힘들었지만.
산골에 사는 하루 일당 삼천 원 정도를 번다는 분들이 손님은 진수성찬을 차리며 극진하게 모신다. 참으로 정이 넘치는마음에 감동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