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다낭으로의 여행 2

여행은 끝었는 만남과 만남..

by 사각사각


아침밥을 먹었는데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은 매우 훌륭했다. 볶음국수라고 해야 하나 쌀국수에 양념된 닭고기를 넣은 것이었는데 배가 고픈 참에 국수를 모두 원샷하였다. 블랙으로 나온 베트남 커피도 상당히 훌륭해서 기분 좋은 아침을 시작할 수 있었다.


샤워기로 뜨거운 물이 잘 나오지 않는 다고 하니 아담하게 생긴 베트남 청년이 얼른 올라가서 금방 뚝딱 고쳐준다. 어제는 창문 하나가 잠기지 않는다고더니 아귀가 전혀 맞지 않던 창문을 꼭 닫아놓고. 신기하게도 말만 하면 금방 수리해준다. 그런데 지금은 또 전등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끊임없는 시련의 과정인가. 이 호텔에서 모든 집수리의 현장을 목격하게 될 것 같다. 그래도 '이 만원에 이만한 독방이 어딘가.' 하면서 꼭꼭 참고 있다. 아침에는 헤어드라이어가 없어서 직원언니의 것을 빌려 쓰고 공손히 갖다드렸다. 사실 이 호텔은 저렴한 가격 외에는 크게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아침을 먹고 미케 비치로 다시 산책을 나갔는데 폭풍이 온 것 같은 우뢰 같이 큰 파도소리가 가득하였다. 드넓은 비치에 사람은 대여섯명 정도..그러나 어제보다는 한결 맑은 날씨에 세찬 바닷바람은 시원하게 불어왔다.


나는 혼자 셀카를 찍고 동영상도 찍고 모래 위에 내던져진 작은 물고기, 돌맹이, 소라등을 구경하면서 신나게 바다가를 활보하였다. 역시나 카메라를 든 베트남 총각 한 명이 다가와서 사진을 찍으라 한다. 에라…심심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주니 부모님인 듯 한 나이 지긋하신 사진사 할아버지, 할머니가 등장한다. 할아버지는 꽤 영어가 잘 통하였다. 날씨 이야기를 한껏 한 후에 20,000동(1,000원정도)을 팁으로 더 드리니 활짝 웃으시며 나의 행복한 여행을 빌어주신다. 감사하게도.


해변을 벗어서 다시 호텔이 운집해 있는 거리로 들어왔다. 어린 시절에 동네 골목에서 본 것 같은 이동 놀이기구들이 있는 데 참으로 정겹다. 그 옆에 과일을 깎아서 포장하고 있는 동네주민들이 있어서 다가가 보았다.

20,000동에 처음 보는 노란 과일을 산 것 까지는 좋은데 다시 그 옆에 귤까지 사니 100,000동을 더 내라고 한다. 아무래도 바가지를 쓴 것 같았지만 괜스리 쑥스러워 그냥 돈을 건네고 나니 동네를 혼자 돌아다니기 조금 무서워졌다. 이러다 곧 파산하고 말거야. 어제 오토바이 아저씨도 내게 한 여섯 배정도 바가지를 씌우신 것 같은데..가이드 북에서는 오토바이 한번 타는 데 50,000동이라는 데 이 아저씨는 300,000동을 챙겨가셨다.


순진하게 웃는 얼굴로 낯선 여행자에게 아주 친절하게 다가와서 이렇게들 바가지를 씌우니 조금 마음이 아프다. 나는 이만원짜리 숙소에서 머무는 가난한 여행자인데…


친절한 호텔 직원언니가 알려준 곳에서 점심으로 해물볶음밥을 먹었는데 우리 나라 돈으로 3000원 남짓한데 무척 맛있었다. 나는 베트남에서 무난히 잘 살아갈 것 같다. 어디서나 흔하게 먹을 수 있는 해물볶음밥과 쌀국수만 있으면.. 거리를 혼자 걸어다니면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부지런한 국민들인지 저마다 과일을 포장해서 팔고 길거리에서 바케트빵에 고기와 야채로 속을 채워넣은 먹거리를 팔고 음식점 앞을 지나면 어린 청년이 밥사먹고 가라고 길을 막아선다. 지나가는 택시마다 삑삑 소리를 내면서 택시 타지 않겠냐고 권하고…


아..나는 조금 피곤해졌다. 그러나 꿋꿋하게 남은 일정도 즐겁게 지내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나를 외국에서 온 돈많은 여행객으로만 보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고 그저 마음을 열고 그들과 행복한 시간을 나누고 싶다. 그렇다면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진정으로 내가 가진 것을 베풀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나의 손해가 그렇게 아깝지는 않다. 왠지 그들은 아직도 나에게는 오랜 친구처럼 더없이 정겹게 느껴진다.


호이안 투어 신청을 하였는데 신청자들이 모두 마지막에 취소하여서 봉고차에 덜렁 혼자 타고 가이드와 함께 가게 되었다. 행운인지 가이드는 24살의 귀엽게 생긴 베트남 청년이었고 영어도 상당히 수준급이었다. 마음 따뜻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건실한 청년이랄까.


마블 마운틴에 먼저 도착하였는데 대리석으로 된 산에는 천연 동굴들이 신기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고 동굴마다 부처님상이 정성스레 모셔져 있었다.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 중 매우 규모가 큰 것도 있었는데 천장에 구멍이 있어서 아침 11시경에 오면 햇살이 비춰들어오는 매우 신비로운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아마 운이 좋다면 다음엔 그 아름다운 광경을 보러 올 수도 있겠지.


다낭에서 호이안까지는 30km정도 되는 데 호이안은 1900대초의 건물들이 1km가 넘게 아름답게 세워져 있었다. 베트남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으며 일본, 중국, 유럽 스타일들이 절묘하게 섞여서 매우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진 곳이었다. 그 중 베트남 사람의 집이 아담하면서도 조그맣지만 아름다운 정원이 있어서 매우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의 인사동과 비슷한 길인데 저녁이 되면 형형색색 고운 빛깔의 등을 켜서 더욱 은은한 분위기를 더하는 곳이었다. 저녁은 베트남 청년이 한 상 가득 주문하여 주었는데 돼지고기를 넣은 베트남식 비빔 쌀국수는 매우 맛이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베트남 쌀국수가 가격도 비싸고 국물맛도 그저그래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베트남에서 먹는 쌀국수는 2~3천원 정도인데 제대로 우려낸 국물에 면발이 쫄깃하면서 바삭한 쌀과자를 더해서 매우 입맛에 맞았다. 마치 나초칩처럼 튀긴 쌀과자에 홍합과 야채와 땅콩을 넣어서 볶은 것을 얹어먹는 음식도 매우 맛있었다. 나는 한국음식이 없어도 베트남에서 잘 살수 있을 거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주었더니 청년은 수줍게 웃음을 지었다.


청년과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메시지도 주고 받았다. 페이스북을 통해 멀리 떨어져 살아가는 전세계 나의 친구들의 얼굴을 언제든 볼 수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문명의 이기가 아닌가?


오늘 길에는 운전기사 아저씨가 앞에 가는 앰블런스를 따라가면서 몇 번이나 중앙선을 넘는 곡예운전을 해서 나는 무척 당황하였다. 그러나 가이드와 아저씨는 웃고 떠들며 계속 중앙선을 넘나들었다. 이 사람들 내가 여기까지 와서 교통사고를 당하면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지. 나는 농담으로 여행자 보험이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하니 청년은 회사에서 부담할 거라며 내 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여유만만하였다. 다낭 시내에는 신호등도 거의 없는 데 대체 이 사람들은 오토바이와 차가 뒤섞인 거리에서 어떻게 안전 운전들을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찌되었건 나는 오랜만에 만나게 된 제자가 자기 호텔비를 내라 하고 물건까지 가져다 줄 것을 부탁하여 무척 화가 났었던 일을 신나게 이야기 하면서 웃고 떠들며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였다.


베트남 사람들은 친절하여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숙소의 여직원과도 셀카를 찍으며 페이스북 친구 맺기를 하였는데 스스럼없이 자기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한다. 그럼 물론 감사하지 다음 주 계획도 별로 없는데… 숙소 여직원은 여덟 살짜리 딸이 있다고 하는 데도 아직 28살이어서 인지 상큼발랄하고 대학생 인 듯 어려 보인다. 베트남 사람들은 특히 여자들, 작고 아담하여 몸에 딱 붙은 아오자이를 입을 수 있을 만큼 몸매도 늘씬하고 아름답다. 아마도 프랑스 식민지 시절 혼혈인들이 많이 생겼는지 동서양의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얼굴을 한 여인들이 많다. 베트남에서 일하는 제자에게 국제결혼을 권하였는데 한사코 자기는 한국여자와 결혼하겠단다. 왜 부지런하고 예쁜 베트남 처녀를 만나서 어여쁜 아들, 딸 낳고 살아도 나쁠 것이 없을 것 같은데…


하노이에서 일하고 있는 제자가 휴가를 보내러 다낭으로 왔다. 나를 만나러 다낭까지 오니 호텔비를 내달라는 둥, 자기 사촌이 일하는데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달라는 둥 하여 화가 많이 났었으나 만나서 회사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다 용서가 된다. 나란 여자 단순한 여자.어떤 사람이든 진심으로 그 사람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고 보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둘이 죽이 맞아서 바나힐이라는 놀이공원에 갔다. 케이블카를 타고 1300미터가 넘는 산을 오르는 데 깍아 지른 듯한 정글처럼 키가 큰 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찬 산에 나이아가라를 연상시키는 폭포가 상당히 장관이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케이블카가 갑자기 멈춰 서서 멀미를 일으키고 잠시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경험도 하였다. 그러나 곧 혹시 몇 시간 동안 여기에 갇혀서 뉴스에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웃고 떠들며 좋아라했지만.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니 1923년도에 지어졌다는 장교들의 와인바가 있었다. 그 옛날에 군인정신으로 이 높은 산꼭대기까지 건축 자재들과 와인병들을 옮겼을 것을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놀라웠다. 와인까지 한잔 시음하게 해주어서 쌀쌀하고 비가 오는 날씨에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나선 몸을 조금이나마 덥혀주었다.


아쉽게도 비가 오는 날씨여서 안내가 자욱하여 반경 십미터앞도 온통 안개속 이었다. 마치 구름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희미하였다. 날씨가 좋다면 다낭 시내 전경과 굽이굽이 펼쳐져 있는 산들과 멀리 섬과 바다까지 시원하게 펼쳐진 절경을 감상할 수 있을 텐데. '운이 좋다면 다음에 맑은 날씨에 다시 오게 되겠지.' 마음 속으로 빌어보았다.


시내에 있는 롯데마트에 가서 한국 라면과 과자들을 사오니 마음이 뿌듯하였다. 제자가 새로 얻은 럭셔리한 호텔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니 쌓였던 오해도 자연스레 풀어지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팍팍하게 살아가는 인생들이니 서로 이해하고 다독여야지 어떻하겠는가. 여기 베트남에서 무역회사에 다니며 밤낮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꼭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오늘은 시내에 있는 다낭 대성당을 구경하러 갔다.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에게 부탁하니 흔쾌히 오토바이로 데려다 주었다. 이 청년은 이 호텔을 소유한 형의 동생이었는데 다국적인 가족이었다. 8남매중 누나 한 명은 한국남자와 결혼하였고 형은 일본인 여자와 결혼하였고 (아마 이 호텔을 소유한 일본인 주인이었던 것 같다. 론리 플래닛에서 이곳을 일본인 소유의 깨끗한 호텔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다른 누나 한 명은 호주인과 결혼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낭 대성당은 파스텔톤의 분홍색 외관을 가진 아름다운 성당이었고 내부는 옅은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프랑스인들이 점령하면서 이 성당을 지은 것인데 아픈 베트남의 역사를 통해 이런 오묘하게 다양한 문화가 섞인 아름다운 건물이 남게 된 것 같다. 뼈아픈 고통의 세월을 통해 진주처럼 아름다운 예술이 탄생했다고 할까.


다음은 참왕조의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인도풍이 섞인 듯한 조각품들은 익살스러운 표정과 해학을 지니고 있었다. 신이 나서 웃고 떠들며 조각품마다 앞에서 비슷한 포즈를 취해보았다.

약간 피곤하고 배가 고파져서 우리는 롯데리아로 향하였다. 이곳의 롯데리아는 밥을 포함한 치킨볼을 파는 데 정식같기도 하고 맛있는 메뉴였다. 점심을 먹고 즐거운 가족 호구조사를 마친 후 신발이 필요하다는 Tin과 이층매장으로 향하였다. 아침부터 오토바이로 이곳 저곳을 모셔다준 동생에게 너무 고마워서 나는 그가 고심 끝에 고른 신발을 하나 사주었다. 신발을 신고 오후에 카톨릭 미사에 참여한다고 하니 참 소박하고 순진한 동생이다.


오는 길에는 날씨가 오랜만에 화창하게 개고 따뜻한 기운이 가득하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있으니 뺨을 어루만지며 솔솔 불어오는 바람에, 정말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기에 퍼펙트한 날씨였다. 시내 중앙에 있는 다리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금빛으로 물들어 고요히 흐르는 강과 주변의 산과 고층빌딩들을 바라보았다. 금빛 찬란한 햇빛이 비치니 누런색 강물조차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 같다. 마치 서울의 한강과 비슷한 풍경을 가진 도시이다. 다시 호텔로 오는 길에 해변을 보니 눈부신 금빛 모래사장과 한층 푸른빛이 더해진 바다가 있었다. 나는 넘실거리며 다가오는 파도를 향해 천방지축 뛰어다니며 해변을 돌아다녔다. 틴은 24살의 나이에 비해 매우 성숙하고 매너가 좋다. 아마 마흔을 넘긴 내가 하는 짓이 더 어린 것 같다. 나는 오래간만에 맞는 햇살에 눈오는 날 뛰어노는 강아지처럼 마냥 즐거워졌다.


이 곳에 와서 나는 자유여행의 참 맛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마음을 열고 다가가니 모두가 친구이고 동생이고 가족 같다. 물론 나를 속이고 외국인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비교적 잘사는 나라의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는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을 조금은 너그럽게 나누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그들이 우리를 돈 많은 여행객으로 대하고 조금씩 속여서 우리 돈을 얻어내려 한다고 해도 그렇게 큰 손해는 아니다. 그저 몇천원 혹은 몇만원의 돈 나에게는 충분하니 기분 좋게 내어주려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값없이 나누어주라 하신 것이 아닐까. 내일은 틴이 오토바이로 역사의 도시 후에까지 데려다 준다고 한다. 2시간 30분이나 되는 길을 오토바이로 갈 수 있을 까하는 의문이 들지만(혹시 자동차를 렌트할 수는 없는 걸까) 나는 베트남 동생의 순수한 호의가 너무 고맙고 내일의 여정도 너무나 기대가 된다. 하루하루가 꿈만 같은 나날들이다. 혼자 떠나 왔지만 늘 혼자가 아니다. 아~감사하다.


내일의 일정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잠이 오질 않는다. 하지만 내일의 다소 긴 일정을 위해 이제 행복한 잠을 청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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