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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Oct 04. 2023

타인과 함께 지낸다는 건

어렵다

사람들 사이에는 적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고 해도 함께 하는 시간뿐 아니라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지인과 삼박 사일을 보내고 보니 하루만 줄였더라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박 삼일 정도로 합의를 봤어야 했는데 휴일이 길다고 덥석 하루를 추가한 게 후회스럽다.      


집으로 돌아와서 내내 지인과의 관계를 돌아봤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한동안 함께 근무를 한 적이 있으나 같은 부서에서 일을 한 적은 없다. 가끔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거나 차 마시거나 놀러 다니곤 했다.


살짝 독특하긴 했지만 여러 명이 같이 여행을 갔을 때는 딱히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아마 지인도 여러 사람의 의견과 분위기를 봐서 스스로 자제했던 것 같다. 단둘이 만나서 대화를 나눈 적도 몇 번 있는데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24시간을 며칠 보내고 나니 많이 버거웠다. 우습지만 차라리 패키지여행이 자유여행보다는 수월했을 것 같다. 패키지여행은 적어도 버스는 태워주니 타고 있는 동안은 마음을 놓고 잘 수도 있다.


지인은 계속 지도 앱을 보면서 다음 버스를 검색하고 시간을 알아보고 하느라 버스에서도 잘 수 없다고 투덜거렸다. 그렇다면 방문지를 줄이면 되는 데 그건 아예 계획에 없는 일이란다.      


사실 여행을 다녀와서 이분에게 좀 정이 떨어졌다. 혼자만의 판단이지만 혹시 조울증이나 경조증이 아닌가 라는 의심도 든다. 지나치게 각성 상태이고 활동량이 많은 것 같아서이다. 유튜브로 관련 정보를 검색해 봤다.


혹은 아스퍼거 증후군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기만의 세계 속에 빠져있는 것 같기도 해서이다. 계획이 어그러지는 걸 못 참는 강박증도 좀 있는 것 같다.   

   

이건 공식적인 건 아니고 이래 저래 이해를 해보고자 하는 노력이다. 혼자 소설 쓰고 있는 것이고 전문의도 아닌데 병명을 확실히 알 수는 없다.      


MBTI로 보자면 이분은 확고한 J(판단형) 형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내가 P(인식형)이란 점이다. 지나치게 계획대로 움직이는 걸 별로 즐기질 않는다. 특히 여행지에서 계획이 어긋나는 건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어딘가를 방문하는 것도 좋지만 한 곳에 머물러서 오래도록 바라보는 거나 계획을 바꾸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유연성이 있다.     


마지막날에 내 체력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두 군데를 방문하고 세 번째 지역에 왔을 때 한계에 달했다. 점심도 먹었고 해변 옆 카페에 방문한 참이었다. 잠도 부족하고 매우 피곤해서 호텔로 가서 조금 쉬고 싶었다.      


지인은 오늘 계획이 많아서 그럴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아, 사실 오전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여행지 방문계획을 짜는 건 무리였다. 지인은 카페에 있고 난 해변을 삼십 분 정도 걸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다음 장소는 시내의 백화점이었다.


백화점이라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라도 해도 난 전혀 방문할 의사가 없었다.


그 백화점은 수도 없이 방문한 곳이다. 쇼핑을 할 것도 아닌데 백화점 방문이 웬 말인가? 결국 대안도 없고 백화점 옥상 정원에 가서 멀리 바다 전망을 봤다. 그보다 훨씬 훌륭한 전망을 타워, 케이블카. 산동네 꼭대기에서 원 없이 보았는데도.     


오후 시간은 남아돌았다. 그랬더니 근처에 보이는 다른 백화점 옥상도 올라가겠단다. 말장난인지 피로감이 더해지면서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쯤 해서 각자의 길로 가야 한다고 의견을 말했다. 백화점에 가든 어디를 가든 관심이 없다.


그런데 지인은 굳이 꼭 같이 가야지 혼자는 못 가겠단다. 난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주지 않으면 많이 힘들어하는 편이다. 벌써 48시간이 넘게 같이 있었다!

   

여기서 의견이 조율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팽팽하게 맞섰다. 다음은 요트장에 갔다. 난 요트까지만 타고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한 시간 정도 더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요트는 미리 예약이 되지 않아서 저녁 7시에 탈 수 있다고 한다.      


마침내 인내심이 바닥을 보이며 여기에서 갈라섰다. 난 호텔로 돌아가겠노라!      


음,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도 서로에게 숨 쉴 틈을 주자. 우리는 저마다 체력, 성향, 가치관이 다르다. 앞으로 이분과 단둘이 여행을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다시금 도를 닦으며 칼린 지브란 님의 명언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함께 서있되 너무 가까이 서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은 서로 떨어져서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느니.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1883~1931)     

좋았던 시간만 기억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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