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일기] 첫사랑 이야기

by 사각사각

오늘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공부하기가 싫었는 지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동네 아이들은 무언가 복고풍의 분위기가 납니다. 요즘 아이들 같지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정이 넘친다고나 할까요?

바닥에 떨어진 낙엽마저도 아름다운 가을.. 첫사랑의 추억?ㅎㅎ


저는 대충 몇마디로 얼버무렸습니다. 20대 때는 나도 지금 보다 훨씬 예뻤다 길에서 쫒아오는 남학생도 있었다. 꽃다운 스무살에는 다들 그런 기억들이 있지 않나요?


일진 학생이 하는 말이 "그랬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살에 미모가 파뭍혔다."고 하네요. 헐헐~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거 아냐? 더 화나기 전에 빨리 마무리지어야죠. 너도 나이들어 봐라. 이 ㅇㅇ아(자체 삐처리~)


저도 여고에 다닐 때 그 당시에 반 아이들과 단체로 가정 선생님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정 선생님은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노처녀이셨는 데 아마 선생님도 그날은 그다지 수업이 하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교사를 해보니 선생님도 수업이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데 당시 가정 수업이 두시간 연속으로 짜여져 있었습니다. 여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처음 한시간은 매우 집중하고 감정을 이입하여 하아~ 이런 감탄사도 넣으면서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호응을 잘해주면 교사도 신이 나서 더 즐겁게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음 시간에도 가정샘은 첫사랑에 맺힌 한이 많으셨는 지 이야기를 계속 하셨고 저희는 점점 흥미도 떨어지고 지쳐서 하나둘 쓰러져갔습니다.


선생님이 "왜 재미없어?" 이러면 화들짝 놀라서 "아니예요." 이러면서 혹시 수업이라도 시작하실까봐 짐짓 듣는 척을 하면서요.


가정샘 그 이후에 두번째 인연을 만나셔서 아름다운 사랑을 다시 하셨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은 가볍게 현재 한살 연하남과 사는 것을 살짝 자랑하였습니다. (능력자인것처럼) 저는 첫사랑이야기 보다는 여행 다닌 이야기를 하라면 한시간 정도는 너끈히 할 수 있습니다. 중간에 왜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지 은근히 강조를 하면서요. 워낙 파란만장한 여행 스토리가 많으니까요.


오늘은 대충 얼버무리고 수업을 해나갔습니다. 그냥 한시간 제끼고 첫사랑 비슷한 이야기라도 할 걸 그랬나봐요. 평소 수업 태도가 좋지는 않은 아이들이지만 서로 유대관계가 생기면 수업을 좀 더 잘 들어줄 것 같습니다. 왜 아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잘봐주는 상황이 있잖아요.


특히 이 동네 아이들은 시골이라 초,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동창생들이며 서로 매우 절친하고 서울 구경을 몇번 못해보았으며 기본적인 심성은 매우 착합니다.(난 서울사람인데) 다만 많은 아이들이 공부와는 담을 쌓았어요.


계속 딴소리만 했는 데 제 첫사랑이요? 음..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는지 좀 찾아봐야겠네요. 중학교때 저를 따라다니던 고등학생 교회 오빠가 한명 있었습니다. 그 오빠는 대체 저에게 왜 꽂혔는 지 모르겠으나 꽤 열렬히 따라다녔고 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저는 살짝 튕기며 약간은 설레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오빠가 어느 날 어스름 저녁무렵에 저희집 앞에서 잠깐 이야기를 하는 데 저를 사랑이 가득한 눈길로 지긋이 바라보더니(좀 느끼하게 생기셨었는 데) 갑자기 저의 볼에 뽀뽀를 하였습니다. 저는 당시 매우 순진한 여학생이라 너무 놀라서 얼른 저희 집으로 뛰어올라갔는 데 심장이 무척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게 다예요. 공개 가능한 미화된 첫사랑 이야기. 조금 각색을 하고 긴장감을 넣어서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면 난리나겠네요.(사실 기억이 가물가물)


근데 요즘 아이들은 이런 시시한 이야기를 하면 "에게~뭐야? 더 없어요?" 할지도 몰라요.


고등학생에게도 플라토닉 러브를 강조해야 하는 무서운 세상입니다. 헐헐헐~


어여쁜 빛깔의 낙엽이 다 떨어져가는 늦가을. 매서운 겨울이 오기 전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과 같습니다. 다들 풋풋했던 첫사랑 한번 떠올려보시며 아름다운 가을을 한잔의 커피처럼 향기롭게 끝까지 음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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