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머물렀던 조그만 호텔 사장님의 동생이었던 틴은 내가 후에에 가보고 싶다고 하니 스쿠터를 빌려서 함께 타고 가자고 제안하였다. 1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이었는데 나는 스쿠터 여행을 해본 적이 없어서 선뜻 그러자고 동의를 하고 말았다. 앞으로의 두 시간 반이 얼마다 춥고 고된 여정인지에 대해 전혀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베트남인들이 오토바이를 탈 때 늘 쓰고 다니는 마스크와 장갑과 털모자에 헬멧을 쓰고 중무장을 했지만 날씨는 매섭게 춥고 정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한겨울 매서운 북풍 저리 가라였다. 중간에 몇 번을 쉬면서 화장실에 가기를 몇 번, 후에에 가는 길에 있었던 그의 부모님이 사시는 집에 도착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손님 맞이는 뒷전, 무모하게 그 먼 거리를 간다고 하는 아들에게 털모자와 마스크를 씌우고 잔소리를 하시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때 그의 부모님 말씀을 듣고 얌전히 돌아갔어야 했는데. 틴과 나는 다시 얼굴을 때리는 매서운 바람에 덜덜 떨면서 2시간 30분 여를 달려서 후에에 도착하였다. 온몸이 꽁꽁 얼어서 후에 관광을 시작도 하기 전에 매우 지치고 말았다. 동태찌개와 약간 비슷한 맛이 나는 베트남 찌개에 국수를 넣어서 먹고 다시 커피숍에 가서 몸을 좀 녹인 후에야 우리는 훼 관광을 시작하였다. 옛 왕궁은 푸른 이끼를 뒤집어쓰고 있는 웅장한 건물이었고 드넓은 왕궁을 신나게 한바퀴 감상한 후에 기운을 조금 되찾았다. 좀 걷고 나니 온몸이 따뜻해진 것이다.
훼에서 하룻밤 머무르려고 했으나 날씨는 비가 오면서 으슬으슬 춥고 핸드폰 충전기도 없었고 다시 돌아가자니 아까의 고된 여정으로 온몸이 쑤셨다. 잠시 쉬어갈 겸 하여 나는 마사지 샵을 들르고 그는 친구 집에 들렀다가 돌아가기로 했다. 마사지 샵에는 체구가 아주 작은 베트남 여인이 들어왔는데 내가 퇴근하려는 그녀를 막아 세운 것인지 무척 퉁명스러웠다. 그러나 마사지만은 매우 훌륭하여 감사한 마음에 팁을 지불하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 휴게실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아가씨와 한참 수다를 떨기도 했다. 우리 둘 다 예상치 못하게 무척 추운 베트남 날씨에 놀랐고 얼른 뜨근한 사우나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시 다낭으로 돌아가는 길. 이제 비마저 세차게 내리고 온몸이 정말 덜덜 떨렸다. 날씨는 어두워지고 그의 부모님과 형은 걱정이 되어 전화를 했는데 그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무척 화가 난 상태였다. 다시 그의 집에 들렸으나 나는 부모님, 사촌동생에게 심하게 질책을 받는 듯한 그 옆에서 멀뚱히 앉아 있다가 쫒겨나다시피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집 근처에서 해산물로 저녁을 먹고 다시 스쿠터를 달려서 호텔에 온 시간은 밤 9시경. 오토바이 뒤에서 나는 너무나 피곤하여 저절로 그의 등에 눕다시피하여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방에 들어와서는 배터리가 방전된 것처럼 바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물론 이십대 청년에게나 어울릴 법한 무모한 여행이었지만 나는 평생 타볼 수 있는 스쿠터는 그날 하루 동안 다 경험한 것 같았다. 물론 다시는 이런 파란만장한 오토바이 여행을 시도하지는 않겠지만 그날 베트남 청년의 가냘픈 등에 기대어서 한 스쿠터 여행은 떠올릴 때마다 나를 웃음짓게 할 것이다. 오빠~달려!
그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항상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가보고 싶은 끊없는 열망이 생기고 한번 갔던 곳을 다시 가려고 계획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늘 집에 도착하여 다정하고 사랑을 가득 담은 땀의 메시지를 보고 다시 그들과의 따뜻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그야말로 한동안 눈물을 쏟았다. 그들은 이미 나의 마음 속에 들어와 다시 보고 싶은 동생들이 된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었을까. 8일간의 시간 동안 그들은 혼자인 내 곁에 있어주었고 진솔한 대화를 나눠주었고 배고플 때는 밥을 가져다 주었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따뜻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는 베트남의 나의 동생들에게 완전히 반하여 버렸다. 어제 한국에 돌아오려고 베트남의 공항에 들어선 순간 문득 이곳을 떠나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고 슬픈 감정이 든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안내판에 보이는 인천이라는 낯익은 지명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공항밖에 두고 온 베트남의 동생들이 무척 그리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8일간의 여행은 여행에 대한 나의 모든 생각을 바꾸어 놓는 시간이었다. 자유 여행이라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놀라운 문화유산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체험하고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일은 그곳에 사는 미지의 사람들을 만나 우리의 삶이 하나로 얽혀 말할 수 없이 큰 위로를 주는 무형의 시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들과 나눈 소소한 대화, 시간, 정 이러한 것들이 나의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가 되었다. 틴. 형에게 너무 헌신적이고 조용하고 성숙한 호텔의 일꾼. 앞으로의 희망이 무엇인가에 대해 답하지 못하는 너의 모습이 나는 좀 답답하기도 하고 마음이 좋지 않았어. 올해는 꼭 자신의 꿈을 찾고 더욱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기를 바란다. 너의 영어는 매우 훌륭하였고 꾸준히 공부한다면 앞으로도 더욱 잘 할 수 있을 거야. 조금 더 공부하고 다른 언어도 꼭 도전해보길 바래. 그리고 한국에 시집온 누나를 만나러 올 때는 나도 꼭 방문해주길 바란다. 한국에 오면 다시 스쿠터를 타고 한국땅을 같이 달려볼까? 하하 물론 딱 30분만. 그 이상은 추워서 견딜 수가 없어.
땀. 사랑스럽고 어여쁘고도 당찬 엄마의 모습을 두루 갖춘 동생. 남편이 원한다는 둘째는 꼭 아들을 낳게 되길 바래. 예쁜 딸과 건강한 아들과 함께인 모습도 무척 어울릴 것 같아. 하지만 왠지 엄마라는 이름보다는 한 여자로서도 매우 아름다운 사람이야. 네가 집에 초대해서 만들어준 고기와 생선이 조화된 베트남 국수, 우리의 칼국수와 비슷했던 아마도 내가 먹었던 가장 맛있는 쌀국수로 기억될 거야. 다음에 갈 때도 꼭 부탁해.
다시 한번 꼭 들를 것을 약속할께. 사실 나는 한번 갔던 곳을 다시 가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 늘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지. 하지만 다낭은 그 장소 때문이라기 보다는 너희들을 다시 만나러 갈거야. 꼭. 다시 만날 때도 여전히 건강하고 행복하고 당차게 스쿠터를 타고 시내를 활보하는 너희 모습을 꼭 보고 싶구나. 자신의 꿈과 행복을 찾아 달려가는 모습을.
그곳엔 사람이 있었네.
혼자 여행을 한다면 어떠할까. 사실 혼자 베트남으로의 여행 계획을 세울때는 약간 걱정도 되고 너무 외롭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홀로 다낭의 아주 작은 호텔에 들어갔고 그 호텔 직원들은 형제, 자매 같은 따뜻함과 환대를 보여주었다. 남국의 날씨 답지 않게 싸늘하고 폭풍이 부는 것 같은 날씨에 낯선 호텔방에 들어설 때 나는 당황스러웠다. 왜 이곳에 온 것일까.
그러나 길을 나서자 마자 오토바이 아저씨, 택시기사, 바게트빵이나 과일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끊임없이 당신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다. 그것마저 혼자인 나에게는 매우 반갑기 그지 없었다. 물론 나중에 오토바이 아저씨가 6배나 되는 요금을 청구한 것과 과일 파는 아주머니가 나에게 원래 금액의 세배 정도 되는 과일 값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라고 하면 갑자기 살짝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곧 친절한 베트남 청년이 당신을 스쿠터에 태우고 시내 구경을 시켜주고 배가 고프다고 하면 저녁상을 푸짐하게 차려다 준다. 햇살은 밝고 시내의 강물은 금빛으로 빛나며 해변의 파도는 술래잡기를 하듯 나를 따라 왔다 갔다 한다. 호텔의 여직원과 친구가 되고 나에게 저녁 초대를 한다. 그녀의 집은 오토바이가 끊임없이 오가는 길가에 있어서 무척 시끄러웠지만 집안은 매우 깔끔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녀는 정성을 다하여 저녁을 준비해주고 그녀가 만든 고기와 생선을 넣은 국수는 매우 맛있었다. 면발이 도톰한 것이 우리나라의 칼국수와 비슷한 맛이 난다. 나는 며칠 전부터 배탈이 나서 속이 좋지 않았지만 그녀가 끊여준 국수 국물을 연신 떠먹었다.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 그곳의 아름다운 해변과 밀가루처럼 부드러운 모래를 다시 느끼고 싶기도 하고 기기묘묘한 대리석 산과 동굴을 다시 보고 싶기도 하고 역사적인 도시 호이안의 등불이 가득한 밤거리를 다시 걸어보고 싶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시 그들을 만나고 싶다.
소중한 인연들, 나는 얼마나 낯선 이에게 친절한 사람이었는가? 그들이 힘들고 외로울 때 밥 한끼 함께 먹어주고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주었는가. 그들의 마음속에 따뜻함을 불어넣어주고 외로운 도시에서 살아갈 힘을 다시 얻도록 친구가 되어주었는가. 나는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말한 이는 아마 험난한 세상에서 만난 이런 소중한 인연들을 두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때로는 인간에게 큰 실망을 느끼고 외롭고 고독한 세상에서 한줄기 빛과 같은 사람을 만나고 나서였을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으나 그 상처를 치유받는 것도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연을 통해서이다. 틴은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많아서 사람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친구를 만들지 않는다고 했지만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보다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때로 내게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도 있고 불쾌한 언쟁이 오가는 일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친절한 웃음을 보여주고 사진을 찍어주고 외로운 나와 함께 걸어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러니 마음을 열고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세상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야 한다. 아직도 가보지 않은 길이 더 많고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틴의 가족은 8남매라고 했다. 형은 내가 묵은 숙소를 운영하고 있었고 틴은 형의 심부름과 호텔 청소를 도맡아 하고 호텔에서 잠을 잤다. 가족관계도 상당히 독특하여 틴의 형은 8살이 많은 일본인 여성과 결혼했고 누나는 한국인 남자와 결혼했고 또 다른 누나는 당뇨병을 않는 호주인과 결혼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무척 정감이 가는 얼굴로 왠지 처음 보자마자 남동생 같은 친근감이 들었다. 자기 누나도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고 다급히 한마디를 하는 모습에 무척 정이 갔던 것이다. 그러나 24살인 틴은 미래의 꿈이 정확히 없다고 했다. 호텔의 일은 따분하고 무료하고 힘든 데 미래의 꿈이 없다니 좀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럼 공부를 더 하면 어떠냐 해도 자신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하지 않았다고 딱 잘라 말한다. 그러나 이 년 넘게 호텔에서 일해온 그는 영어로의 의사소통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영어공부를 더 하여서 가이드를 하는 게 어떠냐 하고 제안했고 그는 잠시 주의 깊게 듣는 듯 하였다. 아니면 한국어 공부를 하여 베트남에 짓고 있는 삼성 공장에 취직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그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그는 스마트폰도 하지 않았고 페이스북도 하지 않았고 사진 찍히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스쿠터 뒤에 앉아서 시내구경을 나가서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고 조용한 대화를 하고 해변에 가서 파도와 술래잡기를 하며 노는 것이 좋았다. 그는 고요했다. 시내 중앙에 호수처럼 잔잔하게 자리잡은 강처럼. 틴이라는 이름은 조용하다라는 뜻이라니 정말 그는 이름대로 조용한 청년이었다. 그는 함께 페스트 푸드 점에 가면 수저와 포크를 휴지로 닦아주고 항상 ‘레이디 퍼스트’라고 하며 내 뒤를 따르는 예의 바른 청년이었다.
베트남을 떠나는 날. 그는 이미 체크아웃을 해야 할 시간이 넘도록 호텔에 있는 나에게 물병을 건네주고 방에 들어가서 좀 더 쉬고 있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내가 방에서 쉬다가 11시경 내려오자 소파에서 웅크려 자고 있었다. 나를 배웅하려고 졸린 눈을 비비며 애써 눈을 떴다. 항상 조숙하고 애늙은이 같은 모습이었지만 힘들게 졸린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는 그의 모습은 이십대 초반 남동생의 모습이었다. 그 옆의 직원도 나에게 내년에 다시 왔으면 좋겠다고 순진한 눈빛을 보내며 말하였다. 아~나는 진정 호텔을 떠나는 것이 슬퍼졌으나 나의 베트남 동생에게 음력설 새배돈을 남기고 얼른 택시에 올랐다. 안녕. 다시 만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