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를 가지고 오지 않는 아이
그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가지고 오지 않습니다. 물론 펜도 없죠. 4층 복도에 있는 자판기에서 빵이나 과자를 사서 터덜터덜 들어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준별 수업의 가장 낮은 반의 아이들의 다수는 이런 모습입니다. 그래도 매력이 넘치는 아이들입니다. 그 중 한 아이는 유독 서글서글한 웃음을 띠고 수업 내용을 따라 오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주변의 아이들이 쿡쿡 찌르고 장난을 걸어오거나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 수업의 분위기는 왁자지껄 걷잡을 없이 소란스러워지곤 하였습니다.
그 날도 역시나 수업을 하고 있는 중에도 아이들은 짬짬이 잡담을 멈추지 않고 있었습니다. 점점 끓어오르는 화를 다스리며 즐거운 분위기로 수업을 이어가려고 했으나 결국은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수업내용을 마치면서 꽝 소리가 나게 마커펜을 내려놓았습니다. 그제서야 그 아이들은 제가 화가 난 것을 알고 조금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그 아이는 어느 정도는 수업을 따라 오고 발표도 하고자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진심어린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면서 “ 선생님이 저에게 며칠 동안 칭찬을 해주시지 않았잖아요. 다시 알려주면 잘 할 수 있어요.” 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아이에게 의자를 가지고 제 자리로 나오라고 한 뒤 오늘 수업내용을 다시 찬찬히 확인해 보았습니다. 평소에도 명석함이 엿보이는 아이는 대부분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에게 설명을 계속 하면서 서서히 화가 누그러지게 되었습니다.
“ 바리스타는 계속 할거야? 제가 물었습니다.
“ 네” 그 아이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계속 학원에도 다니고 있었습니다.
“ 지난 번 단어시험을 잘 보아서 나도 좀 놀랐는데 영어 공부는 계속해보는 게 어때. 우리나라에 외국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거 알고 있지?”
“ 네. 저도 영어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원시원한 대답입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떨어져서 맨 앞 줄에 혼자 앉아서 공부하기로 약속 하였습니다. 물론 그 후에도 그 아이는 교과서를 가지고 오지 않습니다. 대체 교과서는 어디에 두었는 지 궁금하지만 미리 수업내용의 프린트와 펜을 말없이 건네줍니다. 가끔 주변 아이들과 장난을 치곤 하지만 대부분의 수업태도는 매우 훌륭합니다. 수업 시작 전 건네준 프린트를 보니 괴발새발 글씨체이지만 필기도 되어있습니다. 나는 그 프린트를 평가파일에 조심스럽게 보관해둡니다. 시험은 어찌 볼지 모르지만 수업태도의 점수만큼은 올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그 아이는 약속을 지키고 계속 앞자리에서 열심히 수업을 듣습니다. 수업에 열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저에게 새로운 힘이 됩니다.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서도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오늘도 힘내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맑고 푸른 가을날에 그보다도 더 푸릇푸릇한 아이들과 하루를 보낼 수 있다니 정말 행운이 아닐까요? 저는 정말 두 손 모아 감사하는 마음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미국 각지의 초, 중, 고등학교의 다양한 선생님들의 경험담을 엮은 이야기입니다. 각자 다른 환경이지만 조금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학습태도가 좋지 않은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느낀 어려움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 대한 많은 일화들을 읽으면서 저도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교사라는 일을 한지도 어언 십 여 년이 넘었습니다. 다양한 아이들, 다양한 환경의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순간순간 떠오릅니다.
아마 미국이라는 교육환경이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를 수도 있지만 결국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비슷하리라고 봅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방황하고 흔들리는 요즘의 세태에서 학생들의 태도도 비슷한 점이 많을 것입니다.
힘든 교육환경에서도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느끼는 기쁨과 보람에 저는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때론 아이들이 문제가 많고 힘들게 할수록 더욱 그 아이들과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더 잘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물론 그 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을 보는 기쁨은 더욱 큽니다. 그 선생님들의 이야기는 저의 이야기였으며 힘든 교육환경에서도 빛나는 희망 하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교육의 희망은 오직 교사와 아이들... 그 들 사이의 끈끈한 사제지간의 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작은 관심과 미소와 칭찬이 한 아이의 삶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 매일 학교에서의 저의 자세를 다시 반성하게 됩니다. 십대의 아이들, 몸은 훌쩍 자랐지만 이제 고작 십여 년을 살아온 아이들은 아직 미숙합니다. 때로 어려운 가정환경, 부모님의 이혼 등으로 고통 받는 학생들도 다수 있습니다. 그러한 학생들은 수업태도도 바르지 않으며 때로 교사에게도 예의 없는 말을 툭툭 내뱉곤 합니다. 가정에서 받아야 할 사랑과 관심을 다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교사로서도 많이 참고 화를 억눌러야 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십대라는 시기는 활화산같이 타오르는 시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잘못된 언행은 지적하고 반성하도록 해야 하겠지만 따뜻한 관심과 이해만은 잃지 않아야 함을 다시 다짐해봅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는 이 아름다운 가을, 제각기 빛깔이 다른 코스모스 꽃처럼 아름다운 아이들과 함께 날마다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가려 합니다. 저도 속삭여주고 싶습니다. 고맙다,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