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그만큼의 속도로 늙지 않는다.
새벽녁에 몇일 동안 잠이 깨어서 두어시간을 뒤척여도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따뜻한 침대에 누워 꼼지락대면서 태블릿으로 영화 '은교'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충격적인 반전과 결말이 있지만 영화전체에 아름다운 삶에 대한 관조와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이 녹아 있었다.
영화의 처음은 나이 든 시인의 적막한 집안에서부터 시작한다. 노인은 교외의 조용한 단독 주택에 홀로 살아가고 끼니를 때우려 열어본 전기밥솥에는 말라버린 밥이 남아 있다. 따뜻한 식사를 챙겨 줄 가족이 전혀 없는 쓸쓸한 노년의 삶이 절절히 느껴진다.
거울을 보면 주름이 가득한 얼굴과 구부정한 어깨와 힘없이 지면으로 추락하는 몸이 보인다. 매우 존경받는 유명한 시인이지만 이미 생기란 자기 스스로를 포함하여 집안 곳곳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공대를 졸업한 청년 한명이 작가가 되고자 문하생으로 와서 노인의 식사를 가끔 챙겨준다. 하지만 청년이 곁에 있다고 하여도 노인에게 찬란한 젊음이라는 햇살이 비춰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쓸쓸하고 생기없는 노년의 공간에 십대의 여학생이 불쑥 나타난다. 이 여학생은 그야말로 생기발랄하다. 화장기 없는 말간 얼굴에 흰 반팔티에 반바지를 걸쳐 입었을 뿐인데 이 소녀가 가는 곳마다 눈부신 햇살이 한줌씩 뚝뚝 떨어지는 것 같다.
소녀의 새하얀 얼굴과 가느다란 팔다리와 잘록한 허리는 카메라에 여러번 클로즈업 되어 잡히는 데 정말 어느 하나 가감할 것 없이 자연미가 넘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는 찬란하게 비춰오는 햇살을 장면마다 숨막히게 아름답게 포착하여 표현한 것이다.
햇살이 비추이면 사실 누구나 평소보다 훨씬 어여쁘게 보일 수 있는 데 이 영화에서는 평범한 마당이나 집마저 햇살을 가득 받고 꿈에서나 보일 듯한 환상적인 장소로 바뀌는 것이다.
이 소녀는 노인에게 아무 스스럼없이 다가온다. 노인은 이 소녀의 생기 넘치는 젊음의 매력으로 온통 마음이 흔들리는 데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계속 노인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오해가 생겨나고 문하생 청년은 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고 은근히 질투하며 이 둘의 사이를 떼어놓으려 하며 갈등이 계속 증폭되고 세사람 사이에 삼각관계같은 구도가 생긴다.
노인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어찌 손녀같은 십대 소녀에게 마음이 흔들릴 수 있나 비난 할 수도 있겠다. 칠순이 가까운 노인이지만 그는 은교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고 사랑에 빠진 젊은이처럼 상상하고 꿈을 꾼다. 하지만 곰곰히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대체 언제 이렇게 나이가 먹었단 말인가 '하고 깜짝 놀라며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불혹이라는 나이를 넘겨도 그리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 같지 않고 아직도 마음속에는 아직도 어린 아이 한명이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나의 나이를 자각하게 해주거나 형님, 아빠, 아저씨, 할아버지, 선생님 같은 호칭이 문득 우리의 나이를 떠올려 주춤하게 한다. 그러나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아직도 희노애락이라는 다양한 감정에 쉽게 휘둘리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때로는 새로운 대상에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다만 나이가 들면 그 충동을 좀 더 참을성 있게 억누를 수는 있으나 마음 속의 꿈틀거리는 감성이란 젊음이와 그리 다르지 않다. 은교를 통하여 다시 젊은 시절의 청년으로 돌아간 시인은 꿈속에서 깔깔거리며 앞서 뛰어가는 은교를 따라서 잔디밭을 숨이 헉헉 거리도록 신나게 달린다. 이 장면은 과연 이 영화에서 최고라고 손꼽으며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한 장면이다.
그러나 노인은 마음 속에 끓어오르는 욕망이 있지만 그것을 모두 드러내 놓거나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 노년의 원숙함과 인내심이 그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표현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랑의 마음을 소설에서 읽으면 문득 어느 새 눈물이 난다.
은교는 너무나 아름다운 소녀이다. 화장기 하나없이 아무 꾸밈없는 순수한 얼굴이지만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어여쁘다.
저돌적인 솔직함도 매력적이고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순진한 몸짓 또한 사랑스럽기만 하다. 내가 노인이라도 이런 소녀의 생기넘치는 모습을 보면 단지 곁에 있기만 해도 행복해질 것이다.
실제로 십대의 청소년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경우가 많다. 정체성이 확립되어가는 과정이므로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동경하거나 혹은 현재의 자기 자신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노인의 눈에 은교는 마치 오늘 아침 새벽이슬을 머금고 방금 피어난 장미와 같다. 뽀오얀 얼굴과 가느다란 팔다리에서 빛이 나고 온몸이 공기를 가득채워 넣은 축구공처럼 통통 튀어오른다.
아~ 누군가가 말한것처럼 젊음이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이다.
이러하니 누구나 젊어지려고 하고 젊음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젊음이란 생명력과 동의어인 것 같다. 다만 소녀만 자기의 빛나는 아름다움을 모르고 있는 것이 비극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이 없게 묘사된 인물은 청년이다. 그는 스스로 만든 무덤속으로 서서히 걸어들어가는 것 같고 점점 더 비극적인 결말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그는 몸시 괴로워하고 힘든 청년기를 보내고 있는 데 직접 세상과 맞부딪치는 것도 아니고 좀 비겁하고 위선적인 캐릭터이다. 오히려 노인이나 소녀와는 전혀 다르게 순수성도 잃고 지혜롭지도 않은 상태라고나 할까?
청년이라 하면 좀 더 의욕적이고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고 용기있게 세상에 나갔으면 좋겠다. 아직도 소년에 더 가까우니 눈부시도록 아름다움을 깨닫고 다시는 어떤 댓가를 치러도 얻을 수 없는 청춘이니 좀 더 세상에 굴하지 않고 좌절을 딛고 꿋꿋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소녀, 청년, 노인은 모두 한번씩 '외롭다'라는 마치 독백과 같은 대사를 중얼거린다.
노인은 입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았으나 온몸으로 외로워라고 소리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모두 외로운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조금이라도 세상에 홀로 떨어져나온 내 존재의 외로움을 덜어내고자 끊임없이 또 다른 외로운 존재들을 끌여들여 내곁에 가까이 두고자 하는 것일까?
그래도 혼자인 것 보다는 둘이 사무치게 외롭지는 않다. 그러나 둘이 된 인간은 또 때로는 혼자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그럴 때는 훌쩍 잠시라도 혼자 떠날 수밖에 없다. 외로움이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할 때까지...
이 영화는 각 나이대의 세 인물을 대표로 하여 그 나이에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절절한 감정을 너무도 섬세하게 가슴 아프지만 극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주 젊지도 그렇다고 아직 늙었다고 할 수도 없는 그 중간 어디쯤엔가 있는 나도 노인의 마음이 너무도 깊이 공감이 되었다. 현재의 나는 소녀가 보기에는 매우 나이 들었고 노인이 보기에는 '한창 좋을' 나이인 것이다. 그러하니 현재 내 나이에 만족하며 가능한한 젊은 마음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밖에는 없다.
아마 평생 마음속에는 소녀가 한명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설 '은교'도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영화보다 더 자세한 배경과 인물간의 갈등을 묘사하고 있으며 결말을 알고 싶어 손에서 놓을 수 없을만큼 흥미롭고 재미가 있다.
나이듦의 기쁨과 고통 이 두가지 모두가 점점 공감이 된다.