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2학년이 모의고사를 보는 날입니다. 2교시 수리영역 시간에 감독을 들어갔는 데 한 아이가 묻습니다. " 샘 이거 기초학력미달 나오면 특별 수업 들어야 해요?"
베란다 창으로 보는 노을..아름답구나!
아마도 미리 담임샘들이 최선을 다해서 보라는 의미로 엄포를 놓으신 것 같습니다. 기초 학력미달은 2학년 때 성취도 평가라는 것을 보고 결정합니다. 하지만 이미 1학년말이니 거의 그 시험과 다름이 없죠.
저는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하여 "그래 너 기초학력미달 나오면 겨울 방학 때 두달 동안 나와서 수업들어야돼." 라고 하였습니다.
1학년 아이들은 아직 순진하여 반신반의 하면서도 교실 전체에 긴장감이 살짝 돕니다. 앗싸 성공! 이제 최선을 다해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문제를 풀어보시겠네요.
" 근데 그 수업 안 나오면 어떻게 돼요?"
저는 다시 장난반 진담반으로 "죽여버려."(어째 점점 입이 거칠어지네요)
그리고 평화로운 시험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일단 열심히 문제를 풀기 시작합니다.
저는 소심한 스쿼트 동작과 책상줄 사이로 걷기를 하면서 또 무료한 시험시간을 견디어내 봅니다.
그리고 문득 저의 고등학교 때의 추억도 떠올랐습니다. 사실 저는 누구보다도 수학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중학교 때 카리스마 넘치는 여자 수학샘이 계셨는 데 매일 두장씩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숙제였고 이것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손바닥을 매로 정말 매섭게 때리셨습니다.
가끔 팔 같은 곳을 꼬집기도 했는 데 나중에 보면 멍이 들 정도였습니다.(사실 별로 좋은 체벌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리하여 중학교 때가지는 수학을 꽤 잘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수학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을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외계어) 저는 꽤 공부를 하는 편이라 노력을 안한 것은 아니었으나 수학은 일찌감치 깨끗이 포기하였습니다.(수포자)
그 당시 저는 남자 수학샘을 사모하였는 데 고3때였습니다. 이 샘의 별명은 아!네모네..얼굴이 좀 네모난 편이셨지요. 저는 이 샘이 더운 여름날 운동장에 계시면 음료수를 사서 갖다드리고 나름 그 20여 년전 여고생들이 할 법한 귀여운 어필을 하였습니다. 수학은 이미 포기했음에도 수업 시간에 맨 앞자리 학생과 자리를 바꿔서 맨 앞에서 눈을 반짝이며 수업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이 샘은 그 때 이미 기혼자이셨는 데 은근히 매일 사모함을 보이는 제가 귀여우셨는 지 어느 날 출근길에 걸어서 등교하는 저를 차에 태워주시기도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기쁨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죠. 이 어설픈 짝사랑이 수학 실력 향상까지 이어졌더라면 참으로 아름다운 결말일텐데..수학은 저와는 너무나 상극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수학을 못하는 학생을 너무나 깊이 공감합니다. 시험지에 보이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숫자 몇 개뿐이요, 한 시간을 들여다본들 답이 나올리가 없죠.
저는 고3때 수학 시험 전날 너무 막막하여 대성통곡을 한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어찌되었건 수학은 포기했어도 영어교사로 십여년을 잘 살아가고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